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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없는 삶이 있을까?

우리는 늘 결핍을 지니고 있다.

by 키위

여드름이 또 났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까지 여드름이 날 줄 몰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줄곧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던 여드름. 백옥처럼 깨끗한 피부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늘 피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남들처럼 투명한 피부로 살 수 있을까, 아니 여드름 피부마저 사랑스러워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했다. 다행히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결핍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잦아들었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나는 여드름으로 거울을 쳐다보기 싫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여드름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은 여드름이 빨갛게 올라온 내 모습조차 소녀 같다며 귀여워한다. 노랗게 부풀어 오른 여드름을 대신 짜주고 싶어 하는 그다. 피부과에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는 잠시 반짝였을 뿐 소용이 없다. 피부는 타고나야 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듯한 여드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문득 결핍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국어사전을 펼쳐 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뜻한다. 생각해 보니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에는 뽀얀 피부를 지녔던 나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드름이 있었다면 결핍이 없었을까? 분명히 나는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꽃봉오리처럼 붉게 맺힌 여드름 하나로 온종일 속상하다. 그제야 안타깝지만 피부에 대한 결핍은 한동안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어쩌면 결핍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게 세상사일 수 있겠다. 물질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있어야 할 게 없어지거나 모자라면 일상이 무너질 때가 있다. 돈에 대한 결핍으로 잘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며 입시를 포기해야 했고, 친구에 대한 결핍으로 혼자서 노는 나날이 익숙해야 했다.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자존감을 굽히며 헌신짝이 되었으며, 믿음에 대한 결핍으로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멸시했다. 꿈에 대한 결핍으로 직장 생활은 우울했으며, 직장에 대한 결핍으로 인정 욕구가 간절했다. 나의 세상은 결핍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암울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결핍은 분명히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졌다. 돈에 대한 결핍으로 이른 나이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고, 친구에 대한 결핍으로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남보다 나를 아끼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갔으며, 믿음에 대한 결핍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았다. 꿈에 대한 결핍으로 용기를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직장에 대한 결핍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로 지금의 일을 얻었다.


자유에 대한 결핍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환경에 대한 결핍으로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간에 대한 결핍으로 자극적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건강에 대한 결핍으로 삶은 달걀과 두유 한 컵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한다. 물질에 대한 결핍으로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정작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들였지만, 행복에 대한 결핍으로 내면을 되돌아보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결핍은 다른 결핍으로 대체되었고, 그렇게 나는 물 흐르듯 살아가고 있다.


결핍이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생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데, 결핍이 없을 리가!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럼에도 결핍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땅굴로 꺼지거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의 결핍으로 밀면이 탄생해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처럼, 결핍은 무언가의 원동력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내놓는다. 결핍이 있다고 마냥 슬퍼하지 말자. 맑은 피부에 대한 결핍이 있지만, 나에게는 여드름투성이인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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