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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Mar 25. 2016

진짜 가져야 할 것을 찾다, 송지호

백조의 호수여행-송지호 3편

송지호로 향했다. 송지호는 이름처럼 소나무와 어우러진 호수다. 역시 이름대로였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호수 전망데크에 이르게 된다. 맞은편 언덕을 바라보니 송호정도 보인다. 전망데크에 가만 서서 물결을 바라보면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빠 사진-고종환 제공] 철새관망타워에서 내려다본 송지호. 이름대로 울창한 송림을 자랑한다.

송지호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호다. 해수와 담수가 공존한다. 그래서 도미, 전어 등의 바닷물고기와 잉어, 숭어 등의 민물고기가 함께 산다. 이곳에 흘러내려 오는 전설도 흥미롭다. 전설은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은 비옥한 땅이었다. 정거재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장님과 그의 딸이 동냥을 구하려 이 집을 찾게 된다. 정부자는 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종들을 시켜 이들을 흠씬 매질한 후 쫓아낸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고승이 사연을 듣고 정부자 집을 찾아가 시주를 청한다. 정 부자의 행동은 더욱 가관이다. 시주걸망에 쇠똥을 가득 담은 후 매몰차게 내쳐버린다. 고승은 놓여있던 쇠절구를 금방아가 있는 곳으로 던진다. 그것이 떨어지자 갑자기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순식간에 정 부자의 집과 재산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것이 지금의 송지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 사진-고종환 제공] 잔잔한 풍경에 지친 마음을 다독이기 좋다.

어디까지나 설이지만 이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가진 게 많을수록
더 탐욕스러워진다는 것.
또 하나는 악한 마음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진 게 많을수록 베푸는 마음도 넓어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본다.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권력을 앞세워 갑질을 하는 경우가 그러하고, 재벌가의 재산싸움도 그러하다. 


[아빠 사진-고종환 제공] 하늘을 나는 새떼들 순간포착!


욕심 때문에
초심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경쟁사회에서 강하지 못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필자에게 욕심은 덫이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땐 시청률이 곧 성적표였다. 밤낮없이 일해도 과정보단 결과였다. 시청률을 높이고 싶은 욕심에 더 자극적이고 센 사연과 기사를 찾는 내가 돼 있었다. 이 일을 하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에디터로 일할 땐 효율성을 강조하는 상사로 인해 초심을 잃었다. 그는 수치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에 몇 개를 제작했는지가 중요했다. 어떤 문구를 넣으면 좋을지, 사진을 어떻게 배열하면 좋을지, 상품 정보가 정확한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등의 고민을 하며 상품 페이지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를 수치화하고부터 그 과정이 무의미해졌다. 제작 직군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서로 고생하는 걸 알면서도 경쟁해야 했다. 좋은 사이마저 불편해졌다. 숨이 막혔다. 퇴사를 하고서야 불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 퇴사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일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었다. 


전망데크 맞은편 언덕엔 송호정이 자리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욕심 없이 사는 것이 더 이상할지 모른다. 욕심이 없으면 자기 발전이 없다고들 한다. 초라해지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가진 것을 내려놓기 힘들다. 더 가지려 한다. 필자 역시 그랬다. 그 두려움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부딪쳐 봐야 알 것 같았다. 퇴사 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돼서 좋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을 쯤, 공부를 더 이어갈 자신이 없어졌다. 길을 잃고 말았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채용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어’하고 표정 짓는 상사가 떠올랐다. 그가 한 모진 말들이 다시 마음을 콕콕 찔렀다.   


솔향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호수 물결에 마음이 정갈해지는 시간


그러다 도서관 홈페이지 여행작가 아카데미 공고를 보게 되었다. 수업료는 무료. 다행히 선착순에 들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 첫날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나를 울렸다.      


길을 잃으세요.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매주 화요일 10시가 기다려졌다. 내 글을 읽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계속 써보라는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늘 내 옆에 앉는 짝꿍과도 친구가 되었다.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지만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서로 고민을 들어주며 답답한 마음을 풀곤 했다. 힘든 시기에 의지가 많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제일 아쉬운 점이 언니를 자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은 곧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수업료가 무료라 고민 없이 신청한 수업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생애 첫 번째 여행사진전을 열었다. 여행 글을 연재하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길을 잃어서 오히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는 시간이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업 첫 시간. 길을 잃으라고 했던 선생님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땐
다른 사람과의 경쟁도,
더 가지려 하는 욕심도
무의미해진다.
나와 경쟁하면 된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그것이면 된다.    

  

여행 꿀팁   

1. 주소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24 

2. 철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송지호 철새관망타워를 관람하는 것도 좋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전망대에 먼저 오른 후, 한층 한층 내려오면서 전시관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 관람 시간 09:00~17:20.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군인, 어린이 800원.  

3.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송지호 산소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약 5.2km의 코스로, 약 2시간 소요된다. 송지호 철새관망타워를 시작으로 왕곡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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