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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Oct 30. 2019

마음의 체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를 인정하기까지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글을 쓸 수 없었다. 여기서의 글이라 함은 페이를 받는 글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글은 참 많이 쓴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오롯이 마음을 다하는 글. 그 글은 힌동안 쓸 수 없었다.


바빠서는 핑계였다. 마음이 어지러웠고 무거웠다. 마음에서 언어를 건져 올릴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일으켜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받아서다. 옛날이 퍽 그리웠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의견충돌을 빚었어도 금세 풀던 사이였는데 왜 지금은 그렇지 않지. 왜 그럴 수 없는 거지.  마음의 체기가 도통 가라앉지 않았다. 나를 살리는 사람이 나를 죽일 수도 있구나. 헤아려주던 마음이 외면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는 순간을 직면했다. 해서는 안될 말을 무심히 내뱉는 그 사람의 언행은 나를 무너뜨렸다. 나를 무시하는 태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한때 내 눈물을 가장 많이 보던 사람이라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나의 힘듦도 관심 밖이었다. 존중받지 못할 때 냉정한 사람이 되고 마는 못난 내가 나와버렸다.


처음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 속상했다. 우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었나. 그저 속상한 마음만 가득해서 우는 나날이었다. 사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나에게 상처를 줬는지조차 모르는 무심함. 더 큰 상처였다. 


시간이 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시간이 가르쳐 준 건 단지 이뿐이었다. 사실 어느 날 한 번은  답답한 마음이 가득해 용기 내 그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다른 일정이 있다는 답으로 돌아왔다. 답답함만 가중되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또 시간만 정처 없이 흘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연락이 없었다. 단지 정해진 날 다 같이 보는 사이. 그 사람과 나의 사이였다. 결국 지금 하는 이 일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라야 했다. 아팠다.


나의 못난 면 하나는 어떤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회피를 한다는 거다. 안 보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못난 방법으로 나를 지키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회피할 수 없었다. 불편한 사이로 계속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괴로웠다. 마음이 닫히니 말문도 막혔다. 그렇게 못난 면을 계속 보이며 괴로운 나날을 이어갔다. 그러다 끝내는 날이 왔다. 표정 없는 얼굴. 최소한으로 내뱉는 말. 나의 못난 태도는 최고조를 찍었다.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보여준 마지막 모습이었다. 최악으로 끝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애써 더 이어가려 하는 건 헛된 욕심이었다. 인정하기 싫은 걸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당분간 나는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무너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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