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한 마디
27년 전, 오늘은 막내 동생 현정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동생이 태어났다. 또 여동생이었다. 그때 12살이었던 나에겐 이미 여동생이 두 명 있었기에 내심 남동생이길 바랐다. 아빠께선 나에게 할아버지 댁과 외할아버지 댁에 전화를 걸어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했다. 먼저 할아버지 댁에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께 "또 여동생이 태어났어요."라고 말했는데, 할아버지는 "엄마 괜찮니?"부터 물으셨다. 네 번이나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며느리였기에, 강릉에서 수술을 할 수 없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며느리였기에, 할아버지는 며느리 걱정이 먼저셨다.
"엄마 괜찮니?"
그땐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그 한 마디가 해를 거듭하여 오늘이 찾아올 때마다 진해지고 깊어진다. 몇 해 전 엄마께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 엄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담 하나를 더 풀어놓으셨다. 할아버지께서 종종 가게에 찾아와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곤 하셨다고.
"또 딸이어도 괜찮다.. 건강이 제일이다. 애미 건강이 제일 걱정이다."
연신 엄마를 걱정하셨다고 한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한번 엄마와 그때를 추억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각별한 오늘이다. 오늘의 힘을 빌어 표현해 본다.
요즘은 나보다 더 언니처럼 든든함을 채워주는 동생 현정이. 회사에서 일도 야무지게 잘해서 얼마 전 조기 승진도 한 멋진 내 동생. 열 남동생 부럽지 않다. 예쁘게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동생 현정이가 많이 자랑스럽다.
"현정아! 27번째 생일 축하해. 사랑한다, 내 동생."
학교에서 늘 동생이 제일 많은 아이여서, 왜 나에게만 이렇게 동생이 많은 거냐고. 버겁다고 엄마께 울면서 토로한 적이 많았는데. 그때의 토로를 지금은 다 회수하고 싶다. 지금은 부모님께서 세상에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세 여동생을 낳아준 것이 가장 고맙다.
"엄마! 27년 전, 막내 낳느라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손자들부터 챙기는 할머니에게 섭섭함을 느낄까 싶어, 늘 손녀들에게 먼저 먹을 걸 건네주고, 용돈을 주곤 하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쩌면 오늘도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 건강해야 한다. 엄마 편으로 용돈 보내줬으니 맛있는 거 사 먹어라." 하셨을 것이다.
"할아버지... 어쩐지 오늘은 할아버지와 낮술을 하고 싶은 그런 날이네요. 아주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