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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1. 2021

[산하령] 지기애의 나라(4) - 생사지교

중드 리뷰

※ 28회까지 감상을 담고 있어요.


(3)편에서 이어집니다.


자서 이름에 담긴 시 구절인 ‘자리에 앉아 그대 내 손을 잡고, 함께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소서’는 지난번에 포기했었는데, 그래도 추측을 해보자면, 자서는 자기 곁의 사람과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보는 게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구소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못을 박았고, 사계산장의 81 형제를 잃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죠. 세상 권세에 큰 욕심 없고, 그저 자기 곁의 사람들과 무공 수련이나 하면서 살았어도 큰 불만이 없었을 것 같은 인물입니다. 근데 저런 사람이 천성에 안 맞는 천창에서 십년을 굴렀으니, 죽음을 불사하며 자유를 찾아 나온 심정이 이해가 돼요. 그리고 그 와중에 지기이자 사제인 온객행을 만났으니, 그 손을 놓고 싶지 않고, 천성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해요. 우선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함께 자리할 터가 필요해요. 예를 들면 사계산장이나 온객행의 노후계획 속 따뜻한 곳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손잡고 함께 해야 합니다. 나 혼자 손을 잡을 순 없으니, 상대가 살아 있고, 내 옆에 있어야 가능해요. 그리고 떠가는 구름을 바라봐야 합니다. 비오는 날 구름을 바라볼 순 없어요. 그리고 보통 여유가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겠죠. 그러니 맑고 평온한 삶이 전제가 되어야 해요. 쓰고보니 주자서와 온객행에겐 이상향과 같은 전제조건이라 마음이 아프네요.


온객행의 원래 이름인 견연의 뜻이 넓을 견이라며, 자유롭고 구속없이 살라는 의미라죠. 근데 귀곡이라는 지옥에 갇혀 살았으니, 온객행도 천성대로 못 산 건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복수를 위해 세상으로 나왔으니, 그에겐 죽음만이 자유인 느낌이에요. 그래서 온객행은 자서를 다시 만났음에도 바라던대로 살길 꿈꾸지 않는 것 같아요. 조위녕에게 간혹 어떤 일은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었다고 하잖아요. 자서가 곁에 있으니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람이지만 잡을 수가 없겠죠. 이미 지옥에 던져졌는데, 왜 지금 인간 세상으로 갈 길을 알려줬냐며 절규하잖아요. 이 시점까지 오니 상대를 더 놓지 않으려는 건 자서인 것 같아요.


자서는 객행이한테 너 없으면 밥도 안 해 먹을 거라 하는데, 객행이는 세상 처연하게 황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죠. 저때 객행이는 일단 엽선배를 막거나, 안되면 죽거나, 그도 아니면 몰래 떠나거나 여튼 끝을 예정한 것 같아요. 그래도 진회장 그림 표구도 다시 하고, 맡은 미션은 처리하는 객행입니다. 자서는 모르는 숯이 어딨는지도 알고, 성령이 방에 취생몽사도 피워준다 하고, 자서랑 성령이 밥도 해먹이고, 사계산장 살림꾼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눈치가 너무 빤한 자서예요. 온 신경이 온객행한테 가서 일수도 있고, 전직 천창 수령이었으니 저 정도는 눈에 읽히겠죠. 영양소 챙기려면 견과류 먹어야 한다고 객행이가 그리 잔소리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해바라기씨도 까먹는 자서예요. 온객행이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다 아는 것 같아요. 뒤돌아선 표정도, 표구 걸고 세상 기뻐하는 객행이를 바라보는 표정도 심상치 않습니다. 얘가 지금 떠나려고 이러나, 무슨 궁리하는 거지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도 엽선배와의 결전을 준비하죠.


