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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Aug 12. 2021

[은비적각락(나쁜 아이들)] 나쁘거나 미치거나 죽거나

중드 리뷰

‘침묵적진상’을 보다가  ‘무증지죄’ ‘은비적각락’과 원작 작가가 같다고 해서 찾아봤어요. 넷플릭스 이용자가 아니라 ‘무증지죄’를 볼 방도는 없고, 접근이 쉬운 ‘은비적각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채널A에서 방영할 때 지나가며 몇 장면을 스치듯이 봤었고, 당시 궁금해서 원작에 대해 좀 찾아봤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다보니 원작은 훨씬 잔인하고 어두컴컴한 이야기라는 잔상과 초반에 여자 아이가 추락하고 결말에 남자 아이가 경찰이 될 거예요 이럼서 마무리된다는 스포 정도만 기억이 나더라구요.


막상 정주행을 한 느낌은 각색 과정을 잘 거친 건지, 그렇게까지 잔혹동화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야금야금 보고 있는 ‘침묵적진상’의 주인공 이름이 옌량인데, 여기 남자 아이의 이름도 옌량이더라구요. 그래서 설마 그 옌량이 이 옌량이 큰 건가? 싶더라구요. 원작 작가가 같다고 하니 세계관이 그리 연결될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에 경찰이 되겠다던 남자 아이가 옌량이었습니다. 사실 ‘침묵적진상’의 옌량이 어째서 지금과 같은 어른이 된건지 궁금해서 ‘은비적각락’ 초반을 흥미롭게 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나 2~3회

지나가면서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해서 중간에 끊지를 못했습니다.


일단 사건들이 촘촘히 연결되서 이야기가 굴러가기 때문에 글로 잘 정리할 자신은 없기에, 그리고 다시 정주행할 엄두는 나지 않기에 정말 느낀 감상 위주로 써볼게요. 초반에는 옌량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막상 이야기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주차오양입니다.


주차오양은 전교에서 늘 1등이지만 교우관계가 그닥 좋지 못합니다. 주차오양의 엄마 역시 차오양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는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기를 원할 뿐이죠. 여름방학을 맞은 어느 날, 그런 차오양에게 고아원에서 도망친 옌량과 웨푸가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돼요.


친구가 없던 차오양과 집이 없던 옌량과 웨푸는 그들만의 연대를 하게 돼요. 이때 차오양이 엄마의 귀중품을 숨기는 테스트를 하는데, 옌량과 웨푸가 그 테스트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경계를 푸는 게 아이들다운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장둥셩의 살인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이 사건은 이들의 연대를 더 강력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장둥셩은 행적만 보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사건을 저지르고, 그걸 덮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저지르는 느낌이었어요. 부인과 자신의 이혼을 지지하는 장인과 장모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부인을 죽이고, 이후에 왕리, 왕야오, 주융핑까지 죽입니다. 모두 자신을 위협해서이거나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였죠.


극 후반에 들어서면 이런 장둥셩도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초중반에는 거의 감정적 동요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유일하게 동요하는 순간은 아이들의 경고장을 발견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자신이 정상화시킨 삶에 균열을 예고하는 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장둥셩의 살인사건 외에도 큰 사건이 하나 더 있죠. 주징징의 추락사입니다. 이 부분은 좀 복잡한 심리가 작동한 것 같아요. 우선 웨푸의 경우 차오양 오빠 대신 작게 경고를 해줄 선량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근데 주징징이 곱게 옷 차려입고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아빠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새삼 각성하게 되죠. 그래서 주징징을 대할 때 자격지심이 조금 더 발동했을 것 같아요.


주차오양의 경우 웨푸와 주징징을 말릴 생각으로 쫓아 올라온 건데, 주징징이 차오양을 보자마자 몰아붙이며 아빠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차오양의 역린을 건드리죠. 그래서 차오양이 징징의 죽음을 방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역린이 건드려져 징징을 구할 정신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징징의 추락사는 사고사인데, 이후의 수습 과정이 차오양의 결정적인 실수였죠.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빠가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차오양은 그 사실을 숨깁니다.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징징의 그 말이 사실일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때 옌량은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말하기 힘들어진다며 사실대로 말하길 권해요. 이후에도 옌량은 장둥셩을 신고하기 위해 차오양에게 복사본을 요구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차오양은 복사본을 건네지 않습니다. 잃을 것 없는 떠돌이 고아인 옌량은 정의로운 반면, 아빠의 사랑도 엄마의 착한 아들도 잃을 수 없는 차오양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었어요.


