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준 사람, 소집
네가 강의를 한다고?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강의를 한다고 하면 놀라곤 한다. 발표를 할 때마다 양 목소리를 냈다. 그날의 날짜를 보고 발표를 시키곤 했던 선생님들 때문에 내 번호가 연관된 날짜일 땐 바짝 긴장을 하는 하루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가장 큰 변화가 바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강의를 하는 것엔 고향으로 돌아와 한 첫 강의의 경험이 좋아서였다. 첫 강의는 강릉시립도서관에서 한 <여행의 첫걸음, 여행기 쓰기 첫걸음>이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서툰 점 투성이었다. 그런 수업에 실망해서 사람들이 냉대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무시하는 투로 하대했다면 그 강의가 첫 강의이자 마지막 강의가 되었을지 모른다. 첫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그때의 첫 제자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를 논하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나보다 최소 10살 이상은 많은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이었지만 내게는 인생 스승이기도 했다. 평균 나이 예순. 한 분 한 분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두 선생님이 인상 깊다. 여든이 넘은 제자가 있었다.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해 신문을 정독하고, 글을 쓰는 제자였다. 설** 선생님은 아내가 아파서 함께 병원을 가야 하는 날 하루를 제외하곤 수업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크셨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은 김** 선생님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 옥계에서 포남동까지 두 번 버스를 환승해서 오셨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마음이 깊고 감사해서 한 주 한 주 온 마음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여섯 명의 제자들과 <여행, 시작>이라는 한 권의 책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참된 어른을 만난 것 같다. 나이부터 묻고 자신보다 어리면 아래로 보는 어른들과는 달랐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존중하는 마음은 큰 격려가 되었다.
소집을 열고 나서 첫 제자들을 종종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 선생님은 소집 바로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소집을 보고 들어오셨는데 나를 딱 만난 것이다. 늘 마음 한구석엔 소중한 사람들로 남아 있지만, 좀처럼 만나긴 어려웠다. 그러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더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는구나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한 죄송함도 밀려왔다.
뜬금없이 새 공간을 연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이 괜스레 죄송해서 알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섭섭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우연한 만남은 이러한 후회와 아쉬움을 풀어주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며 멈춰있던 사이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때의 선생님들이 그리워졌다. 연락을 드려봐야지 하던 찰나에 그 그리움이 선생님들의 마음에 먼저 닿은 건지 최근에 부쩍 그때의 선생님들과 우연히 만나거나, 연락이 먼저 온다. 또 한 번 그 마음에 깊이 감동하게 된다.
가장 최근의 우연한 만남은 동네의 유일한 마트인 시니어 마트에서였다. 옥계에 사는 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주말에 한 번씩 일을 하러 이곳에 오신다고 했다. 선생님은 일을 마치고 곧바로 소집을 찾아주셨다. 선생님을 소집에서 맞이하는 날이 오다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시 만난 선생님은 여전히 고우셨다. 선생님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철없는 나를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주셨다. 다정한 말들에 배가 한껏 불렀다. 이렇게 또 든든함을 채워주셔서 감사했다. 선생님은 여전히 옥계와 포남동을 오고 가며 배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이에 우쭐대지 않고, 나이에 갇히지 않는 사람.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선생님과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소집은 이렇게 또 내게 선물을 주는구나. 고마움도 나날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