자서는 술 한잔 하자는 청도 거절하고 엽선배 막으러 오고, 온객행도 만두 만들겠다 장담하더니 겉옷까지 챙겨입고 엽선배 막으러 왔습니다. 성령이가 돌아가지 말랬는데, 한명은 지름길로 한명은 숲길로 돌아가고 있어요. 군귀책이 강호에 퍼졌으니 엽선배가 오는 게 불안했겠죠. 자서랑 마지막으로 술 한잔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자서 방문 한참 쳐다보다 발길 돌려 나왔는데, 그래도 미련 남아서 세상 처연하게 피리 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견연의 행복한 일상이 꿈이었다는 말처럼, 사계산장에서의 일들이 꿈처럼 여겨졌겠죠. 체념이 체감화된 온객행을 담담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그래도 자서가 위험에 처한 건 바로 알아차립니다. 엽선배를 그리 목 빠지게 기다렸건만, 자서랑 객행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엽선배 앞의 두 사람은 추풍낙엽입니다.


저는 엽선배가 온객행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그들을 끝까지 도울 줄 알았는데, 지니처럼 원하는 거 말해봐라 이러더니, 제자의 빚은 빚이고, 산하령의 약속은 약속이라는 세상 칼 같은 사람. 검선 맞습니다. 그래서 자서가 당신은 사부님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하죠. 그리고 어쩌면 엽백의가 저런 사람이기 때문에 제자도 잃고, 지기도 먼저 보내고 저리 혼자 살아간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용현에게 육합심법을 가르치지 않은 건 좋은 게 아니라서 그렇다며 눈물짓는 걸 보면, 모두를 잃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걸 후회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근데 그 덕분에 자서가 귀곡주라는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객행이도 알게 됐고, 목숨 걸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심지어 온객행을 죽이려면, 자기도 같이 죽이라고 하잖아요. 온객행의 체념을 자신의 목숨으로 뛰어넘는 자서예요. 자서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객행이를 사계산장에 못 데려온 것도 한스러운데, 지금도 객행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뼈에 사무칠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진작 대무를 찾아가지 않았냐는 물음에, 너무 대수롭지 않게 그때는 살 생각이 없었다고 하죠. 이제야 살 이유를 찾았는데, 놓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자서의 대답을 들은 온객행이 설핏 웃는데, 아마도 그럼 이제는 살겠다는 거지? 이런 의미인 것 같아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 일단 자서가 살기로 마음먹은 게 기쁜가 봐요.


자서한테는 이미 정체 탄로났고, 여전히 성령이한테 미안한 객행이에요. 근데 자서는 자기 나으면 같이 복수하고 얘기하면 된다고 안심시키고, 나는 오래 속였잖아, 귀곡주가 애한테 죄책감 느끼냐며 놀리기까지 하죠. 평생 외롭게 살아온 객행이 옆에 이제라도 저런 자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객행이도 인간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꿈꾸게 되죠.


저는 진정령으로 단련되다보니, 이제 가슴부여 잡아야겠지, 이런 각오를 하면서 보는데, 산하령은 그런 저의 각오가 무색하게 그런 시점에도 농담하고 장난치고 달달한 둘을 볼 수 있어 평안한 느낌이에요. 엽선배한테 죽다 살아나 놓고, 이전의 용연각에서처럼 부축 안 해줘? 못 일어나겠어, 이럼서 장난치는 자서를 볼 있고, 성령이 땜에 걱정되면서도, 이전의 토끼손질하면서 물 뿌렸던 것처럼 약초 뿌리는 객행이를 볼 수 있죠. 그리고 그에 대해 유치하다고 반응하는 자서의 표정도 그때랑 똑같아요. 엽선배 못 막으면 어쩌려고 했냐는 물음에 맞혀봐, 할 때도 예전이랑 똑같잖아요. 상황이 어떠하든 한결같은 둘이라 제 마음이 흡족합니다. 그리고 목욕하는데 오지 말라는 객행이나, 옷 갖다 주면서 고개 돌리는 자서나 왜 내외를 하냐구요.


