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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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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Oct 18. 2018

생일이 별 거냐

별 거 더라고요

6년 전이었다. 회사에서 한창 야근을 하던 그 날은 27번 째 생일이었다. 새로운 조직개편으로 어색함만 가득한 시기에 생일이라고 깜짝 생일 파티를 해주었지만 표정은 억지로 축하해주는 것이 역력했다. 생일 축하는 거기까지였다. 야근을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서 펑펑 울었다.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중간고사 기간이라 제대로 생일다운 생일을 보내본 적이 없다. 생일에 무뎌지긴 했지만 이렇게 기분이 최악인 적은 없었다.


다음날 전 팀에서 생일이 같았던 선배를 만났다. 최악의 생일이었다고 하니 자신처럼 '연차를 썼어야지' 하며 내년부턴 꼭 미리 연차를 쓰라고 당부했다. 생일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날이 된 건 그 다음 해부터다. 28살 생일엔 템플스테이를 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다. 나의 대범함을 발견한 생일이었다. 29살엔 퇴사 후 떠난 여행에서 생일을 맞이했었다. 여행 중 생일인 것도 기뻤지만 예상치 못한 생일상에 감동을 했다.
여권 확인을 하던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다음날 생일인 것을 보고 준비한 것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하는 생일 선물이 되었다. 그날 생일의 피날레를 장식해준 건 여행에서 만난 설화 동생의 호출이었다.  플리트비체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을 길바닥에 누워 바라본 추억 또한 잊지 못할 선물이다. 그렇게 뜻밖의 선물에 감동하는 생일이었다. 이후로 계속 생일 날은 그렇게 집이 아닌 곳에서 맞이했다.


오늘 33번 째 생일이었다. 오늘도 역시 집이 아닌 곳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강릉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고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화창한 가을 하늘을 보여주었다. 잠시지만 고마웠다. 공교롭게 중요한 일과 겹치는 날이어서 마음이 좀처럼 웃지 못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 사람들의 축하 메시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내려갔다. 축하한다는 말에 울컥, 보고싶다는 말에 울컥, 애썼다는 말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올해는 그냥 생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결국 올해도 별 거 있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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