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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Nov 18. 2021

[진정령] 정리하고 싶어 쓰는 리뷰 – 과거편(下)

중드 리뷰

덕심을 뻐렁치게 하는 대사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는 대망의 25회입니다.


백봉산 야렵대회가 열리고 둘은 다시 만나게 돼요. 지나가는 망기를 보고 무선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립니다. 그런 무선에게 다가 온 망기는 새 악보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하죠. 무선은 ‘내가 뭐라고 이래? 내 일에 상관하지 말아줄래?’라며 망기를 밀어냅니다. 아마 이것 또한 무선의 진심이었을 꺼라 생각합니다. 뒤에 무선의 대사 ‘한때는 평생의 벗이라 생각했어’를 보면, 무선은 이미 망기와 자신이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너는 네 갈 길 가고, 나는 내 갈 길 가자’라는 의미보단 ‘너는 내 인생에서 빼 줄 테니, 빛을 품은 자로 살아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망기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선에게 “난 너한테 뭔데?”라고 묻죠. 여태껏 망기를 지켜봐온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망기가 저 말을 가슴 깊은 곳에서 길어올리고, 단전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서 했을 꺼라는 걸요. 무선에게 돌아올 대답에 확신도 없어요. 무선은 계속 망기를 밀어냈거든요. 역시 돌아온 답도 ‘한때는 평생의 벗이라 생각했다’라는 이미 끝을 상정한 과거형의 문장이었죠. 물론 망기는 “지금도 그래”라며 못을 박고, 망기와 무선이는 한참이나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그래도 망기는 불안했을 겁니다.



그리고 망기는 희신에게 말하죠. “한 사람을 운심부지처에 데려가고 싶습니다. 데려가서 숨겨두고 싶어요.” 이 단 두 문장의 행간을 아직도 저는 다 읽을 수 없습니다. 분명 저 두 문장이 심장에 박혀서 진정령 쳐돌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 모르겠어요.


저 말을 하는 망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점점 이릉노조가 되어 위험해지는 무선이 걱정돼서? 그래서 보호하고 싶어서? 아니면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아 무선을 숨겨놓고 혼자 보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계속 어긋나는 둘 사이에 답이 없으니, 무선을 자기 옆에라도 데려다 놓고 싶어서? 이미 망기는 20회에 난장강에서 살아 돌아온 무선에게 ‘나랑 고소로 가자’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근데 ‘데려가서 숨겨두고 싶어요’라뇨.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하ㅜㅜ 거기에 대한 희신의 대답인 ‘그 사람이 원치 않을 거다’는 절 더 혼란에 빠트립니다. 희신은 망기가 말하는 저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죠. 희신이 생각하기에, 무선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 아니면 망기가 아버지 대의 불행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면 이릉노조를 숨기겠다는 동생이 걱정돼서? 하ㅜㅜ



아직 저 남씨형제의 대화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건만, 다음회인 26회는 또 소금밭입니다. 악. 근데 이게 진정령의 킬링포인트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일단 망기의 마음을 살며시 보여줘요.(그 와중에 무선이는 못 듣고 못 봐요. 우리만 듣고 봐요. 하ㅜㅜ) 그리고 헤어짐, 언제 다시 볼지 기약 없음, 그 사이 무선 또는 망기 소금밭 뒹굼, 이후 재회, 이것의 반복이죠.


예시1. 부정세에서 망기가 “안녕, 갈게”하고 떠남 - 기산온씨 습격으로 고소남씨 폐허됨, 망기 다리 부러짐 - 불야천에서 재회함

예시2. 도륙현무동굴에서 망기가 노래 불러주고 제목 말하고 떠남 - 운몽강씨 멸문위기, 무선이 사약길 걷다가, 난장강에 버러져 실종 - 무선 흑화한 모습으로 재회함

예시3. 백봉산야렵대회에서 망기의 “숨겨두고 싶어요” - 무선 온씨일가와 난장강으로 떠남, 온녕 살려내기, 난장강 개척 - 이릉찻집에서 재회함


그래서 다시 보면 행복한 장면을 봐도 눈물이 나요. 곧 소금밭을 뒹굴것지, 사약을 사발로 들이키것지 이럼서요. (전 29회 이릉찻집 장면에서 그리 눈물이 나더라구요. 무선이 죽기 전, 둘이 마지막으로 재회하는 거기도 하고, 원이랑 셋이 있는 장면이 평화롭기도 하고, 바람개비 올라가는 컷부터 눈물이. 이러고 둘이 다시 만나면 무선이 죽잖아. 아악. 이런 의식의 흐름이랄까요;;)



다시 26회로 돌아와서 무선과 온정은 빗속에서 온녕을 찾아 헤매고, 온씨일가를 데리고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앞을 막아서는 건 망기지요. ‘남잠, 날 막으러 왔어?’ ‘위영, 어디로 갈거지?’ 이 두 문장은 둘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난장강에서 살아 돌아온 후, 무선이가 가려는 길을 막는 건 언제나 망기였죠. 망기가 보기에 무선이 가려는 길은 원칙과 도리에서 벗어나는 길이니까요. 반면, 망기는 무선이 어떤 길을 가려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무선이 머물게 될 지역이든, 언젠가 걷게 될 마도의 길이든 말이죠.


