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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위 Nov 19. 2024

두 번의 혼인신고

산 넘어 산

국제 커플인 우리에게 결혼식보다 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혼인신고’라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혼인신고는 한국인 아내와 말레이시아인 남편이 물리적으로 함께하기 위한 의례이자 양국에서 모두 이행하지 않을 시 벌금을 내야 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행정적 절차였다. 어느 나라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할지 오래 고민했지만,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에서 앞서 혼인신고를, 말레이시아에서 이후 혼인 인증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면 약 한 달이 소요된다. 일단 서류를 준비하는 것부터 복잡하다. 배우자의 기본 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의 각 원본과 번역본에 대한 공증을 대사관과 말레이시아 외무부 영사과 두 곳에서 모두 받아야 서류에 대한 효력이 생긴다. 사실 이것은 혼인 인증을 하는 데도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대여섯 페이지 정도인 혼인신고서와 함께 서류가 접수되면 일명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개인 정보를 노출해 혼인신고 완료를 더디게 한다는 점이다. 혼인 부서 내 게시판에 여권 사진을 포함한 신상 정보가 약 20일 동안 공개된다. 사기 결혼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이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 취지이다. 해당 기간이 지나면 결혼을 축복하는 증인들 앞에서 엄숙하게 선서해야 비로소 혼인신고가 완료된다.


  이렇게나 복잡다단한 혼인신고를 거치는 말레이시아와 달리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반영하듯 그 과정이 간소하다. 혼인신고는 배우자의 혼인 성립 요건 구비 증명서와 이에 대한 번역본, 실물 여권, 혼인 신고서만 있으면 끝이다. 혼인 성립 요건 구비 증명서는 미혼 증명서로 말레이시아인 배우자가 외무부 영사과에서 받는 서류다. 배우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혼인 부서에서 서류를 신청하고 추후 외무부 영사과에 방문하여 해당 서류를 직접 받으면 된다. 신혼여행을 하고 온 다음날, 준비한 서류들을 모두 챙겨 본가에 있는 구청을 찾았다. 약 10분이 지나서 혼인신고가 접수되었고 2주 후에 혼인신고가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





  한국에서 수월하게 혼인신고를 마쳐서 말레이시아에서도 혼인 인증이 물 흐르듯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말레이시아를 입국할 때 자동 출입국 심사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여권에 도장이 큼지막하게 쾅 찍혀 있지 않으니, 이민국에서 출입국 기록을 증명하라는 혼인 부서의 요구가 있었다. 모든 행정 시스템이 디지털화되어 인터넷만 있으면 1초 만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려면 영업일 5일이 걸린다.


  기본 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말레이시아 혼인 신고서 외에 미리 안내받지 않은 대여섯 장의 서류들을 추가로 제출해야 했다. 빨리빨리 효율의 민족인 한국인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신혼집이 있는 말라카에서 이민국이 있는 푸트라자야까지 왕복으로 3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약 10일에 걸쳐 마침내 혼인 인증을 완료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혼인신고라는 미션을 완수하며 각 나라의 행정 체계로부터 문화적 간극을 체감했다. 한국에서 단 10분 만에 처리되었던 혼인신고가 말레이시아에서 10일이 걸리며 말라카댁으로서 신혼생활의 시작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빠릿빠릿 서류를 준비하는 한국인 아내와 구닥다리 행정 처리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말레이시아인 남편의 팀워크를 목도했다. ‘배우자 비자’라는 두 번째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괜찮다. 배우자 비자 앞에서도 우리의 빛나는 팀워크를 발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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