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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Nov 18. 2021

[진정령] 정리하고 싶어 쓰는 리뷰 – 과거편(上)

중드 리뷰

한번 보면 회전문을 돌게 만든다는 드라마 <진정령>을 매우 뒷북으로 보았습니다. BL이라는 원작의 특수성을 딛고 대중적인 드라마로 만들다보니 많은 부분을 각색, 생략했음에도 주인공 위무선과 남망기의 감정선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원작에 대한 제작진의 철저한 해석과 원작의 분위기를 이식해온 듯한 배우들의 비주얼과 연기로 수많은 덕심들을 자극했으며, 그리고 그 덕심들이 끊임없이 회전문을 돌게 만드는데는 결말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말 얘기는 따로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쏟아내는 위무선의 대사보다, 몇 마디도 되지도 않는 남망기의 대사에 어느 순간부터 주목하게 됩니다. 물론 보다보면 남망기의 아주 미세한 눈빛의 차이, 표정의 변화에서도 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그렇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마음의 결을 표현하는 대사에 집착하지 않을 수가 없죠.



16년 전 과거 이야기 중 그가 직접적으로 마음의 혼란 혹은 관심, 걱정 등등을 위무선에게 얘기하는 대사가 몇 가지 있는데요. 주요 회차별로 짚어보겠습니다.


망기의 마음결이 처음으로 스르르 흘러나온 건 10회의 “위영, 갈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망기는 고소수학시절부터 번번이 신경 쓰이던 무선과 함께 음철을 찾기 위해 야렵을 떠납니다. (물론 고소수학시절부터 망기는 무선에게 지대한 관심과 호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결국 설양을 잡아 섭종주에게 넘긴 후, 망기는 음철을 가지고 고소로 돌아가야 했죠. 그리고 지붕 위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있는 무선을 향해, 무선이 듣지도 못할 저 애틋한 인사를 건네고 떠나죠. (무선은 저 어릴 때부터 ‘천지가 내 집이니 하늘이 이불이고 땅은 깔개로다’ 이런 소리를 해 왔고, 떠나는 망기한테 ‘네 방 지붕에서 한숨 잘게’ 이런 소리나 해요. 하ㅜㅜ)


음철을 가지고 빨리 고소로 떠나야했던 망기가 밤이 돼서야, 무선의 기척을 느끼고서야 떠날 차비를 한 건, 아마도 떠나기 전에 무선이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때만 해도 둘은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없었습니다. 온가놈들의 교화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망기는 음철을 지켜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대로 된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저리 떠나죠.



둘이 다시 재회하는 건 온가놈들이 선문세가 자제들을 강제로 불야천으로 끌고 오면서입니다. 기껏 재회를 했음에도 망기는 자신의 다친 다리를 걱정하는 무선을 자꾸 밀어냅니다. 당시 망기 상황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란했거든요. 남씨제자들 희생을 막고자 음철을 내준데다, 숙부는 중상, 형님은 실종, 운심부지처 마저 불탔는데, 자기는 여기 끌려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그 와중에 무선이를 향해 흐르는 자신의 마음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왜 망기가 무선이한테 입 닫고 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죠.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러나는 대사가 13회의 “면면낭자가 널 평생 잊지 않길 바라?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을 자극하지 말라고.”라고 생각해요. (물론 무선이는 ‘널 자극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혹시 너 면면 좋아해?’ 이런 눈새짓이나 하죠. 하ㅜㅜ) 결국 평생 무선이를 잊지 못하는 게 자신이 될 꺼라고 저 당시 망기는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당장 망기는 ‘날 자극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도 너다’라고 말하지도 못할뿐더러, 그렇게까지 자신의 마음을 확정짓지도 못 했을 것 같아요. 망기한테 이런 감정은 처음이거든요. 자기도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이런 감정이 가슴으로는 느껴지고, 머리로는 인지가 되는데, 어떤 감정이라고 명명하긴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망기는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다친 무선에게 영력을 넣어주며, 무선이의 요구에 따라 노래도 불러주죠. 우리는 다 알지만, 무선이는 마지막회까지도 모르는 그 제목을 가진 곡을요. (그럼 대체 저 곡은 망기가 언제 작곡했을까요? 고소수학 때부터 음철야렵시절까지 망기랑 무선이는 함께 했는데 말이죠. 아마도 그렇게 애잔하게 “위영, 갈게”하며 떠난 후, 온가놈들 때문에 집안 풍비박산나고, 본인 다리 부러지는 그즈음 저 곡을 지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자신의 마음도, 집안도, 세상도 혼란한 와중에도 망기는 무선이가 그리웠나 봐요.) 도륙현무를 무찌르고 나와 둘은 인사도 없이 헤어집니다. 고소남씨 둘째공자님은 집안사정이 다급하여 먼저 떠났고, 무선이는 쓰러졌거든요.



