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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오래전에 군대에서 불침번을 쓰던 기억이 떠올랐다. 2시간 혹은 3시간 단위로 울음소리에 일어나서 우유 주고 기저귀 봐주고 잠을 자지만 긴장해서 벌떡 벌떡 일어나서 수유를 진행했다. 피곤하다. 아니 개 피곤하다. 좀 더 우아한 단어가 분명 있을 건데, 지금 내 상황을 가장 잘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강조는 이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야간 수유를 하고 지금 잠시 숨 돌릴 타이밍에 잠이 오지 않아 잠시 기록을 남긴다. 시간의 순서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기록해 나간다. 분명히 기승전결 이어지지 않는 만들 이 되겠지만 지금 나에게 최선은 현재 감정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육아에 기쁨도 있지만 고난 고통도 있음을 꼭 알려줘야 한다는 쓸데없는 사명감이 생기는 하루이다. 이 순간이 힘들다기보다는 나의 다른 딸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시기이다. 나의 몸은 하나인데, 현재 나를 찾는 딸 아닌 3명인 상황. 이리 눈치 보고 저리 눈치 보고 몸은 몸대로 고단하고 나의 입술을 터져 가는 이 순간이 행복하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아들 딸 구분 없이 딱 한 명만 낳고 모든 사랑을 그 한 명에게 주는 것과 나 같은 경우처럼 3명에서 나눠서 줘야 하는 경우 어느 쪽 아이들이 본인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고 인지를 할까? 이런 실험은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런 실험결과를 참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나만의 논리로 정답을 유추해 보자면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이다. 왜냐하면 먼저 부모의 사랑을 정량적으로 측정하지 못할뿐더러, 사랑은 오랫동안 같이 있는다고 사랑이 샘솟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루종일 딸 혹은 아이와 놀아 줄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보육의 개념과 교육의 개념과 사랑의 개념은 다르다. 보육은 아이의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교육은 인성이든 지성이든 가르침을 주는 것 사랑은 말 그대로 사랑을 주는 것. 그 누구도 24시간 동안 사랑을 줄 수 있고, 오히려 잠시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너무도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걸 공감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의 대답은 숫자와는 상관없이 각기 처한 환경에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24시간을 아이들에게 얼마나 할당하고 진심을 다했는가에 따라 사랑을 주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에 나의 가설을 설명하고 있는지 잠시 숨 고르고 생각 중에 있다. 아 그래 나 육아 많이 힘들다 이야기하고 있는 거였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댓글로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은 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