여튼 온객행이 귀곡출신이라는 거 눈치챈 이후로는 저렇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건 항상 자서인 것 같아요. 객행이가 피토하고 쓰러진 이후 깨어났을 때, 악귀로 살더라도 복수할 거라며 눈 부릅뜨고 외치니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하죠. 그리고 같이 복수할 거라고 안심시키기도 해요. 객행이가 엽선배한테 죽을지언정 정체 밝혀지는 게 겁났다고 하자, 파안대소하며 너 왜 이리 소심해졌어? 이럼서 귀여워하죠. 객행이가 계속 성령이 걱정하니깐 취생몽사 약초 갈며, 니가 잘 못 자잖아, 이럼서 너 주려고 이러고 있다 알려주기도 해요. 거기다 약초 가는 게 저리 고울 일인가 싶죠.


감정기복 심하고,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객행이를 자서가 달래고, 안심시키고, 기분 풀어주고 다 해요. 자서의 마음은 거의 객행이가 상심해하는 걸 못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도 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 단독행동하지 말라고 으름장 놓기도 해요. 그리고 객행이 없을 때는 사제의 잘못 절반은 제게도 있습니다, 이리 멋있게 말하면서, 막상 객행이 앞에서는 우린 메뚜기 묶음이라 서로한테서 못 벗어나, 이렇게 멋없게 말해요. 뭐 민망해서 일수도 있겠고, 너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는 뜻을 담아 흘러가듯 얘기한 걸 수도 있겠죠. 근데 자서의 저런 화법 때문에 시청자인 우리는 더 감기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난 게 초여름이고, 사계산장에서 새해를 맞았으니 반년정도 지났겠네요. 장식 파는 낭자가 미인이라 니네 사숙이 한 바구니 샀다며 툴툴 거리는 자서나, 넌 놀고먹어서 좋겠다고 핀잔주는 객행이나 이제 사계산장에서의 일상이 자연스러워 보여요. 객행이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식칼 들고 큰소리쳐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요. 막상 상 차려놓곤 밥부터 먹어, 술고래야, 이럼서 챙기거든요. 그리고 새해 밥상에서는 성령이가 진짜 큰 것 같더라구요. 예전처럼 근언신행 게임하며 한결같은 둘을 보며, 저도 방심했어요. 집이 없던 세 사람에게 집이 생겼는데, 행복은 잠시, 본격 시련이 다가오더라구요. 엽선배 기다렸던 것처럼 대무, 칠야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아직 만나지도 못했어요. 천창 놈들이 먼저 옵니다.


한영의 충심은 독이 되어 돌아오죠. 과거나 현재나 음양책이 화근입니다. 객행이는 가짜 유리갑 죄책감에 자서 걱정까지 더해져 내력 쏟아 붓고 쓰러져요. 한영의 죽음으로 멘탈 나간 객행을 일깨우려 자서가 ‘나야 (너의) 아서, 아서라고’ 했건만, 저러고 생이별입니다. 낯간지럽고 민망한 말 못하는 자서가 스스로를 아서라 칭했는데, 객행은 세상 불안정한 모습 보이고 쓰러진 상황이었죠. 그런 객행을 성령한테 맡기고 떠나야 했으니, 자서 마음은 이미 천갈래만갈래 찢어진 상태였을 것 같아요. 객행이랑 성령이 보호하려고 출발을 재촉하기도 하죠.


그 와중에 불타는 사계산장마저 목격했으니, 다시 초반의 달관과 허무의 자서로 돌아갑니다. 객행이 떠날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자신이 떠나게 된 거죠. 그것도 최악의 상황에서요. 저는 허무의 자서만 나오면 마음이 짠한데, 항상 곁에 성령도 객행도 없을 때 저러거든요. 객행이 불안해할 때는 자서가 다 해주는데, 자서가 그러할 때는 홀로 견뎌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자서는 불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냥 포기하고 달관하고 허무에 빠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짠하죠.


