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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2. 2021

[침묵적진상] 침묵되어 온 사건의 진실

중드 리뷰

‘침묵적 진상’ 본방을 달렸습니다. 일주일에 한편씩 방영하다가, 하루 한편 방영으로 변경되어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드디어 완결이 났습니다.


일단 드라마는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2000년, 사건을 추적하는 2003년, 사건이 밝혀지는 2010년입니다. 가장 불편한 층은 아무래도 사건이 발생한 2000년인 것 같아요. 여성이 피해자고, 대기업이 관련되어 있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피해자만 양산한 채로 끝나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답답하고 화병이 날 것 같은 층은 2003년부터입니다. 검사 장양이 경찰 주웨이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힘들게 찾은 단서는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주웨이와 장양은 신변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바닥까지 무너지는 건 장양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신임 검사의 정의감과 여자친구의 부추김으로 시작했을 것 같아요. 허나 점점 사건이 장양의 삶을 잠식해버리죠. 그래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하는 심정적 상태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리고 장양역을 백우 배우가 맡다보니,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하나씩 잃어가는 모습이 절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얼마 전 홀이금하를 완주했는데, 여기는 홀이금하에서보다 더 합니다. 그리고 10회까지 오면 건강까지 잃어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장양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주웨이는 2010년까지 경찰신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진실을 밝히기 위해 6개월 전에 휴직을 했고, 현재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장양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런 장양마저 죽었으니 자신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건을 추적해가는 동료로 천밍장이 있죠. 그러나 천밍장은 사건을 추적해가는 와중에 법의관을 그만두고, 한발 물러납니다. 그래서 과거의 장양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거나 현재의 주웨이를 말리는 역할을 해요. 사건에 어느 정도 다가서 있느냐 혹은 사건을 추적하며 얼마나 인생이 망가졌느냐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태도나 역할이 달라지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또 다른 공모자로 장차오와 리징이 있는데, 이들은 장양의 건강이 위태로워진 시점부터 개입하게 됩니다. 장차오의 경우 교수일 때는 사건을 묵인했고, 변호사일 때는 장양을 법적으로 구할 수 없었기에 총대를 멘 것 같아요. 그리고 장차오의 설득으로 리징도 개입하게 됩니다. 장양에게 처음으로 사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한 것도 리징이었죠.


그래도 그나마 흥미진진한 층은 2010년입니다. 아마도 사건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니깐 그렇겠죠. 그리고 수사팀장 옌량 캐릭터가 묘하게 사람을 끕니다. 옌량역의 리아오판 배우는 예전에 영화로 보고 드라마에서는 처음 보는 건데, 그때 느낌 그대로였어요. 순전히 계륜미를 보려고 봤던 '백일염화'의 남주였어요. 그리고 그 영화도 범죄스릴러 장르였고, 거의 누아르 느낌으로 어두컴컴했던 기억입니다.


옌량의 수사방식은 거의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진행되고, 약간의 감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믿을만한 부하 샤오마만 데리고 다니죠. 약간 사수가 부사수를 키우는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이 수사팀에는 여자팀장 런웨팅도 있습니다. 이전에 옌량과 인연이 있었고, 옌량이 어떤 사람인지, 수사 스타일이 어떤지 알고 있어 군말없이 따르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런 옌량과 런웨팅의 관계가 약간 '비밀의 숲'의 황시목과 한여진을 떠올리게 했어요.


이전에 어떤 평론가가 사람들이 한여진 캐릭터를 좋아하는 게 조신함 때문일 수도 있다며, 한여진은 만만치 않은 캐릭터지만 이상할 정도로 남자주인공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 걸 보고, 일면 수긍했었습니다. 그리고 런웨팅도 같은 팀장의 지위지만, 옌량의 지시에 따르고, 무리한 일정이나 동행 요청에도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죠.


