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평상은

앉은뱅이 평상이었다

by 고향여행자
아무래도 저는
술이 용기의 약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거 같은 말들이 술의 힘을 빌려 나온다. 누군가는 피고름이 날 정도로 너무 말이 많아진다고 할 정도다. 오늘도 그랬다. 아버지의 친구분이 아내와 함께 소집을 찾아오셨다. 점잖게 커피만 한 잔 하려던 자리는 밖으로 나와 아빠가 만든 평상을 보는 순간 낮술을 하는 자리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볍게 감자전에 막걸리 한 병을 먹자는 것이 가뿐하게 네 병을 넘겨 버렸다. 아빠의 평상은 앉은뱅이 평상이었다.

술을 들이켤수록 말이 많아졌다. 결국 평소에 아빠께 하지 못한 말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공간을 준비하면서 아빠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괴로웠다. 콕콕 마음을 쑤시는 말들이어서 아프기도 했고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더 괴로운 순간은 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 한 말들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을 때다.


공간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아빠랑 갈등을 빚었다.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실까. 솔직히 아빠에 대한 미움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오늘에서야 깨달은 건 고집 센 딸 때문에 아빠 마음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란 거다. 그걸 인내하며 하루하루 지내셨던 거다. 오늘 만난 아버지의 친구분은 아버지가 유일하게 솔직한 마음을 터놓는 분이기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를 아셨고, 마음을 금세 이해해주셨다. 그분이 내린 결론은 서로가 너무 평소에 표현을 안 해서 섭섭함이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맞다. 아버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는 표현이 몹시 서툴다. 말 따로 표정 따로 행동 따로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영락없는 부전녀전. 내가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술을 몰랐을 때는 글이었고, 술을 알기 시작하면서 옵션 하나가 늘어 술 또는 글이 되었다.


오늘도 술의 힘을 빌려 아빠께 마음을 표현했다. 실은 요즘 누구보다도 아빠께 감사하고 아빠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고 말이다. 문 여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결정을 쉬이 내리지 못하고 고민만 잔뜩 하다가 시작도 못하는 나를 답답해하는 아빠는 일단 하고 본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걸 아빠는 뚝딱뚝딱 표현해내셨다. 버려진 물건에 심폐소생술을 해 다시 쓸모 있는 물건들로 태어나게 했다. 버려진 책장이 창고의 진열장이 되고, 버려진 아크릴판은 벽 게시판이 되었다. 그렇게 아빠의 진열장, 아빠의 게시판, 아빠의 평상이 차례차례 만들어졌다. 하나하나 추억하는 물건이 되었다. 저렴하게 구입한 것은 꼭 3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들었다. 낑낑대며 겨우 하나 완성하면 3시간이 훌쩍 넘는 접이식 테이블 만들기는 아빠의 손으로는 30분 만에 완성되었다. 이건 이렇게 하라며 하나 둘 아빠를 통해 배워나가는 것들이 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애를 쓰는 이유는 하나였다. 나 때문이다. 때론 이 말이 버겁다가도 참 든든하다. 앞으로도 버겁다가도 든든하고, 든든하다가도 버거울 때가 많을 것이다. 든든하든 버겁든 이 시간들이 영원하진 않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소중해진다. 술이 깨면 나는 또 냉랭한 딸이 될 것이다. 평소에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느끼는 마음, 이 마음이 조금 더 넉넉해지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