진왕 아빠는 자서 아빠 죽이고, 진왕은 자서한테 죽일 듯이 집착해요. ‘옛검에 대한 정이 깊거든 검을 부러뜨리고, 옛집을 떠나려하지 않거든 집을 없애버려라’ 저기서 검은 객행이고, 집은 사계산장인 것 같아요. 자서가 마음 둔 것은 다 죽이고 없애고 오라는 거죠. 다행히 성령이의 존재는 모르는 것 같아 객행이를 맡겼는데, 그 어린 것한테 지운 짐이 무겁고, 둘 다 무사할지,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요. 저러고 가는데 자서가 살겠냐고요.


천창과 독갈의 연결고리는 갈왕이었고, 조경이 약인 없애라고 해도 안 없애더니, 걔네들로 청풍검파 칩니다. 그래서 한영이 독갈한테 당했다고 진왕을 속였는데도 안 믿었던 거였어요. 그럼 유리갑의 행방이 하나는 갈왕, 세 개는 막회양, 하나는 온객행이지 싶은데, 설마 객행이가 진품을 방부지한테 뺏기고, 그걸 한영이가 뺏어서 진왕 손에 있지는 않겠죠. 우리 객행이 유리갑 따위 관심없다 이럼서 줘버렸을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무고 열쇠가 객행이한테 있을 것 같거든요.


여튼 청풍검파에 의탁해 있는 고상도 위험한 상황이에요. 옥수수 세 알 떼어 두 사람과 성령 같다며 웃더니, 그리운 건 아니래요. 온객행의 행적이 드러날까봐 보고 싶어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의 행복이 깨질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날까 불안한 아상이에요. 그리고 얘네 커플의 예감은 적중하는 경우가 많아 세상 불안하죠.


아니나 다를까 조위녕도 아상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덕분에 고상의 입을 통해 온객행의 귀곡 시절을 알려줘요. 고상 지키고, 노곡주 죽이고, 십대 악귀 갈아치우고, 그러고도 계획 차근차근 세워 복수하러 나온 거였어요. 아상이 원래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러는데 저러고 살았을 생각하면 안쓰러워요. 거기다 어린 시절 조경과의 만남도 보여주니 환장하겠습니다. 가짜 유리갑 죄책감도 한 짐인데, 조경 미끼 자책감까지 얹게 생겼어요.


그리고 대무, 칠야의 대화를 통해 진왕이 자서에 대한 무서운 집착으로 사계산장 형제들도 다 죽였다는 거 알 수 있죠. 자서 곁의 사람들 부러뜨리고, 없애버리고 이전부터 그랬던 거였어요. 진왕이 칠야도 독살하려 했는데, 자서가 구해줬나 봐요. 그러면서 백성과 대의를 위해서라며 자기합리화 쩝니다. 진왕은 정도다, 자서는 야망이다 팽팽히 맞서죠. 자서를 다시 데려온 것도 아직 자서가 멀쩡해 보이고(아니다, 다 죽어간다), 쓸 만한 가치가 있어서 데려온 거였어요. 그러면서 너를 지기로 여겼다하니, 자서가 그럴 자격 없다며 백의검을 안 뽑을 수가 없습니다. 자서가 어떤 마음으로 객행이를 평생의 지기라고 했는데, 고작 저런 마음으로 지기라 입에 담으니 가증스럽죠.


자서가 ‘옛집은 불탔고, 옛검과 옛사람은 남길 필요없다’고 하는데, 여기서 옛집은 사계산장이고, 옛검과 옛사람은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아요. 니 옆에 있느니 차라리 죽겠다, 이런 의미겠죠. 살아서 나갈 생각 없었다고 하잖아요. 그럼 객행이는? 성령이는? 싶지만, 자서는 이미 자신은 내려놨고, 니네라도 무사해라, 이런 심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미 사계산장 떠나기 전 성령한테 당부할 때 저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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