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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Feb 26. 2022

무명을 고하다 1편

임초롱, 신원덕 무명지기에게 안부를 묻다

무명은 쉬는 날마다 찾곤 하는 내 마음의 아지트다. 필자가 강릉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임을 고백한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동갑내기 친구를 둘이나 만난 기쁨도 크지만, 그들이 공간을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을 때, 누구보다 기뻤다. 좀처럼 리액션이 크지 않은 나인데, 그들이 그리는 공간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껏 설렜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그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기에 공간에 대한 마음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공간 문을 열었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무명, 안녕한가요?

강릉 홍제동 주택가에 자리한 다락방 영화관, ‘무명’. 지역에서 만들어진 단편,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1년 동안 강릉에서 제작된 영화 중에서 12편을 상영했다고 한다. 무명지기가 된 임초롱, 신원덕. 두 사람의 1년은 어떠했을까. 코로나19와 함께 한 1년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주로 임초롱 무명지기가 답하였음을 미리 고한다.     

  

“사실 1년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어디에다가 물을 곳도 없지만 이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공간도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영화 관련된 업무를 했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그런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한 해였어요.”     


‘다시 오고 싶은 공간’, ‘강릉에서 제일 기억에 남고, 마음에 남는 공간’. 무명을 다녀간 사람들의 후기를 읽다 보니 무명지기들이 무던히 애썼을 시간이 읽히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을 맞이하며 늘 긴장하는 마음을 안고 보냈을 터.      


“좋은 일 하시네요!”     


공간을 지키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은 되려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했다.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며 응원해 주셨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위축되었다고 한다. 무명을 자주 찾고, 무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명지기들이 1년 동안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위축됐었다는 고백을 들으니 힘들어도 힘들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묵묵히 인내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강릉에서 만든 영화들, 특히 단편 영화 같은 경우에는 관람할 기회가 많이 적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내려와서 차를 마시며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쉬어가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명’을 열기로 한 첫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 경험이 없었기에 ‘너무 잘 모르고 시작한 게 아닌가’,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한다.      


“영화와 관련된 분들과 같이 무언가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시도들도 많이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소극적이다 보니까.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서툴 수밖에 없었을 1년이란 시간.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과정이 괴로웠을 테지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그만큼 성장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볼 때 스스로 그 시간을 잘 걸어왔다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무명이 만들어지기까지, 냉정과 열정 사이  

공간을 준비할 때 한창 신났던 두 사람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처음에 무명 기획할 때는 이런 어려운 거 하나도 생각 안 했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그때 같이 맨날 회의하고. 회의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여기가 오래된 주택이어서 에어컨도 없어서 정말 너무 더운 여름이었는데. 선풍기 켜놓고 매일매일 회의를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이거 진짜 잘해보자!’ 했었어요.”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는 원덕 무명지기. 강릉에 정착한 지 5년쯤 되었을 무렵, 전환점이 필요했다고 한다. 지금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바람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에 맞닥뜨리자 오만가지 걱정거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구체화되면서 공간이 사업장이 되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까, 현실이 만만치 않은 거죠. 공간을 하는 사람들은 다 느낄 거예요. 건축적인 문제도 그렇고, 사업자를 내는 것도 그렇고, 생각지 못한 문제점들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렇다. 구상 단계에서 구체화 단계로 넘어가면서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필자 역시 그랬다. ‘정말 멋모르고 시작했구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으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촘촘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고 한 거지, 생각이 드는 시점이 온다. 초롱 무명지기도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이 생각이 들 무렵엔 이미 깊이 발을 들인 상태라 뺄 수도 없는 때다. 어떻게 해서든 이 시기를 이겨 나가야만 한다. 이겨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이라, 계속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무명지기들은 2021년 1월 1일 무명을 열었다. 공간을 운영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처음부터 지역 영화만을 고집한 거는 아니지만, 지역 영화는 계속 가지고 가자는 부분이 있었어요. 강릉에서 제작된 영화를 소개하고 이 영화들을 보여주고 싶은데.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그분들께 따로 연락을 취하는 방법 자체도 잘 알지 못하니까. 이런 절차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는 상태였어요.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배급 회사에 연락하는 건데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 같은 경우는 배급사가 정확하게 있는 편은 아니어서 어렵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던 게 강릉에서 영화 제작을 도와주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지역 영화를 배급받고 많은 도움을 얻고 있어요.”      


책도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듯, 영화도 많은 사람이 봐야 그 가치가 커진다. 보는 사람들이 있어야 그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생기고,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무명에서 강릉 단편 영화를 접한 후에, 지역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다. 무명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상황 속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원래도 예약자 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심각할 땐 더욱 제한해서 한 타임에 한 팀만 받았어요. 총 6회를 하는데, 한 타임에 한 분씩 예약하면 여섯 분이 예약해서 매진이 돼요. 보기엔 매진이라고 뜨니까 잘 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예약한 분은 하루에 6명이 최대니까. 그래도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해서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 공간 같은 경우에는 카페가 아니라서 인원 제한을 꼭 지켜야 한다거나 법적인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도의적인 문제도 없느냐 생각했을 땐 그건 아닌 거죠.”     


무명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머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공간 수익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혼자 영화를 보니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안도하는 두 사람이다. 결국은 이곳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마음 편에서 늘 서 있는 두 사람이었다. 무명지기들은 어려운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가고 있었다. ‘어떤 질병이 와도 우리 무명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원덕 무명지기. 그의 말에서 단단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변화가 필요해 

무명을 하면서 두 사람에겐 두 가지 큰 변화가 찾아왔다. 무명은 본래 두 사람이 살던 공간이었다.   

  

“살고 있는 공간을 조금 내어서 예약자분들을 받고, 그분들하고 함께 공유하는 그런 공동체적인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렇게 수익이 나오지 않더라도 오래 할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얘기를 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아슬라(신원덕)가 나가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수익이 많이 날 수 있는 공간도 아니고, 그러한 기대를 하며 시작한 공간도 아니었지만, 공간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그래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해야지 수익을 더 낼 수 있을까.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명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는 거엔 아슬라의 영향이 커요. 사실 여기에서 우리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굉장히 적은 횟수로 상영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과 느낌이 굉장히 다른 무명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함께 시작하자고 해놓고, 초롱 무명지기에게 너무 큰 부담감을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는 원덕 무명지기. 공간을 유지하는 것엔 원덕 무명지기의 힘이 큰데, 순간순간의 감동을 함께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미안함도 크다는 초롱 무명지기. 서로를 생각하는 만큼,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에게 미안함도 큰 두 사람이다.     


무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시작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한 원덕 무명지기. 하지만 또 다른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무명 공간이 주거 공간을 겸하고 있다 보니 쉬는 날에도 온전히 쉴 수 없었다고 한다.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며, 온전히 쉴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을 다시 얻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명은 온전히 무명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글 고기은 / 사진 고종환 


*무명을 고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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