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흥미진진한 독자 Feb 16. 2024

까치까지 설날은 앵순이가 가장 서러웠던 날

서러운 앵무새 여기있어요

설날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이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다만 이 자리에  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우리에게는 소중한 가족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 바로 반려동물 앵순이다.


새를 무서워하는 어른과 아이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앵순이는 손님들 방문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감금되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집 반려동물은 설날 세뱃돈도 받던데 앵순이는 날아다니는 짐승이라 서러운 설날을 맞이했다.


화장실에 갇혀 심심한데 수건이나 뜯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햇살 받으며 바깥 구경도 하는 도도한 도시 새 앵순이인데 오늘은 왜 화장실에 이렇게 갇혀있어야 하나 스스로 의아했을 것이다. 본인만 빼놓고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에 함께하고 싶어 원망하는 울음소리가 화장실 가득 울렸다.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혼자 잘 있는데 계속 사람 소리는 들리는데 꺼내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목소리에 노기가 섞여 높고 날카로워 진다. 진짜 앵그리버드가 되었다.


평소에는 인색하게 주던 간식도 오늘은 미안해서 팍팍 제공해 주었지만 앵순이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큰 소리로 꺼내달라 요구가 계속된다. 앵순이가 너무 울어 지칠까 봐 달래주기 위해 잠시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 화장실을 탈출하여 거실을 한 바퀴 돌고야 말았다. 


예고 없이 거실로 날아든 앵순이를 보고 질겁해서 몇몇 사람이 뒤로 나자빠졌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조카는 세상 가장 빠른 순발력으로 바닥에 몸을 움츠리며 소리를 질렀다.


앵순이도 잠시 탈출해서 분위기를 보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 자신도 놀란 눈치다. 16명이 한 집에 모여있어 그동안 본 적 없는 인파였으니 놀랄 만도 했다.


저 거실에 있으면 안되나요? 간절한 눈빛을 보내보지만...


우리 집 서열 1위로 새 팔자 상팔자라는 구호가 하루에도 수십 번 입 밖으로 나오는데 명절만큼은 앵순이도 새(鳥)로 태어난 것이 서럽다. 다행히 올해 초딩 조카 1명은 앵순이가 매력을 보여줘서 포섭했다. 친척 한 분 한 분 차차 앵순이 매력에 스며들게 하여 몇 년 후에는 앵순이도 당당히 거실 명절 모임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설날에는 세뱃돈 받고 추석에는 햅쌀밥도 먹어 보자꾸나.


화장실에서 하품하고 있는 앵순이. 미안하다. 어쩔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앵무새도 스트레칭 잘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