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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1. 2021

[어사소오작] 이과형 인재들의 로맨스 수사물

중드 리뷰

우선 드라마가 젊고 신선한 느낌이라 재밌게 봤습니다. 조연 몇몇을 제외하곤 배우들도 처음 접하는 얼굴이었어요. 이런 새로운 얼굴들과 참신한 연출이 어우러져 더 신선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로맨스 수사물이라는 장르적으로 레퍼런스를 삼을 수 있는 작품은 금의지하, 소녀대인이 있을 것 같고,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은 경여년이 살짝 떠올랐습니다.


금의지하에 대해서는 따로 리뷰를 남겼는데, 수사물로는 허술하고, 로맨스로는 미적지근한 금의지하가 재밌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느슨한 이야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캐릭터의 매력과 두 주연배우의 케미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남자 상사와 여자 부하라는 두 주인공의 관계, 결국 강직한 관원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어사소오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소녀대인의 경우, 로맨스 수사물 중 로맨스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느낌이에요. 남장여자라는 여주의 설정과 제왕이라는 남주의 신분 때문에 로맨스는 더 부각돼요. 그리고 두 주인공이 서로의 신분을 감춘 채 만나게 되고, 그럼에도 소자는 이전부터 제왕을 동경했고, 그런 소자와 배소가 어릴 적 인연이 있는 등 간질간질하고 달달한 로맨스적인 설정이 듬뿍 깔려 있어요. 반면 수사물로서는 평이한 느낌입니다.


그럼 어사소오작은 어떤 느낌이냐하면, 수사물로는 위의 두 작품보다 스토리가 쫀쫀합니다. 로맨스적으로는 위의 두 작품의 중간 어디쯤 위치해 있는 것 같아요. 대인이자 상사 느낌이었던 금의지하의 육역과 달리, 어사소오작의 소근유는 단순히 상사라기보다 신분이 특별한 공자님 같아요. 굳이 초초의 상사가 아니더라도 삼법사를 관할하는 왕야라는 신분으로도 충분히 초초의 노동력 혹은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라고 할까요. 그래서 오피스 로맨스 느낌이었던 금의지하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반면 소녀대인의 제왕은 어사소오작의 왕야보다 신분이 더 고귀해요. 그러나 삼촌에게 견제 받아 신분을 숨겨야 하고, 수사관보다는 무관인 장군의 느낌이에요. 반면 왕야는 자신의 신분을 공적이든 사적이든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엄청난 추리력을 갖춘 수사관입니다. 그렇지만 타고나길 몸이 약하고, 무예를 못해요. 그래서 약간 초식남 느낌이에요. 결론적으로 특별한 신분의 초식남과의 로맨스인데, 확정적인 상사는 아니라서 극이 진행되는 동안은 신분의 고하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직종의 파트너쉽적인 관계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왕야가 초초의 능력을 높게 사는건지,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는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왕야 본인조차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초초의 능력을 높게 사서 눈여겨보고 특별하게 대하다보니 정말 특별한 존재가 된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초초가 역적의 딸이라 의심될 때 호감을 표했다면 좀 더 로맨틱한 캐릭터가 됐을 것 같은데, 우리의 이성적인 왕야는 그 순간마저도 증거부족을 이유로 판단을 유예하죠.


그리고 남주도 그렇고 여주도 그렇고 두 주인공이 엄청난 이과형 인재들이라, 의미를 내포한 대화를 주고받거나,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거나 이러지 않습니다. 설령 그게 오해라고 해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너에 대한 마음은 이렇다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연출상으로도 그걸 직관적으로 보여줘요. 여주 때문에 화나서 피토하는 남주는 처음 봤어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도 너 나 믿니? 응, 믿어, 이런 내용이 초반부터 주를 이뤄요. 직관적이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선을 읽어야 하거나, 여백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하거나 이렇지는 않아요. 결과적으로 고구마는 없는데, 문과형 인간인 제게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 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사극으로서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쫀쫀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스피디하게 진행됩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시청자가 추리하기도 전에 주인공들이 먼저 단서를 발견하고 추리하는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중드의 긴 호흡과 느슨한 이야기 구조에 적응한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아요. 비슷하게 쫀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경여년의 경우, 스토리는 탄탄한데 묘하게 여유가 있어서 중간중간 추리할 여유가 있었거든요. 근데 어사소오작은 추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시청자가 추리하기도 전에 초초가 검시를 끝내고, 왕야가 추리에 정리까지 끝낸 상황이거든요. 남녀주인공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굴곡 없는 능력캐입니다.


