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우지우 Aug 11. 2021

[산하령] 지기애의 나라(3) - 사계산장

중드 리뷰

늘 그렇듯 팔할의 궁예질과 이할의 과몰입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24회까지 감상을 담고 있어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중반 이후 온객행의 사연이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밝혀지는데, 주자서와의 인연은 스치듯이 짧더라구요. 엇갈림만 20년입니다. 그 짧은 인연을 귀하게 간직할 만큼 이후 온객행의 삶이 지난했겠죠. 온객행이 견연인 거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사계산장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박정사 자매들도 만나는데, 온객행이 귀곡에서 발을 빼기엔 딸린 식구도 많고, 책임질 일도 많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당장 고상, 희상귀, 염귀, 박정사가 있고, 식시귀도 배신은 하지 않았죠.


그리곤 성령이한테 옛날얘기도 해줘요. 사면초가의 고통 속에서도 우연히 발견한 달콤함을 온 힘을 다해 추구한다는 건데, 아마도 자서와의 인연을 빗댄 말이겠죠. 온객행이 저리 줄줄 옛날얘기를 읊는 건 고상을 키운 경험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성령이가 온숙, 온숙하다가 눈치 빠르게 사숙이라 부르며, 사부님 심기 안 건드릴게요, 하니깐 못 이기는 척 얘기해줍니다. 사부는 자기한테 약하고, 온숙은 사부한테 약하다는 걸 잘 아는 성령이에요.


저는 BL이든 로맨스든 주인공들의 어릴 적 인연이 밝혀지고 나면 초반보다는 흥미를 잃는 편인데, 산하령은 이후에도 사건이나 감정이 몰아쳐서 흥미를 잃지 않은 것 같아요. 거기다 온객행의 사연을 견가네 공격 이후부터 시간순으로 토막토막 보여주죠. 그리고 온객행의 두 가지 정체가 하나는 귀곡주, 하나는 견연인데, 귀곡주인 것은 들킬까봐 염려하고, 견연이라는 것은 부정하면서도 감정을 터트리니깐, 숨겨진 사연 + 숨기고자 하는 정체 + 밝혀진 정체가 합쳐져서 캐릭터의 다면적인 성격이 증폭되는 것 같았어요.


사계산장으로 가는 도중 고상과 조위녕을 만나서 합석도 합니다. 약 지으러 가는 두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며 벌떡 일어나는 조위녕을 아상은 팔뚝 꼬집어 앉히고, 성령은 ‘친해지는 방법은 차차 알게 될 거예요’라고 하는데, 온숙과 사부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마라,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야 너도 친해질 거다, 이런 느낌이라 이런 성령 녀석 싶었습니다.


독갈의 습격을 피해 숨어든 집에서 심신도 견연을 알아보는데, 감정을 쏟아낸 온객행이 머리 짚고 피까지 토하니 맹파탕 때문인가 싶었어요. 이전에도 자서가 사계산장을 이어가라고 했을 때 머리 짚고 괴로워했잖아요. 그럼 맹파탕을 마셨는데도 어찌 아빠, 엄마, 자서를 기억하는거지 의문이 들었어요. 맹파탕의 효력을 뛰어넘을 만큼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피토하고 쓰러진 온객행이 자서에게 미안하다고 하는데, 아마도 니가 찾는 견연은 이제 없어, 미안해, 이런 의미일 것 같아요. 여튼 그리 피를 싫어하던 자서가 자기 소매로 온객행의 피도 닦아줍니다.


후반부로 들어서며, 산하령답지 않게 시원시원하게 사연을 알려주더라구요. 맹파탕 사연, 고상 사연을 쭉 알려주면서, 온객행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임을 알려줍니다. 본인도 두통으로 괴로워하다 미칠지도 모르면서, 자서의 목숨을 그리 신경 쓴 거였어요. 거기다 고상의 안식처까지 마련해주죠. 한명은 기한이 정해져있고, 한명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건데, 온객행은 두통과 각혈, 주자서는 오감쇠퇴 등 신체증상으로 보여주니 두 사람이 저런 상태라는 걸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건 엽백의 선배뿐이에요.


