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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02. 2021

[장야1]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껴라

중드 리뷰

드덕이자 이야기 덕후인 제게 장야는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작품 같았어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사실 제게 장야는 초반 진입이 힘들었던 작품이었어요. 일단 초반부터 여러 세력이 등장하는데다 그 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거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리고 원탑 남주인 녕결 캐릭터도 왠지 모르게 뻣뻣하게 느껴져서 이런 대작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장야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체험을 하게 만듭니다. 초반 세력 관계를 얼추 파악하고 나자 철학적이고 시적인 대사들이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래서 초반에는 몇몇 마음에 드는 대사들을 받아 적어 보기도 했어요. 근데 이게 글로 다시 읽으면 그 감흥이 안 살더라구요. 배우의 입을 통해 아름다운 장야의 화면을 뚫고 나와야 그 느낌이 산다고 해야 할까요. 여기서부터 장야는 느껴야 하는 드라마구나 싶었어요.


거기다 화려한 액션씬, 수려한 자연풍광, 적재적소에 배치된 아름다운 OST까지 보고 듣고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영상 매체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 영리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진비우에게 녕결역을 준 것도 어쩌면 영리한 계산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일단 장야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주인공 녕결에 집중한 성장 서사예요. 그래서 시청자는 극이 진행됨과 동시에 녕결의 성장과 진비우 배우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게 되고, 결국 장야라는 드라마 자체를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진비우 배우가 노련하다거나 가만히 서 있어도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녕결 특유의 껄렁하면서 뭔가 어설픈데도 능력치를 숨기고 있는 캐릭터랑 잘 맞아 떨어졌어요. 그리고 녕결을 받쳐주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충분히 매력적이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해서 비우녕결에게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죠.


그럼 녕결의 주변인물들을 살펴볼까요. 우선 상상입니다. 최근 완주한 작품이 금의지하다보니 담송운 배우와 비교를 해보자면, 담송운이 딴딴하고 당돌한 귀여움이 있는 배우라면, 송이인은 흐물흐물하고 허술한 귀여움이 있는 배우더군요. 그리고 두 배우 모두 고전이든 현대극이든 저 특유의 매력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작품이 바뀌어도 마치 같은 인물처럼 느껴질 때도 간혹 있습니다. (저는 금의지하 보면서 가끔 이가인지명 리젠젠의 전생이 원금하는 아니려나 싶을 때도 있었어요.)


다시 캐릭터로 돌아와서, 상상이 우산 하나만 가슴에 꼭 안고 서원 뒷산 정상에 오를 때부터 비범한 인물이구나 싶었는데, 위광명과의 첫 만남 당시 빛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설마 광명의 딸인 건가 싶었어요. 근데 사실 녕결이 명왕의 자식일지 상상이 광명의 딸일지 명확히 밝혀진 건 없어요. 여튼 녕결과 상상의 관계가 네 목숨이 내 목숨이고 내 목숨이 네 목숨인 둘의 운명 자체가 묶여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의 관계가 빛과 어둠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게 될 거라는 추측만 가능해요. 이층루 입성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부자의 질문이 ‘광명과 암흑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였고, 그때 녕결의 대답이 ‘난 암흑에 서 있지만 마음은 광명을 향해 있다’는 것과 연결되기도 하죠.


다음은 막산산입니다. 막산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우리 쉔지 언제 나오려나 이러면서 기다렸는데, 막상 서치 막산산이 등장하니 쉔지가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이게 위의 두 여배우(담송운, 송이인)와 원빙연 배우의 가장 큰 차이점 같아요. 작품마다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거요.


캐릭터적으로 막산산은 녕결에게 세상으로 나와 처음 만난 여인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가족같은 느낌이라면, 막산산은 처음으로 호감을 느낀 여인이겠죠. 그리고 녕결보다 수행의 길에 먼저 들어선 선배이자 서예로 통하는 사이예요. 그래서 뭔가 흠모하는 첫사랑 선배같은 느낌이었어요. 결국 두 사람이 맺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막산산이 떠나기 전에 남긴 서찰이 인상 깊었어요. 녕결과 상상의 관계를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자신과의 관계도 좋은 인연으로 남겨두는 느낌이었거든요.


다음은 이어 공주입니다. 동요 배우는 정말 왕년의 장쯔이를 빼다 박은 모습에 섬세한 표정변화, 약간 코맹맹이 같은 목소리마저도 매력 있었어요. 위의 네 배우는 모두 자신의 목소리로 더빙했다고 하더라구요.


캐릭터적으로 이어 공주는 호천의 계시 속 불길한 인물이죠. 그런데 계시를 떠나서도 혼원이라는 싹수부터 글러먹은 놈을 보위에 앉히려는 게 당국을 도탄에 빠지게 할 것 같고 그렇죠. 그리고 漁(고기 잡을 어)라는 이름도 캐릭터의 성향과 잘 맞아요. 이어는 미색과 지략을 갖춘 인물로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이용하는 느낌이거든요. 이어에게 숭명거거, 화산악 장군이 이미 그물에 들어온 물고기라면 녕결은 그물에 담고자 하는 물고기겠죠. 근데 이미 그물에 들어온 물고기에게도 적당한 거리와 텐션을 유지해요. 물고기들 중 이어의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녕결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상까지 포섭하잖아요.


다음은 녕결의 스승님들입니다. 부자가 녕결에게 서원이라는 큰 그늘을 만들어줬다면, 안슬 대사는 녕결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전 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녕결의 사부인 안슬, 상상의 사부인 위광명은 사라져야 하는 존재들이었겠죠. 그래서 그 숙제는 결국 녕결과 상상에게 주어졌어요.


