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초롱, 신원덕 무명지기에게 안부를 묻다
무명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와플이’다. 와플이는 두 사람의 소중한 반려견이다. 무명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격하게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와플이.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는 이들도 많다. 오자마자 와플이부터 찾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다. 와 과장으로 진급시켰다는 원덕 무명지기의 말에 빵 터졌다.
“처음에 와플이가 없었다면,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거 같아요. 너무 긴장 상태이고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중간 역할을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두려움도 컸는데, 그걸 완화시켜준 게 와플이었어요. 오신 분들도 낯선 공간에서 긴장이 많이 될 텐데, 와플이가 이렇게 허물어주니까. 와플이가 없었으면 초반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내가 못하는 부분을 (와플이가) 채워주니까 정말 든든했어요. 우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 전에 제 마음을 녹여준 거죠.”
초롱 무명지기는 와플이가 있어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와플이지만, 때때로 지쳐 보여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사람이 번아웃이 오듯, 와플이도 번아웃이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와플이에게도 휴무일이 생겼다. 와플이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의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 없는 날은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와플이도 휴무일이 필요하기에 쓸쓸함을 꾹 참는다. 혹시나 무명을 찾았을 때 와플이가 없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힘들다가도 오신 분들이 남겨 놓고 간 글 한 줄, 말 한마디에 공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으로 앞으로 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무명에도 그러한 힘을 주는 메모 노트가 있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메모 노트다. 한 분 한 분의 글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지만 한참 몰랐다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나 빼곡하게 소감을 남겨주었을 줄이야. 많이 놀랐다고 한다. 꽁꽁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을 듯하다. 이러한 감동은 무명지기들만 받은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님이 몇 분 오셨었거든요. 그때 그 메모들을 보고,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왜냐면 보통은 지인들이나 관계자분들이 많이 보셨기 때문에 실제 관람객이 보고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피드백을 받으신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까 거기에서 많이 감동하더라고요. 그걸 보는 저도 감동이었어요. 그때 공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명을 지키는 하루하루 속에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는 초롱 무명지기. 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고민스러워하며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떤 여성분이 쪽지를 하나 남기고 갔었어요. 그 쪽지가 꽤 오래 기억이 남아요. ‘다정함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이 다정함 때문에 위안을 받았다고. 그래서 나도 이런 다정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런 글이었는데. 그걸 봤을 때 그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에게도 내가 필요하고, 나에게도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공간을 하는 이유를,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고, 이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고 이런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한테 필요해서 그 영화를 본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도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분들도 그 만든 영화를 보여줄 우리가 필요하고, 저 또한 여기에 방문하는 분들이 필요하고, 여기 공간에 들려주는 분들도 이런 시간과 그 모든 게 필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구나’를 그때 처음 느꼈어요.”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변함없을 마음이고, 변함없이 지켜갈 마음이라는 걸 느꼈다.
앞으로의 무명을 두 사람은 어떻게 그려가고 싶을까. 공간이 가지고 있는 결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요즘 좀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맨 처음에 우리는 이 공간이 그렇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있는 듯 없는 듯’. 덕이가 그랬거든요. 여기에 우연히 들어왔다가 그냥 이렇게 스치듯이 지나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렇게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뭔가 자꾸 여기에 살을 붙이려는 고민을 작년에 너무 많이 했었어요.”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때문에 계속 도망가고 싶고, 새로워지고 싶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얽히는 한 해를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그냥 그 자체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작년에는 항상 모든 거에 대해서 ‘이게 맞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었거든요.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었는데 올해는 스스로 이렇게 해보자고,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서 한번 도전하는 한 해로 자신감을 갖고 해보려고 해요. 사실 무명 자체도 그렇게 시작을 했으니까요.”
무명지기들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잘해나갈 거라 믿는다.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공간, 무명이 오래오래 곁에서 있어 주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글 고기은 / 사진 고종환
*<감감무소식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사업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