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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02. 2021

[금의지하] 자각 없는 연애고수와 츤데레의 수사 일지

중드 리뷰

금의지하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오피스 수사물에 로맨스가 가미된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수사물의 요소인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거나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그리고 극의 초반에 이미 엄세번이 흑막세력이라는 게 밝혀졌고, 육역도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죠. 흑막의 최종빌런을 찾아가는 게 수사물의 큰 흥미요소 중 하나라고 본다면, 금의지하에서는 이미 패를 보여준 거예요. 그렇다면 흑막을 밝혀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전개시켜야 하는데, 에피별 사건 해결로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다보니 극 전체를 끌어가는 힘은 약했어요.


그럼 남는 것은 오피스 로맨스입니다. 남자 상사가 여자 부하의 능력을 높이 사서 능력치를 키워주기 위해 엄하게 굴리고, 그렇지만 뒤에서는 남몰래 챙겨주고, 어느새 여자 부하는 그런 남자 상사에게 빠져들고 이런 설정이 현대극의 오피스물이었다면, 저는 정말 학을 떼면서 도망쳤을 거예요. 너무 뻔해서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는데다 전형적인 맨스플레인의 현장이잖아요.


근데 이게 남의 나라, 그것도 고전극의 형태로 옷을 입혀놓으니 재미의 한 요소가 되더라구요. 일단 저 시대에는 신분 고하가 존재했고, 육역은 원금하보다 신분 자체가 높고, 직장에서도 상사입니다. 그리고 육역이 있는 금의위는 원금하가 있는 육선문보다 상위기관인 것 같아요. 금의위가 별개의 기관이긴 한데 황제 직속기관이다보니 다른 부서의 지휘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니까요.


반면 원금하는 육선문의 말단 포쾌이자 가난한 집안의 입양아입니다. 그래서 셈에 밝고, 어릴 때부터 험한 일을 해서 그런지 사회생활도 능합니다. 그래서 원금하가 육역에게 숨 쉬듯이 하는 아부멘트가 제게는 큰 재미요소 중 하나였어요. ‘대인, 총명하시네요’ ‘역시 대인, 대단하세요’ 기타등등. 우리도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에게 영혼 없이 저런 멘트 자주 날렸잖아요. (그럼 육역은 그런 말을 당연한 듯이 듣고 있거나 ‘그걸 이제 알았느냐’ 이러는 게 또 다른 재미 포인트였어요.)


물론 처음에는 상사에 대한 영혼 없는 아부멘트였겠지만, 차츰차츰 육역에게 호감이 생기면서 영혼이 실렸겠죠. 그리고 낭원에서 눈발 날리는 환각을 보면서, 원금하가 말해요. 육선문에서는 항상 자신이 앞장섰는데, 대인 옆에서 부담이 없어졌다고요. 남자들만 가득한 육선문의 여자 포쾌이자, 홀어머니를 모시는 입양아로써 모든 걸 홀로 책임졌을 원금하가 어째서 육역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죠.


그리고 원금하가 어릴 때 친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설정 때문에 이 신분의 차이가 뒤집히거나 변동될 가능성이 있어요. 사실 저는 육역과의 신분 차이가 아예 뒤집히길 기대했습니다. 고귀한 아가씨가 된 원금하에게 쩔쩔매는 육역이 보고 싶었달까요.


반면 육역은 언제부터 원금하에게 호감이 생겼을까 짐작해보면, 아마도 원금하가 기생 분장을 하고 ‘도요’를 연주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겠죠. 근데 옆에 두고 부하로 써보니 나름 수사관으로 능력도 있고, 어설픈 면이 있어서 자기가 챙겨주기도 해야 하고, 이래저래 신경이 아니 쓰일 수가 없는 거죠. 거기다 사소라는 연적까지 나타나서 혼인하겠다고 금하한테 들이대니 속이 바짝바짝 탑니다. 아마도 결정타는 금하가 팔찌 찾아왔을 때였을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금하가 자기를 살리려다 죽는다 하니, 순정을 바치는 게 이상할 것이 없어요. (근데 죽어가는 순간마저 엄마의 위로금 챙기는 원금하와 못 준다고 실랑이하는 육역이 깨알 웃음 포인트였어요.)