복수에 함께 하겠다는 자서의 말에 안심하면서도, 고상을 위험에서 배제하려는 온객행 때문에 왠지 불안했어요. 온객행 네가 자서를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것 같지가 않아, 이런 마음이었달까요. 아마도 자신을 염려하고, 복수하러 함께 가겠다는 자서의 마음이 고마웠던거지 아상도 보내고, 자서도 따돌리고 혼자 복수를 계획할 것 같더라구요. 조경에게 가려거든 네가 나은 후에 가야한다고 하잖아요. 따뜻한 곳에서 노년을 보내자는 말도, 너와 산속에 숨어 신선처럼 살 거라는 말도, 우선 자서가 무사하고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이후를 가정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자신의 계획은 황천길로 향하는 길이니, 일단 자서가 무사하길 바라겠죠.


그리고 아상이 하는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그가 잘해주는 건 내 정체를 잘 숨겼기 때문이다, 그가 잘해줄수록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진다, 진실은 언젠간 드러나게 된다, 다시 어둠 속에서 살게 될 거다, 이 모든 말들이 자기 마음 같았겠죠. 그리고 자신의 불안이기도 했을 겁니다.


초반에는 온객행이 용현의 아들일꺼라 그리 헛다리를 짚더니, 귀곡 출신임은 제대로 눈치채는 자서입니다. 아마도 같이 지낸 시간이 쌓이다보니 온객행의 반응 등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됐겠죠. 그래서 심신에게도 견연의 행적을 밝히지 않는 것 같아요. 온객행이 아상을 급히 보내는 것도 눈치채고, 그간 온객행의 어법에 단련되고, 표정도 읽게 됐으니 온객행의 계획도 짐작하겠죠. 드디어 세 사람은 사계산장으로 가는데, 사실 온객행은 저때 사계산장에 처음 가는 거죠. 어릴 때는 3개월 뒤에 가기로 해놓고 못 갔으니까요. 그리고 저 사계산장에서의 시간이 온객행, 주자서, 장성령이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될까봐 세상 불안했어요. 엽백의 선배 빨리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조경의 계책은 어찌나 신묘한지, 가끔 눈뜨고 보고 있어도, 어?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그렇게 한다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경 앞의 갈왕은 순진한 어린 양 같아 보일 지경이었어요. 그리고 갈왕을 비롯하여 조경의 심복들은 의부와 양자인 관계인데, 단체로 가스라이팅 당한 관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맹파탕 제조법을 원하는 갈왕을 보면서, 이 녀석도 온객행 못지않게 기구한 사연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온객행이 맹파탕을 마시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면, 갈왕은 맹파탕을 마셔서라도 잊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것 같았거든요.


초반 조경-독갈-귀형제들이 벌여놓은 모든 일들이 결국 온객행을 향하더라구요. 사계산장에서 세 사람의 평온한 시간과 너무 상반되죠. 마음이 통하는데 왜 돌아가느냐는 성령의 조언에 따라, 온객행과 주자서는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도 털어놓습니다. 자서의 사연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진왕의 사촌이라는 거였는데, 그간 자서의 부모나 출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그냥 고아일 꺼라 생각했거든요. 왜 자서같은 바른 사나이가 천창에 발을 들였나 했더니, 소년 장주의 애로와 인척의 부탁 때문이었더라구요. 일단 한번 발을 들이고 나서는 잘못된 길이라고 해도 손쓸 방도가 없었겠죠. 도망쳤다는 자서의 절규처럼 잘못 살아온 걸 돌이킬 순 없습니다. 근데 이건 온객행도 마찬가지예요.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귀곡주로 살아왔죠.


