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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날들

흠뻑쇼, 그곳엔

24,000명을 미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by 고향여행자

우울
무기력
불안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나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 무작정 어디에라도 풀어헤칠 곳이 필요했다. 지희 언니가 흠뻑쇼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곳이구나'를 직감했다. 티켓팅부터가 난관이라는데 성공하면 주저 없이 가자고 했다. 그 난관을 뚫었고 콘서트까지 45일이 남았다.


마치 비행기 티켓팅 마냥 그날만 생각하면 힘들어도 버티게 되고 울다가도 웃게 됐다. 날이 다가올수록 혹여 어디 아프진 않을까,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가지 못할까 불안하기도 했다. 늘 좋은 일 앞에 괴로운 일이 찾아왔던 나의 루틴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7월 20일 공연 당일이 되었다. 새벽까지도 미친 듯이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하늘마저 화창한 얼굴을 선물했다. 생리 주기마저 하루를 쉬어주어 아주 쾌적하고 최적화된 기분과 몸으로 공연장에 입장했다. 정말 내일이 없을 것처럼,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놀 일만 남았다.


티켓팅날을 기점으로 수많은 관람 선배 분들의 "흠뻑쇼 N년차 꿀팁"을 정독하며 예습을 철저히 했다. 하나의 낙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준비물도 야무지게 챙겨 가고, 명당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오프닝 영상이 나오면서부터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른쪽, 왼쪽, 센터 뛰어!!


영상으로만 듣던 그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듣는 것이 꿈같았다. 더욱 열과 성을 다해 뛰었다. 하느님과 하이파이브하고 오는 수준의 물대포에 짜릿하고 시원했다. 물은 정말 원 없이 맞았다. 내내 물속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기분이랄까. 옷 마를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이 쏘고 끝까지 쏜다.


앞으로 장장 최소 3시간 이상 뛸 텐데 나는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입장 전에 한 고민은 집어치우게 된다. 그냥 분위기에 취하며 흐름에 맡기게 된다. 모두가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가만히 멀뚱히 서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이니 '나는 잘 놀지 못하는데 가도 되나?' 내심 걱정하는 사람도 두 손 높이 들고 뛰게 하는 마력의 공연이다. 클럽에 가 본 적 없어도, 워터밤 가 본 적 없어도 첫 경험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니 혹여 적응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고이 접어 넣어두시길.


사실 언니와 나는 사당역에서 만나 낮술을 조금 하고 알딸딸한 취기를 장착해 공연장으로 향하긴 했다. 그 음식점 곳곳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과 '야 너두! 야 나두!' 눈빛으로 대화하며 내적 친밀감을 다지는 앞풀이를 했다. 그렇게 서서히 예열을 하며 입장하는 것도 꿀팁이라면 꿀팁이겠다.


흠뻑쇼, 그곳엔 24,000명을 미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돕는 1,500명의 미(美)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2명의 깜짝 게스트가 24,000명을 미치게 하는 한 사람을 잠시 쉬어가게 했다. 꼭 게스트로 오길 간절히 바랐던 성시경의 등장은 또 하나의 감격스러움이었다.


오른쪽, 왼쪽, 센터 쉬어!

그의 재치에 반했다. 라이브로 듣는 그의 노래는 마음마저 촉촉하게 해 주고 정말 잠시동안 쉬어가게 했다.


올해로 재상 오빠는 48살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만으론 38살, 그냥은 40살에 입성한 해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싸이 흠뻑쇼에 갔다는 자체가 꽤 쇼킹한가 보다. 내가 참 점잖은 척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혹은 참 재미없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나 싶기도 했다.

좀 더 일찍 올 걸 하는 후회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흠뻑쇼를 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 커졌다. 내 안에 돌고래 음역대를 깨워주고, 내 안에 무한 흥 똘끼를 깨워주었으니 재상 오빠가 앞으로 오래오래 무대 위에 있어주시기를 절실히 바라는 날이 되었다.


내 안에 우울, 무기력, 불안을 기꺼이 끌어안고 살 용기를 주었으니 그렇게 살다 여름의 어느 하루 또 와서 살아갈 힘을 충전하고 갈 테니 부디 건강 잘 챙기셔서 "오른쪽, 왼쪽, 센터 뛰어!"를 외쳐주셨으면 한다. 나 또한 부디 건강하게 살아서 매년 흠뻑쇼를 찾아 원 없이 끝까지 뛸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올해 가장 잘한 선택인 싸이 흠뻑쇼. 그 선택을 하는 시작점에 마음에 불을 지핀 지희 언니에게 정말 고맙다. 끝까지 함께 신나게 놀아서 든든했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추억을 쌓았다. 흠뻑쇼에 흠뻑 매료된 우리는 내년에 또 티켓팅 예정이다. 내년에 꼭 티켓팅 성공해서 또 함께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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