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최악의 생일을 보낸 후
28살부터
생일 여행을 떠났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두 달을 떠났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면
좀 살 것 같았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하며 사는지를
그 무게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복잡했던 마음이
좀 차분해지고 나면
진심이 보였다.
내가 어찌할 수 없고
결국 시간에 기대야 하는 일들.
무기력하지만
그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일러주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아주 먼 곳으로
떠났을 올해 생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시기라
마음은 쓰리지만
그냥 잠자코 집에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출장이 잡혔다.
여행을 선물했다.
꽤 가까운 곳인데
참 멀게 느껴졌던 곳을 다녀왔다.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그림을 마주했다.
생일 당일날 아침.
출장길에 있는 딸에게
미역국을 못 먹어서 어쩌냐고
엄마는 마음을 쓰셨다.
사실 미역국은
36년 전
10시간의 산통 끝에
어렵게 나를 낳은 엄마가
드셔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금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날 낳은 엄마.
그리고 지금 내 나이엔
애 넷을 키우느라 청춘이 없던 엄마.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나는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정말 위대하다 느낀다.
엄마처럼 살기 싫은 게 아니라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다.
표현력 부족한 건 똑 닮았지만
또 특별한 날의 힘을 빌려
마음을 전했다.
10월에 때아닌
겨울이 찾아온 건 당혹스럽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이 계절에
나를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비공개로 돌려놓은 생일을
용케 기억하고 축하해주신
내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따뜻했습니다.
오늘도 부디 안녕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