산하령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주인공 둘 모두 선과 악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에게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둘 모두 그러하기에 공평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진정령의 경우, 위무선이 마도의 길에 들어서기는 하지만 내단을 잃고 온가를 지켜야 하는 등 인물의 선함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운심부지처 둘째공자인 망기는 뭐 말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위무선의 죽음이나 망기의 기다림이 안타까워요. 선한 인물이 억울하게 죽고, 그로 인해 애끓는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야 하니까요. 원작에선 이릉노조의 잔인하고 악한 모습도 그렸다고 하던데, 드라마에서는 많이 덜어냈죠. 검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위무선에게 감정이입하고, 사연에 몰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각색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산하령의 주자서와 온객행은 천장의 수령과 귀곡주로 잘못 살아왔다는 느낌은 듭니다. 그래서 두 인물이 겪는 삶에 대한 달관이나 허무가 더 와 닿아요. 그리고 이유가 어찌됐든 그렇게 살아와서 언제든 삶을 버릴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는 거예요. 그것도 한쪽은 죽음을 앞두고, 한쪽은 복수를 앞둔 시점에 만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나는 죽더라도 너는 살리겠다는 형제애가 깔려 있죠.


객잔에선 늘 따로 방 잡더니, 어수선한 사계산장 덕분에 성령까지 한방에서 잡니다. 그로 인해 서로가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근데 자서는 소매로 피 닦아줬는데, 객행이 너도 손수건으로 좀 닦아주지 그랬니, 싶었어요. 그리고 둘의 관계에 중요한 순간에는 온객행이 주자서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잡더라구요. 강아지처럼 올려다보는 표정이 귀여워서기도 하겠지만, 성령에게 해준 옛날얘기 속 온 힘을 다해 추구한다는 자서에 대한 객행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요.


여튼 잠들지 못하는 밤, 두 사람은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셔요. 언제든 자신이 있는 사계산장으로 돌아오라는 자서의 말에 온객행은 생각이 많아지는 표정입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지 알 수 없고, 귀곡주인 자신의 정체를 알더라도 자서가 받아줄지 알 수 없어서겠죠. 근데 이미 자서는 ‘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건 없어, 묻지 못할 것도 없고’라고 말을 했었죠. 그래서 자기 이야기도 꺼내놨는데, 온객행은 아직 귀곡주라는 정체를 밝히기엔 두려운가 봐요. 자서가 자신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은 건 온객행이 궁금해 하기도 했고, 나도 그렇게 좋은 놈은 아니야, 이런 의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온객행이 그런 표정으로 ‘말하기 싫으면 못 들은 걸로 해’ 이러는데 어찌 말을 안 해주겠어요.


그리고 객행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천애의 외로운 기러기, 정처 없이 떠도는 행객’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넌 이제...’라며 말을 줄이곤 슬쩍 웃어요. 차마 말하지 못한 말줄임표에 여러 의미가 있겠죠. 넌 이제 혼자가 아니야, 넌 이제 돌아올 데가 있어, 낯간지러운 말이라 차마 못한 것 같아요. 그 대신 나도 너랑 성령을 만나기 전엔 떠돌 생각이었어, 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건 자서의 화법인 것 같아요. 온객행이 먼저 털어놓길 바라지만 강요할 수 없으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요. 성령을 제자 삼은 후 호숫가에서 ‘내가 먼저 한 발 가볼까 해’라고 했었고, 온객행이 귀곡 출신임을 눈치채고는 천창 시절 자기 이야기를 하죠. 니가 말할 수 없으니, 나는 이래,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겁니다.


온객행이 환각 속에서 봤다는 7살 적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시절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바람인 것 같아요. 부모님은 작은 의관을 차리고, 자기는 산장의 제자로 지내고, 자서가 자신을 지켜주는 허상인거죠. 아마 회상장면으로 뒤에 나오지 싶은데, 짐작 상으로는 진회장이 견가네 가족을 3개월 뒤에 데리러 오기로 약속하고, 자서가 온객행에게 한솥이를 주고 떠났을 것 같아요. 근데 그 사이에 귀곡에서 견가네를 공격하고, 희상귀가 온객행을 구해서 귀곡으로 데려간거죠.