녕결의 형님 조소수는 극의 초반에 등장해서 무협의 인장을 강하게 찍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은 속세를 벗어나 수행을 떠나지만 녕결에겐 어룡방이라는 속세의 뒷배를 만들어주죠.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더더욱 느낀 건, 서원의 12사형들은 어쩜 그리 캐릭터랑 찰떡인 배우들을 캐스팅했을까 싶더라구요. 대사형의 유하면서도 진중함, 둘째사형의 날카로우면서도 츤데레같은 구석(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오다기리 조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유달리 둘째사형이 상상한테 따뜻하게 대한다고 느꼈는데,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셋째사저의 우아하면서도 시크함, 일곱째사저의 새침하고 말괄량이적인 면모, 좀 건너뛰어서 아홉째, 열째사형은 쌍둥이인가요? 너무 꼭 닮았던데요?


열둘째사형 진피피는 초반 고서루에서 녕결과 서신 주고받을 때는 저리 중요한 대사들을 왜 저리 발음이 빠르고 안 좋은 배우한테 맡겼지? 싶었는데(중알못인데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요;;), 볼수록 매력덩어리입니다. 사형들이 녕결의 배필 문제로 의미 없는 다툼 중일 때 몰래 빠져나와 녕결의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도 피피지요.


그리고 후반부에 중요한 인물로 부상한 도치 엽홍어입니다. 녕결이 엽홍어에게 손수건 메어줄 때부터 이들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싶었는데, 쓸 날이 올 거라던 일곱째사저의 손수건이 후반에서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하죠. 

근데 이미 상상과 맺어진 후라 녕결에게 엽홍어는 그저 식객이자 조력자입니다. 그에 반해 엽홍어에게 녕결은 애증의 대상인 것 같아요. 매번 녕결을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 말은 하는데,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녕결을 돕다가 엽홍어가 죽을까봐 염려되더군요. (온정이잖아요. 가뜩이나 애정이 가는데, 왠지 온정의 전철을 밟을 것 같고...)


마지막으로 녕결과 대립각을 이루는 하후나 융경황자도 각자의 사연이 있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라 명확히 악당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어요. 굳이 악당을 찾자면 오히려 서릉 자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왕후와 하후의 남매애, 화치 육신가와 융경의 로맨스처럼 때론 이들이 맺는 관계가 녕결이 주변인물들과 맺는 관계보다 더 애절하기도 해요. (융경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화치 밀어낼 때, 너한테 화치마저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눔아!! 정말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스토리적으로 보자면 서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건 무협물에 자주 등장하는 정도와 마도를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인 것 같아요. 근데 장야에서 던지는 질문은 좀 더 근원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13회에서 서원에 이제 막 들어온 녕결이 진피피에게 마종의 수행법에 대해 물었다가 호되게 한소리 들어요. 28회에서 이층루에 입성하여 부자의 제자가 된 녕결이 진피피와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마종을 언급하는데, 이때는 마종도 존재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무조건 그들을 악으로 규정해도 되는 건지 의문을 갖죠.


그리고 39회에서 녕결은 마종 산문에 갔다가 사숙의 호연기를 전수받고, 연생의 도철공법까지 배워 급기야 입마됩니다. 근데 그 호연기라는 게 입마를 넘어서야 통제가 가능한 것 같아요. 마도를 넘어서야 정도로 들어선다면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리고 애초에 마종의 뿌리를 광명에서 찾을 수 있으니 단순히 마도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남습니다.


부자의 직계제자 중 항렬이 높은 셋째사저도 황인출신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당소당같은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근데 부자는 셋째사저도 당소당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셋째사저에게 네 마음의 마도를 없애지 못했다며 나무라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근원적인 질문들이 보는 내내 돌고 돌아요. 그리고 이런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 장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크게 일조를 합니다. 그래서인지 액션이 강한 무협물인데도 신비로운 느낌이 많이 나요.


그나마 실마리로 주어진 건 녕결이 보던 서책의 ‘도가 널리 퍼져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달이 나타난다’는 구절과 거기에 대한 부자의 첨언인 ‘달은 빛과 어둠을 한 데 아우르게 하지’라는 말인 것 같아요. 그리고 녕결-상상, 황제-왕후, 진피피-당소당과 같이 운명이라는 인연으로 정도와 마도, 빛과 어둠의 조화와 균형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아요.


결말부에서 녕결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부분은 크게 놀랍진 않았어요. 극 내내 녕결은 장군부의 복수를 할 것이라 밝힐 뿐, 자신이 장군의 아들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녕결의 과거 회상 장면 중 녕결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가 있었고, 어린 녕결이 죽어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향해 외칠 때 비춰주는 인물의 복장이 평범해서 신분이 높을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이때껏 쌓아온 녕결이라는 캐릭터의 성장 서사에 고귀한 신분이 숨겨져 있다는 건 뭔가 어울리지 않잖아요. 녕결은 객관적으로 자신이 열세인 상황에서도 판을 뒤집으며 성장해 왔으니까요.


사실 장야는 위에 썼다시피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하는 작품이라, 이전의 리뷰들처럼 스토리를 정리하는 건 의미가 없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죠. 세계관 자체가 방대하고, 시즌3 제작은 불투명하고, 원작을 보려 해도 국내 정발이 되지 않았으니, 이야기 덕후인 저는 서사를 한몫에 정리해서 이해하고 싶지만 시즌2를 본다고 해도 계속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이 지향하는 주제도 그 모호함 자체인 것 같아요. 무엇이 정과 사인지, 무엇이 빛과 어둠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니까요. 그래서 장야는 그냥 보는 순간 느끼고 생각하고 즐겨야 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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