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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0. 2021

[장가행&천고결진] 두 여주에 대한 고찰

중드 리뷰

※ 이 글에는 장가행, 천고결진, 진정령, 산하령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몇몇 작품이 언급될 것 같아요.


장가행 25회에서 장가가 나의 장군 구하려다가 연쇄적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서 결국 아시륵준이 떠나는 걸로 마무리되었는데요. 그걸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중드에서 여주의 매력이 잘 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요. 최근 보고 있는 작품이 장가행, 천고결진 두 작품인데, 두 작품 모두 여주의 매력이 원작보다는 죽는다는 느낌이에요. 물론 원작에 대한 정보는 저도 귀동냥으로 들은 거긴 한데, 원작은 거의 여주원탑의 느낌인데 이걸 드라마로 각색하려다보니 이런 상황이 오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장가행 원작에서는 장가가 거의 먼치킨처럼 능력치 만렙에 혼자 역경을 헤쳐나가며, 아시륵준도 극 중반을 넘어서야 만난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이렇게 하면 남주의 비중이 줄어들잖아요. 그럼 인기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힘들고, 제작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있겠죠. 그래서 드라마 상에서는 초반부터 두 사람을 만나는 걸로 설정하고 로맨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특히나 여성시청자한테 어필하기 위해 희생남 캐릭터가 부각되다보니 오히려 여주 캐릭터의 매력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막상 장가가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아시륵준이 나타나서 도와주거나 구해주거나 이런 상황이 오는 거죠. 거기다 한발 더 나가서 아시륵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가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연이어 불행이 찾아오는 상황까지 오는 것 같아요.


근데 캐릭터적으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는 있어요. 장가는 하루아침에 역적의 딸이 되어 변방을 흘러흘러 초원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백성의 고통과 아두, 공손항 등의 희생을 보았어요. 자신이 아무리 이세민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도, 사적인 원한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진짜 공주가 되었지요. 그래서 당나라의 안위를 지키고자 이세민을 구하고 나의 장군을 구하려는 서사가 아주 설득력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이게 아시륵준의 불행과 연결되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리고 저런 장가의 상황을 배우가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연기한다면, 그래도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넘어서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거예요. 근데 아두, 공손항 죽음/ 나의, 아이아 죽음/ 이런 식으로 미션 해결하듯이 사건들이 넘어가버리니깐 배우의 감정선을 느끼기도 애매하고, 사건의 개연성을 따지기도 애매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경우 여주를 이해하고 싶으니까 저런 상황에서도 장가를 미워하기보다 아시륵준이 장가 만나서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구나, 엄마도 죽고 장가도 떠났으니 저 맘이 오죽할까, 이렇게 아시륵준 입장에서 몰입하게 되더라구요.


마찬가지로 천고결진도 원작에서는 상고가 스스로 삼계를 위해 희생하는 스토리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드라마 상에서는 초반부터 백결과 사제관계로 만나면서 백결이 상고의 사명을 일깨워주고 희생하는 스토리로 진행되다보니, 역시나 상고의 매력은 줄어들고 희생남 백결의 매력이 사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매력적이고 희생적인 남주를 만들려다보니 반대효과로 여주의 매력이 죽는 것 같아요. 원작은 여주원탑 느낌인데, 드라마로 넘어오면 희생남주 로맨스가 되어버리는 이런 상황은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인 것 같아요. 소설이나 만화는 여주인공한테 몰입하면서 스토리를 따라 가는데, 영상매체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주를 자주 보고 싶으니까;; 여주 캐릭 망가지면 승질나다가도 멋진 남주 캐릭에 홀려서 보게 되는 양가감정 쩌는 우리 시청자들 때문일 수도 있겠더라구요.


생각해보면 남주도 멋지고, 여주도 멋진 드라마는 선뜻 떠올리기 힘들어요. 특히나 고전에서는요.(초교전이나 연희공략 등이 있겠으나, 제가 완주를 하지 못했기에;;) 그나마 유리(전신이니까요, 그러나 현생에서는 맹하죠), 삼생(지위가 깡패입니다, 그러나 좀 독선적이죠), 일촌상사(무공하는 여주입니다, 그러나 고집스럽죠) 정도가 떠오르는데, 여주 캐릭터가 저래야 남주가 희생할 수가 있죠. 뭔가 여주가 완벽하게 멋있으면 남주가 비집고 들어가서 희생할 틈이 없어요. 근데 이게 어떤 효과를 가져오냐면 시청자인 내가 여자라도 남주의 감정선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고전 특유의 애절한 감정선이 형성되는 느낌이에요. 여튼 저의 경우에는 그러합니다. 지금도 아시륵준 네가 고생이 많다, 이럼서 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혹자는 대륙, 한국 등 동아시아의 여인네들이 브로맨스, BL, 지기애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전통적인 남녀관계에서 가능한 관계성이 아닌 새로운 관계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더라구요. 일단 남녀로맨스에서는 강한 남자가 약한 여자를 지키거나,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영웅이 미인을 구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한정적인데, 남주 둘의 관계성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파생가능하다는 거죠. 거기다 섬세한 감정선만 얹으면 이보다 덕질하기 좋은 컨텐츠가 없습니다.


제게는 진정령이 그러했는데요. 이 무슨 듣도보도 못한 스토리에 듣도보도 못한 감정선이란 말인가, 이럼서 훅 빠져들었어요. 그리고 무선과 망기의 관계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지키고 구하고 이런 서사도 아니잖아요. 이건 산하령도 마찬가지인데, 자서와 객행도 어찌보면 둘다 시한부인데 서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관계잖아요. 제게 진정령에서 위무선은 그저 처절한 인물이라 체감적으로 느껴진 캐릭터였다면, 망기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엄청 노력했던 캐릭터였어요. 반면 산하령의 자서와 객행이는 자서의 마음도 알겠고, 객행이 마음도 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건 진정령은 처음 보는 중드다보니 이런 서사와 감정선에 면역력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고, 두 작품의 스토리 진행이나 캐릭터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진정령 이후 수개월동안 중드를 보며 노하우가 쌓이고, 리뷰를 쓰면서 스토리 정리, 해석, 캐릭터 감정선 분석에 감이 잡히다 보니 그런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튼 단순히 잘생긴 남주 둘이 나와서? 혹은 BL이라는 금기감 때문에? 우리가 지기애 드라마에 빠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뭔가 다양한 관계성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는 거죠. 반면 그냥 로맨스 드라마로 넘어오면 위에 서술한 것처럼 뭔가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게 주로 여주쪽에서 발생하다보니 안타깝긴한데, 남주 캐릭터가 먹혀야 드라마를 많이들 볼테니깐.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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