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이야기
몸은 정직하다.
내가 몸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몸이 반응한다. 식습관을 적용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운동 측면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몸은 자주 쓸수록 움직임이 편해진다. 필라테스 수업을 듣던 어느 날, 모임필라테스의 LS 원장님이 발의 사용에 대해 물어봤다.
"견뚜기님. 혹시 발가락을 잘 움직이실 수 있으세요?"
사실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발가락의 움직임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발가락은 발의 일부분으로 걷거나 달리거나 점프할 때 땅을 디딜 때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발가락을 움직여보라니, 생뚱맞은 큐잉이었다.
발가락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발 건강에 좋다는 설명이었다.
우선, 서서 양발 모든 발가락을 들라 했다. 잘 들렸다.
모든 발가락을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들라 했다. 잘 안 됐다. 어떻게 어떻게 안간힘을 쓰니 겨우 됐다.
손으로 엄지 척하듯이 엄지발가락만 들어보라 했다. 안 됐다. 어찌 저찌해서 왼발 엄지발가락은 그나마 들렸다. 오른발 엄지발가락은 꿈쩍을 안 했다. 왼발 엄지발가락을 드는 느낌과 같은 느낌으로 오른발 근육을 조정해 보았는데, 미동이 없었다.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움직이는데 어떤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나는 나름 안간힘을 쓰는데 발가락은 꼼짝을 안 했다. 분명 내 몸이다. 그런데 내 엄지발가락만 드는 법을 몰랐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드는 연습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서 변기에 앉아서 습관적으로, 운동 시작 전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른 엄지발가락 척을 연습했다. 꼬박 1년이 넘게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자연스럽게 오른발 엄지발가락 척이 됐다.
꾸준히 연습한 결과다.
필라테스 수업을 받으면 스트레칭으로 하는 자세가 서서 롤다운으로 몸을 푼다. 선 자세에서 양손은 만세 자세를 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등부터 척추를 분절해서 등을 말면서 상체를 숙인다. 그리고 양손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숙인다. 그리고 천천히 복근의 힘으로 상체를 들어 올린다.
내친김에 내 자랑을 하자면, 동년배 남자에 비해 유연한 편이라고 LS 원장님이 늘 칭찬한다. 상체를 숙였을 때 무리 없이 양 손바닥이 바닥에 닿고 살짝 남는 편이다. 하지만 상체가 앞무릎에 닿을 정도로 유연하진 않다.
내 몸은 원래 뻣뻣하다. 나도 처음에는 상체를 숙여서 양 손끝이 땅에 닿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필라테스를 배우기 전에도 운동에 관심이 있어 회사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이런저런 운동을 배웠었다. 그때 시작한 것이 상체를 숙여 햄스트링 등 뒷다리 근육을 늘리는 스트레칭이었다.
하루 이틀 한다고 갑자기 유연성이 좋아지진 않았다. 햄스트링 스트레칭도 처음에는 숙이면서 햄스트링이 아파서 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1년 넘게 연습을 하니 조금씩 유연해졌다. 근육이 늘어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은 한두 번 했다고 해서 바로 적응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예로는 무릎 뒤 오금 스트레칭이 있다. LS 원장님의 회원 기죽이기 필살기인 스트레칭이다. 양발로 서서 상체를 숙이는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통해 뒷벅지 근육을 일단 늘린다. 다시 서서 한 발을 뒤로 뺀다. 그리고 양 발바닥, 특히 뒷 발바닥을 땅에 붙인 채 상체를 천천히 숙인다. 그러면 앞에 다리의 오금이 엄청 아프다. 그렇게 오금을 스트레칭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리고 뒷다리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앞에 다리 발 앞부분을 들어 몸 쪽으로 당기면 오금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프다. 처음에 이 오금 스트레칭을 했을 때, 수업 시작부터 멘털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그랬는데, 매일 운동하면서 하루의 루틴처럼 매일 오금 스트레칭을 넣었다. 매일 오금 스트레칭을 하니까 오금 근육이 많이 늘어났는지 그렇게 아프지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이 오금 스트레칭 때문에 달리기를 하면서도 무릎이 안 아팠던 것이 아닌가 싶다.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코어 근육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더니, 필라테스 5년 차인 지금은 평소에도 코어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꾸준히 연습하면 된다. 그러면 움직임도 편해지고, 근육에 힘도 붙는다. 즉, 건강해진다.
이는 운동신경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모든 필라테스 동작이 고난도 또는 고강도의 동작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은 수업은 대부분 평상시 사용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복근, 골반, 안벅지, 날개뼈 등 다양한 근육들을 나의 의지로 사용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어가 힘이 붙으면 다른 운동도 한결 쉬워진다.
다만,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힘들다고 꾀를 부리면 몸이 바로 그 꾀에 금방 적응한다. 써야 하는 근육 대신 조금 더 편하도록 반동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힘을 덜 쓰는 쪽으로 기대거나, 평상시 써 버릇하던 근육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점점 자세가 쉽게 흐트러지거나 망가진다.
런지를 예를 들어보자. 양 발을 앞뒤로 넓게 뻗고, 앞 무릎과 뒷무릎이 각각 90도가 되도록 구부리며 하체를 단련하는 동작이다. 그런데 양 무릎을 구부리면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아프다. 그래서 몸을 앞으로 밀며 앞 무릎에 기대 버린다. 그리고 편해서 그 자세가 몸에 익어 버린다. 그러다 무릎 다친다.
한번 편함에 익숙해진 자세는 다시 수정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바른 자세로 동작을 하려고 계속 의식해야 한다. 이것 또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가뜩이나 런지 하는 것 자체로 힘든데, 계속 자세와 동작에 신경을 써야 하니 두배로 힘들다. 그래서 몸은 정직하다. 꾀를 부리면 바로 꾀에 적응한다.
그리고 무리하면 바로 탈 난다. 괜히 욕심내서 단시간에 무리해서 운동하면 바로 아프다. 반응이 바로다.
이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그에 따라 몸이 익숙해지고, 강해진다. 그리고 근육도 자주 쓰면 쓸수록 사용법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안 쓰면 그만큼 몸이 굳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몸은 항상 정직하다. 내가 어떻게 썼는지에 따라 운동 능력, 가동 능력이 향상되고 퇴보한다.
필라테스의 여러 장점 중 하나는 평소에 잘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게 끔 해서 몸 구석구석의 근육을 깨운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나는 내 몸을 컨트롤하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