‘몰라.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발붙일 곳은 있겠지.’ 그렇지만 무선이는 그 길 끝이 어딘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다만 평생 약자를 돕겠다고 한 맹세를 가슴에 새겼다고 하죠. ‘남잠, 저들과 반드시 싸워야 한다면 난 너와 목숨을 걸고 겨루고 싶다. 죽더라도, 최소한, 함광군의 손에 죽으면 억울하진 않을테니.’ 망기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망기는 눈앞에서 무선을 잃을 순 없으니, 한발 물러나 무선을 보내줍니다. (그렇지만, 결국 몇 년 뒤 눈앞에서 무선을 잃죠. 하ㅜㅜ)


그리곤 혼자 눈물 흘립니다. 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이지요. 16년이라는 망기의 긴 세월의 기다림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을 뿐, 과거 망기와 무선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고소수학 때부터 음철야렵시절을 제외하곤) 매번 스치듯이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번 헤어짐 이후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겠지요. 그걸 알고 있지만 막을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무력감이 망기를 눈물짓게 했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때 둘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던 거 같아요. 만약 망기가 무선의 궤도술법을 이해하고 무선을 믿었다고 해도, 결국 흑막계략으로 무선은 이릉노조인 채로 죽었을 것 같아요. 반대로 무선이가 망기의 뜻대로 궤도술법을 포기했다면, 온씨남매를 지키지 못한 것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아요. 무선은 ‘난 꼭 온녕을 구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무선에게 온녕은 특별한 존재였죠. 강씨멸문 시기에 온정과 함께 무선을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거든요. 43회 무선의 독백을 보면 과거 자신을 믿어준 사람으로 사저와 함께 온녕을 언급할 정도로요.


이후에 무선이는 난장강에 터를 잡고 온녕도 살려내고, 곡식도 키우고, 원이도 키우면서 지냅니다. 강징과 (표면적으로) 의절도 하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무선을 만나러 망기가 이릉으로 찾아옵니다. 사저의 결혼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요. 망기는 이릉찻집에서 무선, 원과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폭주한 온녕을 같이 잠재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선이 정말 온녕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음호부나 무선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할지,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건지, 무선의 상태와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걱정합니다. 그리고 무선은 망기의 그런 걱정에 선을 긋죠. 무선이로서도 다른 선택의 도리가 없거든요. 망기를 배웅하기 위해 먼저 나서는 무선이와 발걸음을 떼기 힘든 망기(감독님이 이런 컷 연출을 잘하시죠. 스산한 바람과 우뚝 선 뒷모습으로 떠나는 망기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가기 싫겠죠.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겠죠. 막상 와서 보고 가려니 떠나는 마음이 천근만근이겠죠.)


망기와 헤어지기 전, 무선은 밝고 편한 길이 있다면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망기에게 호소하듯 말합니다. 이때 무선이는 A부터 Z까지 기승전결을 갖춰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망기에게 최대한 전달하려 노력한 것 같아요. 원이가 묻습니다. ‘부자 형아는 언제 또 와?’ 무선이 답하죠. ‘아마 안 올거야. 세상 사람들은 다 각자 할 일이 있거든. 모두 갈 길이 다르니까. 누구는 웃으며 밝은 길을 가는데, 나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어둠을 향하네.’ 그 모습을 멀리서 망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원이가 붙잡고, 무선이가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봐도 가더니, 저러고 있어요. 그리고 운심부지처로 돌아와 벌을 청합니다. 숙부의 허락이 떨어져서야 자리를 뜨는 망기(마찬가지로, 쌓여가는 눈과 무거운 발걸음 컷으로 돌아온 망기의 심경을 보여줍니다. 몸은 꼿꼿이 하고 있었지만, 가슴엔 돌덩이를 얹은 심정이겠죠.)



그리고 또 1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무선은 난장강에서 연근재배에 성공하고, 나름 온씨일가들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사저가 아이를 낳아 만월례에 참석코자 한 이후부터는 고난, 시련, 비극의 파노라마가 펼쳐지지만요. 금자헌 죽고, 온정, 온녕남매, 온씨일가 죽고, 불야천 궐기대회에서 사저 죽고, 무선마저 죽지요. 괴로워서 함축, 요약했습니다. 자세히 쓸 수 없어ㅜㅜ


그렇지만 32회에서 무선, 망기의 대화만 따와 봅니다.

‘남잠, 언젠가는 우리 두 사람이 진검승부를 펼칠 줄 알았어.’(무선아, 왜 자꾸 망기랑 싸우려고 해, 망기는 너랑 싸울 맘 없어.) ‘위영, 멈춰.’ ‘남잠, 내게 다른 길이 남아있다고 생각해?’ ‘상황이 바뀌었어. 날 믿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마지막 망기의 대사를 보면 망기는 흑막세력이 있다는 걸 저때 눈치 채고 한 말일까요. 알았다면, 16년 동안 흑막세력을 쫓지 않았을까요. 이 부분이 의문이긴 합니다.


이쯤에서 과거편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다음은 현재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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