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향여행자 Feb 27. 2022

소집을 고하다 1편

소집지기들에게 안부를 묻다

사이사이 이야기를 쌓고 싶어서 4월 24일 문을 연 ‘소집’.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소집은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갤러리 공간으로 함께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다. 필자가 아버지 소집지기와 함께 꾸려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버지 소집지기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소집, 안녕한가요?

소집은 강릉 병산동 마을에 자리한 작은 갤러리다. 본래 소가 살던 집의 의미를 따서 ‘소집’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8개월 전, 2019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나 길어질 줄이야. 아버지와 필자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고 있다.  

    

“지역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고, 첫해에는 여러 가지 행사도 많이 열고 하면서 보람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데도 마찬가지겠지만 많이 힘들어졌죠. 마을에 같이 어우러지면서 여러 가지로 뭔가 해보려 했는데 의욕도 많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이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많이 답답하죠.”

- 고종환 소집지기      


코로나19 이전에는 전시 때마다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를 자주 열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그러한 행사는 고사하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전시를 보러 오라고 권하기도 조심스럽다. 소집지기들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 아버지 소집지기 고종환 작가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1월 소의 해를 맞아 소집에서 <우2021> 사진전을 기획하고 전시했다.      


(왼쪽부터) <꿈; 몽유원>, <동행>, 고종환 작

“아버지께서 1년 동안 대관령, 인제, 홍천, 청도, 전국 곳곳을 돌며 소들이 있는 풍경을 담았어요. 공들여 작업한 활동이라 그만큼 각별한 전시회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연말연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지역 분위기가 많이 무거웠어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올 수 없는 상황이었죠. 전시 기간 내내 그러했어요. 나아지지 않는 상황도 갑갑하고, 마음이 많이 복잡했었죠.”

- 고기은 소집지기      


아쉬움이 큰 전시회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아주 특별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소집은 1월 17일부터 1월 31일까지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그사이 도착한 편지다. 편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80대 어르신이 보내신 것이었다. 그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고종환 작가의 소 사진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 두 마리를 끌고 밭을 가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고향이 떠오르고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이 생각나셨다고 한다. 그 길로 편지를 쓰신 것이다. 그 사진 작품을 곁에 두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셨다. 편지를 잘 받았다는 메시지를 전하니 금세 답변이 왔다. 우리의 연락을 몹시 기다리셨다고 한다. 얼떨떨한 기분은 이내 진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얼른 이 소식을 아버지께 전해드리고 싶었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이렇게 편지를 써서 전해준 어르신의 마음에 깊이 감동하셨다. 아버지는 어르신이 곁에 두고 싶은 사진과 함께 또 다른 사진들을 더하여 보내셨다. 전시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아버지도 다시 힘을 내셨다.      



뜻밖의 순간들, 소집

소집을 하며 몸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한 번의 진한 감동은 아홉 번의 불행을 덮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예고 없이 찾아왔듯이, 뜻밖의 선물 같은 순간들도 종종 예고 없이 찾아왔다.  

   

“작년 가을에 찾아오신 분이 있었어요. 중년 여성분이셨는데, 나홀로 여행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227번 버스를 타고 오셨다고 해요. 인터넷에서 소집 전시 소식을 보고 꼭 오고 싶은 곳으로 찜해두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오진 못하셨대요. 코로나19로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고 그러셔서 마음에만 내내 남으셨다고 해요. 그러다 드디어 이렇게 왔다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말씀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젊은이가 이렇게 하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정말 대견하고, 잘하고 있다’면서 오래오래 해달라고 말씀하시는데 괜히 울컥하더라고요.”

- 고기은 소집지기      


그는 손녀와 함께 오겠다며 다음을 기약하셨다. 참 멋진 어르신을 만난 그날의 하루는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공간을 하면서 자신이 무심코 건넨 말이 가시 돋친 말인지 모르고 내뱉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때때로 뜻밖의 감동을 전하는 한 분을 만나면 마음이 녹는다. 아버지 소집지기도 그러한 순간이 종종 있으셨다고 한다.

      

“최근에 3박 4일 동해안 쪽으로 여행을 온 가족이었는데. 소집을 제일 먼저 왔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가 제일 오고 싶었다면서 소집에 온 소감 글도 멋지게 남겨주고 가셨는데. 참 고맙고 기쁘더라고요.”

- 고종환 소집지기      


블로그와 SNS에 남겨주시는 글선물도 감동이다. 후기엔 특히 아버지 소집지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전시 설명도 친절하게 잘해주시고 사진을 찍어주셔서 좋았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공간을 잘 지켜가고 있으셨다. 그렇게 찾아오는 분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물하며 소집의 이야기를 쌓아가고 계셨다. 근무일을 나누어 소집을 지키는데, 필자가 지키는 날에 찾아오는 분 중에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음을 느낀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집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아버지 덕분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글 고기은 / 사진 고종환


*소집을 고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