그리고 폭파현장에 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옌량에게 꺼내놓기도 해요. 술 한잔하면서 황시목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한여진이 떠오르죠. 물론 한여진은 개인사가 거의 지워진 인물이라 황시목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않아요. 그리고 런웨팅이 꺼내놓은 개인사가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이 작가는 유독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는데, 런웨팅 뿐만 아니라 장양의 전여친, 리징 등 여캐를 다루는 방식이나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모습은 남성작가의 한계를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제게는 은비적각락도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파멸과 비극의 이야기로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침묵적진상 안에서도 이런 아버지의 부재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해요. 현장을 뛰느라 바쁜 주웨이는 아들을 자주 볼 수 없습니다. 장양의 아들은 처음에는 부모의 이혼, 이후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를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역전된 상황도 나오죠. 아들을 잃은 옌량은 아들의 고무공을 항상 손에 들고 있고, 아버지를 잃은 장양의 아들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은비적각락의 장차오양이 거의 끝까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던 것처럼, 침묵적진상의 인물들도 비슷한 감정의 흐름입니다. 경찰이었던 런웨팅의 아버지는 임무 중에 죽었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런웨팅 또한 경찰이 되었죠.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주웨이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경찰이 되기를 꿈꾸죠. 아마 이런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 작가의 주요테마인 것 같아요. 딸인 런웨팅은 약간 끼워맞추기 식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저는 최종빌런인 쑨촨푸나 후이랑보다 그 밑의 수하들 때문에 더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부패경찰인 리줸궈, 후이랑의 하수인 노랑머리, 무엇보다 사진관 주인이 정말 짜증났습니다. 그건 아마도 윗대가리들은 TV 뉴스에서나 볼 수 있지만, 저런 잔챙이들은 실생활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나봐요. 그리고 애초에 사진관 주인이 후이랑한테 필름만 안 갖다 바쳤어도, 이후에 장양한테 필름만 순순히 내줬어도 사건이 10년이나 걸쳐서 밝혀질 일이 아니었죠. 그리고 저런 평범의 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의롭지 못한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공모자가 밝혀집니다. 신문기자 장샤오첸이었어요. 후이랑이 장샤오첸을 보고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할 때부터 뭔가 느낌이 안 좋더니, 사건의 피해자 명단이 3명인 것을 보고 느낌이 더 안 좋았어요. 왜냐면 사건의 피해자 2명은 이미 2000년 층에서 나왔고, 나머지 한명이 문제인데 그 한명이 장샤오첸인 것 같았거든요. 2000년 당시에는 학생이었고, 이후에 이름을 바꾸고 신문기자가 됐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리고 10회 마지막에 장샤오첸이 주웨이와 통화를 하는 걸 보면서 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수사망이 점점 좁혀지자 주웨이는 공모자들과 함께 플랜 D로 계획을 진행하기로 하죠. 7년에 걸친 준비다보니 여러 플랜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계획은 자신이 경찰에 잡히는 거였어요. 그리고 주웨이를 찾아낸 옌량과의 대화에서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 은비적각락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만약 은비적각락의 어린 옌량이 지금의 어른 옌량이라고 하면, 옌량은 항상 관찰자이자 성찰하는 입장에서 서 있거든요.


은비적각락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주차오양이었고, 옌량은 주차오양을 둘러싼 사건에 개입하기도 하고 관찰하기도 하면서, 극의 마지막에 성찰을 통해 진실을 택하죠. 침묵적진상에서도 10년의 걸친 사건의 진상을 쫓아가다가, 마지막에 주웨이를 대면하면서 진실에 대해 성찰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어린 옌량은 결국 주차오양과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어른이 된 옌량은 주웨이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죠. 그리고 어린 옌량에게는 보살피고 지키고 싶은 웨푸와 아빠가 있었고, 어른이 된 옌량에게는 동료형사였던 밍양과 장샤오첸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샤오첸을 지키고자하는 건 장양과 주웨이의 신념을 이어받은 거라 더 의미가 있죠.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사건의 가해자는 이미 밝혀졌고, 그 사건을 드러내기 위해 공모자들이 어떻게 공모하고 작전을 세웠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밝혀집니다. 그리고 허우구이핑의 살인사건 당일의 진실도 밝혀지죠. 장샤오첸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그리고 장샤오첸으로 살고자하는 그녀의 선택도 이해가 되죠. 삶이 망가져본 경험이 있는 장양은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지만, 주웨이는 이해하지 못해요. 그리고 자신의 딸이나 아내에 빗대야만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남성의 한계이기도 하죠.


그리고 공모자들이 모여 차근차근 계획을 준비하는데, 리쉐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장샤오첸도 합류합니다. 장샤오첸이 사건에 개입하길 원치 않았던 장양과는 달리, 주웨이는 그녀에게 계획을 흘리며 은근히 설득한 거죠. 리징을 설득한 장차오, 장샤오첸을 설득한 주웨이 등 남캐들의 설득으로 여캐들이 사건에 개입하는 부분도 약간 한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여성들보다 그 사건을 쫓다 살해당한 허우구이핑의 살인사건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기도 해요. 그리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장샤오첸이 높은 분들 쭉 모셔놓고 브리핑하듯 진술하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여튼 마지막회는 장양의 마지막 순간들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혼한 전처와 재결합을 했는지 아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이때 아들과의 대화가 결말 부분이랑 연결됩니다. 옌량이 아들의 공을 장양의 아들에게 건네주고, 공을 손에 든 장양의 아들은 구름을 보며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여요. 이 작가의 주요테마인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결말부에 완성시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양의 죽음까지 지켜보며, 옌량은 관찰자의 자리에 다시 서게 됩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옌량이 후반부로 들어서며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요. 그 시작은 장양의 아들을 볼 때였고, 마지막은 장양의 죽음을 볼 때인 것 같아요.


결말부에 법과 조국, 국민 등을 언급할 때는 국뽕의 느낌도 살짝 났는데, 중드기에 어느 정도 짐작은 돼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모자들이 죽거나 감옥에 가야하는 현실은 씁쓸했고, 쑨촨푸나 후이랑처럼 대기업 관련인들은 너무 쉽게 죽어버려서 허무했어요. 그리고 결말부에 가서야 정치인도 관련되어 있다는 게 밝혀지죠. 돈, 권력, 성, 이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는 범죄스릴러의 단골소재인데, 그만큼 자주 발생하니깐 이런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그려지는 거겠죠. 엔딩에서 옌량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비추면서 끝나는데, 작가는 어디선가 옌량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계속 쓰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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