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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노트를 아시나요?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by 키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숨이 가쁘게 달리기 시작한다. 뛰는 동안에는 오롯이 달리기에만 집중한다. 어느 순간부터 결승선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그러다 어쩌다가 숨을 쉬는 행위를 망각하며 결승선을 통과해 죽음을 맞이한다. 살면서 ‘죽고 싶다’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어도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마음속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현생을 위해 정신없이 살다 보니 끝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친구에게서 ‘엔딩 노트’라는 개념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내 친구는 부업으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능력자이다. 그는 학생들과 대화 중에 흥미로운 주제가 나오면 종종 나에게 공유한다. 쳇바퀴 돌듯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친구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친구의 물음에 곧잘 대답하였는데, 이날만큼은 말문이 막혔다. 살면서 ‘엔딩 노트’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친구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엔딩 노트가 무엇이냐고. 그리고 어디서 엔딩 노트라는 단어를 들었느냐고. 친구의 소탕한 웃음소리가 문자 메시지를 뚫고 나오는 듯했다. 친구는 어느 중년의 일본인 학생에게서 이 단어를 들었다고 답했다.


엔딩 노트는 죽을 때를 대비해 개인 정보를 작성하는 일종의 메모장이다. 가령 휴대폰 비밀번호나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 누구에게는 사소하겠지만 나에게는 매우 소중해 꽁꽁 숨겨 두었던 물건의 위치, 숨을 멈추었을 때 영면하고 싶은 장소와 같은 정보를 메모장에 적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엔딩 노트의 목적이다. 메모장은 휴대폰 메모장 앱이 될 수 있고,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노트일 수 있다. 죽음의 문턱에 서지 않았어도 삶의 끝자락을 생각할 때마다 엔딩 노트를 쓰는 행위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단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처음으로 당황했다. 현실이 급급하기만 한데 엔딩 노트까지 써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엔딩 노트를 곱씹어 보니 어느새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인생을 달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죽음에 초연해졌다. 사소한 계획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스스로를 괴롭히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던 나였다. 인간관계에서 나만 진심이었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속상해하던 나였다. 그런데 엔딩 노트라는 단어를 알고 나서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가벼워졌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겁다 보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우스워 보였다. 실수 하나로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관계가 멀어진 친구는 시절 인연으로 기억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나뿐인 삶을 공을 빵빵 차듯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모든 일에 굳이 얼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는 진리를 엔딩 노트를 통해 얻었다.


그날 이후로 휴대폰 메모장 앱에 엔딩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갈 듯한 순간이 올 때마다 엔딩 노트를 펼치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다.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을 엔딩 노트에 옮겨 적는다. 엔딩 노트라고 해서 문장을 조각하지 않는다. 손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릴 뿐이다. 엔딩 노트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일상생활을 보내다가 언젠가 사라질 나의 흔적을 누군가가 대신 정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동안 고된 인생을 사느라 고생했던 미래의 나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엔딩 노트를 작성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엔딩 노트를 쓴다. 삶의 끝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진솔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게 한 줄의 문장을 엔딩 노트에 추가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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