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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0. 2021

[박하지하] 연출로 살펴보는 이 드라마의 싱그러움

중드 리뷰

※ 8회까지 시청 후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며 느꼈던 심상을 글로 옮기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이 드라마는 남겨두고 싶어서 써 봐요. 세상에는 수많은 청춘물이 있습니다. 중드 역시 마찬가지죠. 그리고 중드 청춘물에 공식처럼 나오는 어릴 적 인연, 같은 동네 친구 혹은 오빠(키크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지고지순한 남주, 왈가닥 혹은 손오공 같은 여주 등 스토리는 한정적인 것 같아요. 거기다 학교나 캠퍼스 등으로 공간도 제한적이니 다양한 이야기가 꾸려지기도 힘들겠죠.


그리고 청춘물의 경우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 청춘 특유의 풋풋한 분위기를 어떻게 담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보고 있는 박하지하가 왜 유독 흥미롭고 싱그럽게 느껴지는가 생각을 해봤는데, 촬영, 편집 등 연출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스토리나 배우들도 참으로 상큼해요. 그러나 순간순간 들어가는 삽입컷들, 햇빛을 이용한 촬영 등이 전체적인 드라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느낌이에요.


1회 도입부입니다. 남주 린난이가 일하는 만화카페 따란시앙이 나와요. 그리고 하양파랑 마린색의 처마를 보여주고, 자그마한 코르크병이 엮여있는 풍경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때는 도입부라 그냥 스쳐가듯 봤어요.


그리고 2회로 넘어옵니다. 발레연습실에 있는 여주 퉁시의 옆얼굴로 노란 햇빛이 쏟아져요. 정말 오후의 햇살같은 따스한 느낌이에요. 이때만 해도 그냥 예쁘다, 하고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발레연습을 마치고 나온 퉁시가 어릴 적 린난이랑 함께 갔던 박하정원에 우연히 들릅니다. 그때 박하정원의 풍경, 그네가 매달려 있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이 드라마 범상치 않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 동네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온갖 인생사 걱정 한번쯤 안 해본 청소년이 있을까요. 이때부터 저 박하정원을 가본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나의 학창시절과 연관된 기억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3회로 넘어옵니다. 도시에서 전학 온 퀸카로 위장 중인 퉁시에게 담임선생님이 벽보를 맡기죠. 린난이의 도움도 거절하고 큰소리 땅땅쳤지만, 퉁시는 그림에 재능이 없습니다. 어둑어둑해진 교실에 홀로 앉아 시름하고 있는데 린난이가 깜짝 방문해서 빵도 건네고, 벽보 그림도 그려줘요. 그리고 퉁시에게 저 뒤에 가서 보라고 하죠. 근데 퉁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불 꺼진 교실의 책상 위로 책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곤 그 위로 두 사람의 대화만 잠깐 얹혀집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후에도 교실의 풍경을 다른 각도로 살짝 더 보여주고,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요.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을 마쳤다면 야자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창밖으로는 이미 까만 밤이 내려와 있고, 드문드문 앉아서 야자를 하던 교실의 풍경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이렇게 이 드라마는 인물과 스토리 사이에 저런 여백을 남기는 삽입컷을 보여줘서 시청자의 과거 기억을 소환시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다음날 퉁시와 린난이가 바닷가에서 보상 기한을 협상하는데, 파도치는 해변의 모습 위에 퉁시의 목소리가 얹혀지며 이후에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줘요. 이건 4회에서도 이어집니다. 따오주와 왕이밍이 바닷가에 서서 퉁시와 린난이 사이를 의심하는데, 그때도 파도치는 해변을 먼저 보여주면서 왕이밍의 목소리를 들려준 후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춰줘요.


5회에서는 거의 햇살 연출에 정점을 찍습니다. 운동회에서 반 친구들과 왈츠를 추기로 한 퉁시는 결국 린난이에게 SOS를 요청합니다. 퉁시가 린난이의 집에 찾아오고 박하정원에서 두 사람은 왈츠를 춰요. 오후의 노란 햇살이 두 사람의 얼굴로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린난이가 퉁시에게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하는데, 그때도 창가에 앉아 있는 퉁시 얼굴로 햇살이 쏟아집니다. 살풋 잠든 퉁시의 얼굴을 린난이가 스케치북에 담죠. 장면도 간질간질하고 예쁜데, 저 노랗고 따뜻한 색감 때문에 더 몽글몽글해져요.