반면 빌런은 생각보다 일찍 알려줍니다. 경여년처럼 표면적인 빌런이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빌런이 있고, 최종빌런을 보여주지만 그게 끝이 아닐 것 같고 이런 구조는 아니에요. 오히려 초반에 환관 진난을 대놓고 보여주고, 허여귀, 이장, 냉장군, 박고재 등 여러 빌런으로 의심되는 세력을 보여주고, 그 중에서 빌런을 걸러내고, 그 세력들 간에 어떻게 이어져 있고, 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종빌런을 찾아가는 스릴은 없습니다. 경여년에서 중반까지도 진평평이 어떤 놈인지 알 수 없기에, 범한과 진평평 사이를 보는 시청자에게 긴장감이 흐르는 것과는 달리, 어사소오작에서는 설여성이 어떤 놈인지 알기에, 소근유와 설여성 사이를 보면서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왕야가 언제쯤 눈치챌까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결말부를 이야기 하자면, 금의지하가 장르를 탈바꿈하면서 결말부에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변하는 것과는 달리, 어사소오작의 두 주인공은 끝까지 이성적입니다. 하물며 혼인마저도 빌런을 잡기 위해 이용하죠. 그래서 이토록 이성적인 이과형 인재들의 사랑이야기라니 싶었어요. 그리고 두 주인공 모두 역적의 자식이라는 누명을 벗었음에도 구구절절한 사연팔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고 신박한 느낌이에요.


주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근유의 쌍둥이 형인 소근리는 근사한 장군인데 뭔가 개그캐 느낌이었어요. 복잡한 사정은 말하자면 기니깐 넘어가자고 하고, 남동생을 너무 애지중지해서 동생바보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초하 구하러 초초가 물에 뛰어들고, 초초 따라 소근유가 뛰어들고, 소근유 따라 소근리가 뛰어드는 장면은 어찌보면 감동적인 장면인데, 짧은 호흡으로 줄줄이 뛰어들다보니 뭔가 웃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런 느낌에 큰 공헌을 한 건 소근리였습니다. 초초 보고 소근유가 뛰어드는 거까지는 엇! 했는데, 소근유 보고 소근리까지 뛰어들자 어엇! 큭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왕야에게 모든 걸 양보하는 속 깊은 형이자 멋진 캐릭터죠. 심지어 남주를 공주님 안기까지 하잖아요.


뒤로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진 캐릭터는 경익이었어요. 초반에는 남주 옆에서 촐랑대는 서브남 느낌이었는데, 냉월과의 로맨스가 궤도에 오르고, 초반의 그 능글맞음도 점점 수사에 딱 맞게 쓰여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지붕 위에서 냉월을 위로할 때 주저주저하면서 어깨에 손을 얹거나, 옥에 갇힌 진난을 속이러 갈 때 다다다다 뛰다가 들어가는 등 자잘한 설정들도 좋았습니다.


냉월은 민폐 느낌이 없는 서브녀 캐릭터로 잘 빚어진 느낌이었어요. 강호를 떠돌던 무인이자 의원이고, 초반부터 여주인 초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나아가 초초를 지켜주고, 소근유, 소근리 등과 혼담이 오가지만 전혀 굴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해악을 끼칠 의도가 1도 없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경익과의 로맨스가 가랑비에 옷 젖듯 미미하게 이루어지지만 후반부에 힘을 갖는 것 같았어요.


오프닝에서 이전 회의 사건이나 이야기들을 요약, 축약해서 정리해주면서 이과형 인재들의 감정선을 그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비녀가 등장하는 오프닝, 냉패산이 등장하는 오프닝, 시경이 등장하는 오프닝으로 여러 버전이 있어서, 그거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리고 비녀가 등장하는 오프닝은 극 중에서 비녀가 나오기 전에 나오고, 냉패산이 등장하는 오프닝은 극 중에서 냉패산이 나오기 전에 나오죠. 시경이 등장하는 오프닝만 극 중에서 시경의 비밀을 밝혀낸 후에 나오더라구요. 아무래도 이야기의 후반부 오프닝이고, 사건들이 연결되서 끝을 향해가는 걸 보여주려고 빨간 줄도 등장한 것 같아요.


지형지물 미니어처 마니아인 선종, 수염 마니아인 진난, 시화 마니아인 경치, 금붕어 마니아인 설여성, 조각가 이장, 주인공인 소근유마저도 초초를 위한 도구를 제작하거나, 목각을 조각하거나, 진난을 마주하며 종이꽃을 접는다거나 끊임없이 손을 놀리죠. 하다못해 초초랑 부엌에 나란히 앉아 콩 까는 왕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신분이 높은 남캐들에게 저런 취미와 같은 설정들을 준 것 같아요. 초초는 소처럼 검시와 해부를 하고, 냉월은 의원 보조와 무예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설정들이 없거든요.


초초 역할의 배우는 초반에는 땡글땡글한 토끼같은 표정이 너무 귀여웠는데, 뒤로 갈수록 연기가 단조로운 느낌은 들었어요. 근데 초초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다지 다채로운 연기를 필요로 하는 캐릭터가 아니긴 하죠. 추리와 대사량이 많은 작품이라 뭔가 어설프고 싱크가 안 맞는 wetv 자막이 아닌, 정식자막으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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