그리고 두 사람이 짓는 시도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술자리의 마지막에 창밖을 바라보며, 자서가 ‘나그넷길이 즐거울지라도 일찍 돌아오느니만 못하리라’ 시를 지어요. 객행이 스스로를 나그네라 여기니 빨리 돌아오라는 겁니다. 사계산장 혹은 자신과 성령에게로요. 그걸 저렇게 우아하게 시를 지어 말한 거죠. 눈치 빠른 객행이가 못 알아들었을까요? 아마 알아들었지만 차마 귀곡주라 말할 수 없고,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겠죠.


자서 이름에 담긴 시 구절인 ‘자리에 앉아 그대 내 손을 잡고 함께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소서’는 어찌하여 뜻풀이가 저리 되는지 한자무식자인 제가 도저히 알 수 없기에 포기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좀 가르쳐주세요. 극중 등장인물들 이름은 그냥 한자 한글자, 두글자인데 거기에 고전이나 시구절이 담겨있거나 그렇더라구요. 저는 진정령의 남사추 이름이 이백의 시 구절을 따와 ‘임을 그리워해도 쫓을 길 없다’는 뜻을 담았다는 걸 알고 세상에나 마상에나 했었거든요.


그리고 자서는 니가 성령이 좀 가르쳐봐, 이럼서 은근히 온객행을 사계산장에 눌러 앉힐 생각인 것 같아요. 자기 제자를 남에게 맡기는 사부가 어딨냐는 온객행에게 네가 남이야?라며 말문 막히게 하죠. 거기다 성령이가 사숙이라 불러도 되냐, 사숙 무공은 어디서 배운거냐, 태사부한테 제사 드리러가자, 할 때마다 말줄임표만 늘어가는 온객행이에요.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봐왔다 믿고 싶지 않고, 자신을 진회장의 제자라 여기기엔 송구스럽습니다. 무심코 사부님이라 불렀다가 진 백부, 진 선배님, 한발씩 멀어지는 호칭을 쓰는 것도 안쓰럽죠.


그리고 온객행이 진회장의 무덤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데, 견연의 악몽이라 여겼다는 말에 정말 공감했어요.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아요?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이건 내가 겪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걸 경험하지 못했다면, 평온한 인생을 사신 겁니다. 이게 심해지면 이인증이나 해리성 장애로 가는 거겠죠. 극 초반에 온객행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건 약간 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 객행이 귀곡이라는 지옥 속에서도 견연이자 온객행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았어요. 맹파탕과도 싸우면서 말이죠. 내면적으로는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부모님과 자서와의 기억을 간직했기 때문이겠죠. 외부적으로 온객행이 살아남길 바라는 희상귀와 온객행을 따라다니던 고상 때문이었을 것 같아요. 온객행이 조위녕에게 ‘내가 아상을 구한 게 아니라 이상이 날 구했어’라고 하잖아요.


여튼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너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객행이라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자서한테 의탁해, 눈 막고 귀 닫고 영원히 사계산장에 숨어있어, 싶었어요. 근데 그러기엔 성령도 귀곡에 대한 원한에 사무쳐있고, 이제 한발 한발이 조마조마합니다. 그리고 온객행의 꿈을 보면, 견씨라는 성을 안 쓴 게 아니라 쓸 수 없었던 것 같아요.


평안, 칠야, 대무, 이제 등장인물 파악은 끝난 건가 했는데,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더라구요. 다시 초반의 머리 쥐내리는 느낌이 왔지만, 저들이 자서를 살려준다면 참아보리, 이런 심정으로 다음 방영분 기다립니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하령] 지기애의 나라(2) - 중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