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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Jul 20. 2023

9V 건전지와 남편의 쓸모

사물의 재발견

근무 중에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깐 마트에 나갔다 왔는데 집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집 바로 앞에 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내복차림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집까지 퇴근하는 길은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추위에 떨고 있을 아들을 걱정하며 부랴부랴 퇴근하고 오는 사이, 아들은 엄마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는지 다시 마트로 가서 주인아저씨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음씨 좋은 가게아저씨는 집까지 와서 도어록을 보시더니 건전지가 다 되어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처방을 내리고 가게에서 판매하는 9V건전지로 도어록을 급속 충전해 문을 열어주었다. 도어록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건전지를 가져다 대면  기계가 활성화 되면서 비번을 입력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아들은 말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식탁에는 네모 모양으로 생긴 건전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네모난 건전지는 처음 보았다. 아들은 자신의 상황대처 능력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놀라서 퇴근한 엄마와 다르게 아들은 재미있는 일을 겪었다며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볼일이 없던 9V 건전지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순간! 남편이 생각났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9V 건전지와 남편의 쓸모가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남편은 쓸모?가 없다. 집안 살림을 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으며 청소기를 한 번 돌렸다 하면 오만상 짜증을 낸다. 설거지라도 할 때면 우리 집 애들은 비상경계 태세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 아빠가 설거지를 시작한다는 것은 잔소리가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설거지 한 번 하는데 잔소리도 흐르는 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이 엄마에게 와서 아빠 설거지 시키지 말라고 귓속말로 이야기할 정도다. (아빠의 고난도 전략인가 의심했다)


 이렇듯 집안일에 쓸모 하나 없 남편도 이사 갈 때만큼은 큰 쓸모가 있다. 집을 계약하고 이사업체에 연락하고,  전입신고하고.. 등등 이사는 큰돈이 오가고 복잡한 일이 많고 신경 쓰이는 과정이 많은데, 이때만은 일 처리를 잘하는 남편이 든든하고 멋있다.


평소에는 쓸모없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큰 쓰임이 되는 네모난 9V 건전지. 성격도 모난것이 마치 우리 남편 같다. 평소에는 쓸모없고 가끔 크게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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