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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무슨 맛일까?

당연한 것에 대한 심문

by 키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일상. 점심 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대화는 평범한 주제로 흘러가던 참이었다. 그러다 친구가 무기력한 하루를 뚫고 들어오듯 시답잖은 질문을 던졌다.



"언니, 토마토는 무슨 맛이라고 생각해요?"



질문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토마토는 토마토 맛이지, 무슨 맛이 있겠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친구의 표정은 진지했다. 대화에 재미를 붙이려는 의도가 아닌, 어디까지나 깊은 고민에서 나온 듯한 표정이었다.



"토마토에는 어떤 맛이 있을까요? 새콤함이 느껴지나요? 달콤함이 있다고 보나요?"



친구의 목소리는 확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 자체로 생각의 여지를 던져주었다. 장난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외였다. 대답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의 회로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원 시절이 떠올랐다. 지도교수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당연함을 머릿속에서 부수는 연습, 즉 당연시하는 것에서 문제를 내어놓는 게 연구의 기초이자 시발점이다.”



그 말은 늘 무겁게 다가왔다. 세상의 ‘당연한 것’들은 왜 그렇게 견고하게 느껴졌을까? 토마토 맛처럼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문제들, 그런 평범한 질문에서 사고의 씨앗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소녀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고 소년에게 로봇 장난감을 선물하는 젠더 규범. 대학교 진학이 필수인 양 강요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 익숙한 틀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너무도 단순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내게 던지고 있었다.



"토마토는 무슨 맛일까?"



질문의 깊이를 되새기며 스스로 답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첫째, 토마토는 즙에서 나오는 신맛이 새콤하다. 둘째, 오이처럼 아삭한 식감이 돋보인다. 셋째, 설탕을 뿌릴 때만 단맛이 더해질 뿐 본래 단맛은 거의 없다.


이 대답을 들은 친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질문에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대답해 줄 줄은 몰랐어요." 그러곤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오이는 무슨 맛이에요?"


그 순간 깨달았다. 단순하지만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이 질문이 결국 당연한 것들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토마토를 대중매체에서 습득한 방식 그대로 받아들였다. 토마토소스, 주스에서 나는 맛이 곧 토마토 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 덕분에 '내가 경험하는 토마토 맛이 모두에게 같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날 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토마토 맛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한 대화는 결국 삶의 경험과 주관적 관점의 차이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차이를 당연하다는 이름 아래 놓치고 있을까?


질문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일상의 틀을 흔들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고요한 사유 속에서 친구의 질문은 더 깊은 탐구로 이어졌다.


토마토의 맛은 단순히 하나의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누군가에게 토마토는 여름 한복판의 신선함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유년 시절 설탕을 뿌려 먹던 간식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맛은 단순히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은유하고 있었다.


결국 생각은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토마토의 맛은 개인의 경험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의 맛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며 체험하는 모든 감각을 비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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