근데 여기서 금하가 육역을 위해 처음부터 죽을 각오를 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일단 수총이 자기 손에 있었고, 독을 쓴다 해도 의선이 살려줄 거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덤벼든 거죠. 근데 예상치 못한 특이체질로 인해서 육역을 살리려다 정말 죽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죽어가는 자신을 찾아낸 육역에게 너 구한다고 목숨을 잃게 되네 이럼서 생색도 좀 내주고, 그치만 미안해하지마 이럼서 여운도 좀 남겨주고, 내가 원해서 한 거니까 이럼서 마지막 쐐기까지 박아줍니다. 이거 거의 연애고수 수준 아닌가요.


근데 금하는 이전에도 그랬어요. 위기의 순간에는 일단 육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거나 팔부터 덥석 잡곤 했죠. 그리고 육역이 결국에는 들어줄 거라 생각하는지 친가족 찾아달라, 오안방 도와달라, 이런저런 부탁도 해요. 무엇보다 육역이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요. 자각이 없을 뿐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진즉에 눈치 챈 연애고수의 기운을 풍깁니다.


보통 고전을 보면 남주, 여주가 서로 죽을 각오로 구해주고 이러는데, 원금하는 내가 정말 육역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갈등하고, 구해주고 나서도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되니 괜히 그랬다며 후회하기도 하고, 육역에게 내가 사라지면 슬퍼할 거냐며 여지도 남기고, 죽기 전에 엄마 위로금까지 챙겨요. 이런 여주가 고전에서 만나보기 힘든 캐릭터라 신선하면서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따른 육역의 반응도 재밌죠. 원금하가 뻘한 짓할 때마다 하찮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육역이 관전 포인트였어요.


그런데 금의지하를 로맨스물이라 보기에도 뭔가 미적지근해요. 생사고락을 함께해도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는 진척이 없거든요. 물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운이나 눈빛의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긴 하지만요. 그래서 가끔 등장하는 원금하의 뻘한 상상씬과 꼬꼬마로 돌아간 육역은 로맨스 진척에 목마른 시청자를 위한 팬서비스 차원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금의지하는 캐릭터쇼에 가깝게 느껴졌어요.


본디 로맨스가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니다보니 오히려 두 사람이 이어지고 나서는 이전의 캐릭터쇼 같은 재미는 줄더라구요. 자각 없는 연애고수와 츤데레의 밀고 당기기, 금하의 뻘한 짓들과 육역의 리액션을 볼 수 없으니까요. 이후에는 이거슨 애국드라마인가 싶을 때도 있고, 두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려나 싶을 때도 있어요. 이렇듯 이 드라마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계속 장르를 탈바꿈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진실을 안 육역과 원금하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관전포인트였어요. 육역은 여느 고전의 남주와 같이 밀어내고, 멀리서 지켜보고, 그럼에도 구해줍니다. 원금하는 여느 고전의 여주와는 다르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원금하라도 뛰어넘기가 힘들었나 봐요. 두 사람은 여느 고전극의 연인들처럼 운명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애절한 연인으로 변모합니다.


결국 최종빌런에게 복수도 성공하는데, 왠지 이 드라마의 성향 상 집안의 누명까지 벗겨야 둘이 이어질 것 같더라구요. 이러다가 단약마니아이자 도교신봉자인 황제가 죽어야 둘이 맺어지려나 싶었는데, 육역이 먼저 나서더군요. 그래요, 이 드라마는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관원들의 사랑이야기였어요. 왜 그런 식으로 책임지려하나 싶지만, 그렇게라도 정의실현을 해야 이들이 이루어지죠.


곁가지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보통 서브남은 나쁜놈인데 멋지거나, 순정남이라서 안타깝거나 이러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드라마 보면서 남주와 서브남 사이에서 괜히 우리가 고민하고 이러잖아요. 근데 금의지하의 서브남은 덜 떨어진 철부지 느낌이라 고민의 여지가 없더라구요.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지만 상관희가 사소한테 순정을 바치는 게 어색할 정도로요. 상관희의 외사랑이 애절한데도 설득력이 없었던 건 순전히 사소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외사랑 중인 상관희와 양악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었어요.


유리의 류따거는 여기서도 아역이랑 케미가 좋고, 차분한 남주와는 달리 리액션이 큰 조력자 역할을 하더군요. 정노는 무매력이다 못해 민폐스러운 서브남보다 조연이라도 청아하고 고상한 정노의 모습이 나았던 거 같고 그렇네요.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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