아마도 옌량에게 가짜 복사본을 넘기는 시기쯤, 차오양은 진실이 아닌 동화를 믿기로 한 것 같아요. 차오양이 동화를 택한 결정적인 계기는 아빠의 녹음기를 발견한 순간이겠죠. 녹음기를 발견한 이후 어린 시절 아빠와 놀이공원에 놀러왔다고 말하는데, 아빠는 그 기억조차 없고, 그게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차오양의 아빠도 차오양이 녹음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두 부자가 같이 동화 속에서 행복한 척 했던 거였어요. 그리고 아빠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차오양은 아빠에게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근데 그 진실을 아빠가 죽기 전에 들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빠의 재혼가정으로 넘어오자면, 왕야오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아들이 잠깐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허용 못하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차오양의 새 신발을 밟은 징징에게 오빠는 너처럼 매일 좋은 신발을 신지 못한단다, 얘야, 이럼서 자식을 타이르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자식 잃은 어미의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차오양 모자를 몰아세울 때는 약간 미친 여자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차오양 모자가 징징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온 상황에서도 은근히 동생을 부추기죠. 이리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딸, 동생, 남편, 심지어 자신까지 희생되니 댓가치고는 가혹하죠.


그래서 다른 면에서 보면 차오양이 장둥셩의 손을 빌어, 아빠의 재혼가정을 하나하나 파멸해 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징징의 추락사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차오양을 의심하는 재혼가정의 구성원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죽잖아요. 애초에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 엄마, 아빠의 이혼에서 비롯된 걸로 보이니까요. 극중에서 차오양이 엄마, 아빠 둘 다 자신만 챙겼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리고 사건의 말미에 오면, 차오양에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던 엄마의 모습이 아닌 애매한 표정의 엄마와 여전히 착한 아들 역할에 빠져 있는 차오양의 모습으로 마무리 되는 것도 뭔가 섬뜩하죠. 그리고 개학식에서 옌량을 모른 척하는 차오양의 모습을 보면, 차오양은 계속 동화 속에서 살기로 한 것 같아요.


반면 옌량은 진실 쪽을 택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말에 진실을 파헤치는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걸 수도 있겠죠. 극중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어른은 천관셩인데, 애들이 천아저씨조차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를 못해요. 오히려 장둥셩과 기묘한 공조를 하기도 합니다. 장둥셩이 웨푸를 살려준 건, 웨푸가 손가락에 붙여준 작은 밴드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순간의 친절이 장둥셩의 마음을 흔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장둥셩에게 옌량이 자신과 반대편의 사람이라면, 차오양은 또 다른 자신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옌량을 살려주면서는 나처럼 살도록 안 죽일 거라며 저주와 같은 말을 하는 반면, 차오양에게는 동화를 믿어도 된다며 답을 주죠. 그래서 아빠의 재혼가정을 파멸해가는 것도 그렇고, 차오양과 장둥셩이 겹쳐지는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장둥셩의 마지막 대사인 “동화를 믿어도 돼”가 실제로는 “내게 아직 기회가 있을까요?”라는 차오양의 질문에 장둥셩이 “아직 있어”라고 대답하는 대사였다고 하던데, 그렇게 따진다면 더 그러하죠.


극중에서 그려지는 어른들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쁘거나, 미치거나, 혹은 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연대를 하고 가장 믿지 못할 장둥셩과 공조하고 배신하죠. 그리고 결국 끝까지 가면서 세상에 던져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동화 중 무엇을 택하고, 그리하여 무엇을 가지고 나쁘거나 미치거나 죽어야 하는 어른들의 세상으로 나갈 것인지를 그린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굉장히 잘 만든 범죄스릴러이기도 하면서, 아이들의 눈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그린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한 드라마였습니다. 아역을 포함하여 주조연 배우 모두 호연을 보여주고, 특히 저우춘홍, 왕야오 두 엄마의 연기가 섬뜩할 정도였어요. ost는 내내 음험하거나 약간 발랄한 연주곡만 나오다가, 마지막회 도입부와 결말부에만 가사 있는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마지막회에서 뭔가 환기가 된 느낌이에요.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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