그리고 중드 청춘물에서 가끔 나오는 대열이 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르잖아요. 반 전체 학생이 열 맞춰 걷는거려니, 그러면서 구성도 바꾸고 하나보다 짐작만 합니다. 근데 왈츠는 뭔지 체감적으로 알잖아요. 그래서 저 청소년들이 왈츠 추려고 아웅다웅하는 게 와 닿습니다. 그리고 여중, 여고를 나온 저는 중학교 때는 훌라를, 고등학교 때는 학춤을 반 전체로 췄었거든요;;(저런 반 대항 무용대회를 했었습니다. 저런 걸 왜 시켰을꼬.) 가을 햇살 쏟아지고 운동장에 먼지 날리고 반 애들 우르르 몰려나와 춤 맞춰가며 연습했던 기억이 소환됩니다. 그리고 저리 많은 인원이 춤을 맞춘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죠.


그리고 6회에서 아빠의 집에 간 퉁시가 아빠가 써놓은 소설의 한 구절을 읽어요. 꿈을 쫓는 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인데, 아직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퉁시의 상황과 연결됩니다. 역시나 따스한 햇살 받으며 글을 소리내어 읽던 퉁시의 모습을 마지막 구절 읽을 때는 클로즈업해서 보여줍니다. 화면 가득 담기는 퉁시의 얼굴과 도록도록 굴러가는 퉁시의 눈동자를 보여주며 퉁시의 지금 심경과 연결시켜요.


그리고 따오주, 왕이밍 커플은 발만 잡거나, 손만 잡거나 이런 식으로 감정선을 아기자기하게 보여줍니다. 6회에서 왕이밍은 따오주의 연극 연습을 맞춰줘요. 그러다가 검은 고양이 편지지에 얽힌 미신에 대해 옥신각신하는데 이때 한발씩 뒤로 물러나는 두 사람의 발만 잡죠. 휙하고 뒤 돌아가는 왕이밍의 발걸음까지 잡아요. 그리고 8회에서는 따오주가 자신한테 그 고양이 편지를 보냈다고 오해한 왕이밍이 따오주를 따라가 팔목을 붙잡는데, 붙잡는 손, 안절부절하며 농구공 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는 거까지 보여줘요. 이외에도 7회 따란시앙에서 얼결에 따오주의 손목을 붙잡곤 자기도 모르게 슬쩍 웃는 왕이밍도 보여주죠. 엄청 티격태격하고 코믹한 커플인데 이런 연출 때문에 간질간질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8회에서는 스케치 시퀀스도 참 좋다고 느꼈는데, 퉁시에게 칭허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지 말지 고민하는 린난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푸른잎사귀, 하얀구름 삽입컷을 넣고 등장인물들을 스케치하듯 보여줍니다. 발레 연습하다 웨이저 선배의 연락에 설레어하는 퉁시, 따란시앙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린난이, 친구들에게 둘려쌓여있는 퉁시와 그를 보는 니샤오완, 연극 연습하는 따오주, 농구장에 주저앉아 따오주의 편지를 보며 고뇌하는 왕이밍, 선배 만날 때 입을 원피스를 입어보는 퉁시, 만화를 그리는 린난이, 그리곤 린난이 옆으로 카메라가 이동하며 초점이 맞춰지는 박하화분.


극장 앞을 지나는 퉁시 아빠, 극장 안에서 연습중인 퉁시 엄마, 시험지 넘기는 반 친구들, 다이어트하는 퉁시, 마감을 넘기는 린난이, 박하 2권 포스터를 붙이는 따란시앙 사장님, 그리곤 바닷가 풍경 삽입컷, 선배 사진 보다가 얼른 발레 연습하는 척하는 퉁시, 낡은 건물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삽입컷, 왕이밍의 방에서 연극 연습하는 따오주, 칭허 게시판에 퉁시의 소식이 없자 실망하는 린난이까지 쭉 흘러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ost 위로 시간의 흐름과 인물들과 중간중간 들어가는 삽입컷들까지 참 예쁘고 물 흐르듯 담더라구요. 여튼 이런 촬영, 편집 등 연출 때문에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싱그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만 마칠게요.

 출처 : 박하지하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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