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발루에게 수영을 가르칠 걸 그랬어
1, 2학년 7월 독서 주제는 ‘환경’이다. 더위를 견디느라, 여행 가느라 자칫 방심하기 좋은 에너지 사용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일으켜보자는 취지다. 7월 주제 책으로 <투발루에게 수영을 가르칠 걸 그랬어>를 함께 읽었다. 투발루는 남태평양 바다 위 아홉 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이름이고, 주인공 로자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이름을 중의적으로 사용해 아이들에게 공감 지수를 높인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는 어쩌면 너무 식상해서 오히려 경각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단어다. 친숙해져버린 단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아 “명사”로만 남아 “동사”로 채워야 할 부분은 간과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는 계기가 되면 좋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하게 실천강령을 찾아보는 것이 수업 기대 효과다. 책 읽기 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동영상을 먼저 본다. 아는 만큼 보이는 힘을 믿는다. 영상에 친숙한 학생들은 영상 본 후 책을 읽으면 집중도가 달라진다. 파란 바닷물이 화면에 가득 차는 투발루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그 투발루가 어쩌면,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감정은 행동을 지속하게 하는 강력한 동인이기도 해서 각자가 정한 실천 방안을 나름의 최선으로 지켜내고 싶은 마음을 품게도 한다.
영상 보고 책 읽은 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뭘까? 선생이 질문 하면 아이들 손이 바쁘다. 새 학기에는 손 드는 친구만 손 들었는데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이 되면 서너 명을 뺀 아이들 전부가 활기차게 손 든다. 발표하는 걸 싫어하던 친구도 스스로 손 드는 걸 보면 어떻게든 먼저 기회를 주고픈 마음이 든다. 공정성을 잃지 않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평소 손 안 들던 친구가 손 들었다고 해서 먼저 기회 줬다간 낭패다. 발표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 기회가 너무도 소중한 것이어서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목을 했다가는 단박에 본질과 멀어지는 소란스러움이 일어난다. 지난 시간 수업을 마치며 “투발루에 대해 무엇이 되었든 조사해와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안내장을 적어주는 것도 아니고 엄마들에게 따로 연락하는 것도 아니다. 수업 시간 절차를 밟는 도리로써 수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차시를 예고하는 절차일 뿐이다. 마치는 종이 울리면 교실을 빠져나가기 바쁜 여덟 살 아홉 살은 40분 수업 시간 동안 어떻게 집중했는지 의아할 만큼 이야기를 쏟아낸다. 작고 어여쁜 여학생들 중 몇 명은 꼭 다시 와서 선생의 손을 만져보고 품에 안긴 후 간다. 작은 몸으로 고생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교 수업 마치고 방과후 수업도 마쳤지만 아직도 남은 일정이 많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은 아이들.
이틀 지나고 다시 만나는 날, 말 수 적고 얌전한 서율이가 책상에 바로 앉지 않고 앞으로 나와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투발루 조사해왔어요.” 어깨에 사선으로 멘 작은 가방 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펼친다. 세상에. 다만, 투발루에 대해서 그 어떤 것이라도 알아보자고 했는데 수업 주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을 야무지게 정리해왔다. 정리하는 동안 재미있었을까? 색연필로 키워드에 색깔도 입히고 “지구를 살리자!”는 핵심 메시지를, 나무를 그려 그 안에 써넣었다. 귓속말로 물었다. “서율아, 혹여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이따 수업 시간에 서율이가 조사한 걸 친구들에게 이야기 들려줄 수 있어? 이렇게 멋지게 조사한 내용을 직접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물어봐. 당연히, 직접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멈춤 하더니 “네.” 하는 대답이 고맙다. 서율이는 나서서 말하는 걸 아직은 좋아하지 않는다. 조사하고 정리해서 쓰는 거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이런 순간에 나는 감동 안 할 도리가 없다. 아홉 살 어린 학생이 선생이 한 말을 유념해서 듣고 기억했다가 엄마에게 전하고, 엄마와 함께 검색해서 스스로 이해한 언어로 정리를 했다. 조사 안 하는 학생이 절대적으로 더 많고, 하더라도 검색창에 쓰인 글자를 그대로 베껴쓰기 일쑨데, 어렵지 않은 어휘로 교체해서 아이 눈높이에 맞도록 돕는 엄마와 즐겁게 쓰는 아이.
스스로 조사한 내용을 서율이는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단어로만 적은 걸 문장으로 풀어서 읽어 내려갈 줄 안다. 나이 상관없이 정리를 잘 못하는 어른도 많고, 정리는 잘해도 말로 풀어내는 걸 잘못하는 이도 많다. 반대로 말이 앞서 내용은 공허한 경우도 많은데 서율이는 내용도 발표도 훌륭하다. 이제 아홉 살인데,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서율이는 평소 그런 아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긴장하지 않고 과하지 않게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이어갔다. 발표 마치고 조사한 종이를 들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좋은 걸 보는 눈은 비슷해서 아이들도 “우와!”한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면 아이들이 질문을 만든다. “그런데 왜 바닷물이 높아져요?” 수영할 줄 모르는 고양이 투발루가 남은 섬나라 투발루가 잠기지 않도록, 로자가 투발루와 투발루에서 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당부가 마지막 문장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는데도 아이들이 조용하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하는 질문이 들렸다. 이야기가 슬프다고 한다. 이야기를 읽는 순간 만들어지는 정서는 묵직해서 울림이 있다. “그러게. 왜 바닷물이 높아져서 투발루는 수영도 못하는데 투발루에 남게 되었을까. 다음 시간에 올 때 왜 바닷물이 높아지는지 조사해올래?”
주말 보내고 맞는 화요일이다. 오늘은 서윤이가 앞으로 나와 귓속말을 한다. 서율이보다 더 목소리 작고 얌전한 친구다. 조용하지만 수업 시간 집중력이 좋아 눈 마주침을 자주 하는 학생 중 한 명이다. “선생님, 조사해왔어요.” 주말까지 보내고 맞는 수업 날인데 아이들이 기억했다. 수업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우리가 정한 약속대로 앉기 시작한다.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의자 당기고 허리 펴고 앉기. 책상 위에는 연필과 지우개만 남기고 다 넣기. 바닷물이 왜 높아지는지 조사해왔다고 목소리 크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발표하기 좋아하고 앞에 나오기 즐기는 아이들이다. 조사해온 사람 손들어보자고 했더니 지난번과 달리 다섯 명이나 된다. 그냥 알아만 와서 머릿속에 있다는 준우, 휴대폰에 메모해왔다는 가희, 연습장에 써왔다고 보여주는 윤설이, 가만히 손드는 서율이와 서윤이, 노트에 적어온 나연이. 지난 시간 서율이가 조사해온 걸 본 효과다. 선생의 열 마디 말보다 친구의 행동 하나가 더 영향력 있다. 스스로 발표하겠다고 용기 낸 서윤이, 역시나 이번에도 정성스러운 조사를 한 서율이는 ‘타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