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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Mar 21. 2016

내 마음 속 향나무 발견, 향호

백조의 호수여행-향호 2편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으로 향했다. 이때만큼은 눈이 차창 너머로 고정된다. 보이는 풍경에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괜찮다. 파도가 배경음이다. 주문진에 이르면 바다는 물론 호수도 만나게 된다. 향호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호다.    


[아빠 사진 - 고종환 제공] 찬찬히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향호 산책로


왜 이름이 향호일까 궁금했다. 몇 가지 유래가 있다. 옛날에 향골의 천년묵은 향나무 10주를 호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향나무가 묻힌 곳에서 빛이 비쳤다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 시인 안숭검이 지은 산수비기에 전해오는 유래다. 또한 천년된 향나무가 홍수에 떠내려와 이 호수에 잠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빠 사진 - 고종환 제공] 내 마음 속 향나무를 생각하는 시간  

오랜 세월 호수 어딘가에 묻혀있을 향나무를 생각해본다. 지금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마을의 안위를 지키는 존재로 오랜 시간 든든한 힘을 주었을 터. 경외심이 절로 생긴다. 이를 느끼며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엄마였다.      

[아빠 사진-고종환 제공]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듯한 철새들

   

내 마음 속 향나무는 엄마다. 


엄마는 30년 넘게 바느질을 하며 딸 넷을 키우셨다. 어릴 땐 쉬는 날 없이 가게 문을 여는 엄마가 야속했다. 늘 가게 일이 우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맞아주는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비오는 날 정문 앞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엄마를 찾을 순 없었다. 엄마와 함께 옷 가게를 가서 서로 옷을 골라주는 그 흔한 추억도 만들지 못했다. 겉으로 표현해주지 않는 사랑에 서운했다. 나에게 줄 사랑이 동생들에게 가는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다.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나까지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엄마와 언제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 시간을 그리며 살았다.


        

 [아빠 사진-고종환 제공] 정자를 처음 세운 이영부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취적정.지금의 정자는 향호를 정비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우리를 지킬 수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진짜 사랑은 눈으로만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렇게 우리를 지키느라 정작 엄마 자신은 지키지 못했다. 엄마에게 엄마 자신을 지킬 여유가 자리할 틈은 생길 수가 없었다. 아이 하나 낳아 기르기도 힘든 세상에서 네 명을 키우는 건 보통 무게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마저 회사 구조조정이 불어닥친 시기에 건강까지 안 좋아져 일을 그만두셨다. 엄마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견디며 사셔야 했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바라기만 했던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다.
딸이다.
엄마는 육남매 중
유일한 딸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태어나고서야 외할머니께 ‘수고했다’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귀한 딸이었다. 그걸 잊었다.      


엄마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은 길


이젠 내가
엄마의 향나무가 되어줄 차례다.
엄마에게 여유를 찾아드리고 싶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다. 나 혼자 행복한 건 오래가지 않았다. 나 혼자 행복한 것도 죄송스러웠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용돈을 두둑하게 드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하루하루 마음이 풍요롭다. 


함께 밥을 먹고,
번개시장을 가서 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사한 하루하루다.
오래전부터
그려온 날들이라서 더 소중하다.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님을,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느낀다.      


여행 꿀팁   

1.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2. 편의시설 : 산책로, 관찰데크, 정자, 공중화장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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