그 이후엔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운몽강씨 남매들에게 가시밭, 소금밭, 사약길만 펼쳐집니다. 강씨부부 죽고, 운몽강씨 멸문지경에 다다르며, 강징은 내단을 잃고, 무선이는 강징한테 내단 주고 온조한테 붙잡혀서 난장강에 버려지고 급기야 실종됩니다.


궤도술법을 익혀 무선이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때 둘은 다시 재회합니다. 도륙현무동굴에서 헤어진 뒤 무선이의 행방도 생사도 모르다가 몇 달만에 다시 만난 게 저때라고요.(인생사 하ㅜㅜ) 그렇게 극적으로 재회한 무선은 망기한테 아픈 말들만 쏟아내죠. 살아 돌아온 무선을 보고 안심했다가, 미묘하게 달라진 무선이 걱정스럽다가, 대답을 회피하며 선 긋는 무선이 때문에 다급해진 망기는 말합니다. 그 대사가 20회의 “그럼 나랑 고소에 가서 천천히 얘기해줘.”라고 생각합니다. 저 당시 망기는 진심으로 무선이를 데리고 가고 싶었을 꺼예요. 자신이 이제껏 지켜온 원칙에 따르면 무선이 가는 길은 잘못된 길이거든요. 그러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망기는 무선을 자신의 틀 안에서 올바른 길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물론 무선이의 ‘남이 무슨 상관이야? 네가 누군데?’라는 말에 상처받고, 강징의 중재까지 듣고 돌아서야 했지만요.



세상일은 모두 법칙대로 움직이는 줄만 알았던 망기에게, 희신은 정해진 법칙은 없고, 옳고 그름도 흑백을 나누듯 나눌 수 없으니, 마음이 향하는 바를 보라고 합니다. 망기의 마음 속 풍랑, 질풍노도의 감정은 언제나 무선으로부터 시작됐죠. 이 시기쯤 망기는 무선에게 ‘넌 상관마, 넌 빠져’라는 얘기를 자꾸 듣고 있었고, 그럼에도 망기는 마음이 향하는 바에 따라 어떻게든 무선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원기를 제어하고 마도의 길에 빠지지 않겠다는 무선에게 말하죠. 22화의 “내가 돕게 해줘.”라고요. 당시의 망기에겐 저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꺼라 생각해요. 사실상 망기에겐 무선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둘은 같은 가문도 아니고, 표면적으론 친구일 뿐이니 무선이 계속 선을 긋는다면 관계는 끝날 수 있으니까요.



불야천의 사일지정 전투 이후 무선은 쓰러집니다. 그런 무선에게 고금을 연주하며 망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망기는 자신이 무선을 도울 수 있을꺼라, 다시 바른 길로 데려다 놓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망기의 입장에서 원기는 사도의 길이니, 무선에게 사악한 기운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죠. 망기는 운심부지처에서 평생을 그리 배워 왔거든요. 하지만 무선은 혼돈한 세상을 바라보며, 원기를 쓰는 게 과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악이고 정의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 시기 무선은 망기에게 ‘날 믿지? 믿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저 질문을 할 때 무선의 표정은 답지 않게 망기의 눈치를 살피며, 믿는다고 말해달란 느낌입니다. 그리고 ‘너도 날 의심한다는 거지?’라고 묻는 무선에게 망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망기는 음철인 걸 알면서 왜 수련했냐고 무선을 다그치고, 무선은 그런 망기를 다시 밀어냅니다. 그리고 23화의 “돕게 해준다고 약속했잖아.”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날 믿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도울 거냐는 무선에게 망기는 음호부는 바른 길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죠.



‘믿음’이 먼저인 무선과 ‘정도’가 먼저인 망기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립니다. 무선은 망기가 자신을 믿는다는 확신을 원하고, 망기는 무선이 정도가 아닌 길로 가지 않길 원하니까요. 이제 둘 사이에 돕게 해달라는 부탁이나, 돕게 해준다는 약속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무선을 포기할 수 없는 망기는 ‘새 악보를 연구 중이야’라고 말하지만, 무선은 ‘아직도 포기 안했어? 너란 녀석은 참 집요하구나’라며 체념한 듯이 말합니다. 무선은 망기가 자신을 믿지 않는 이상, 망기의 도움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꺼예요. 그리하여 무선을 온전히 믿지 못한 망기는, 새 악보를 무선에게 영영 들려주지 못하죠.


이쯤에서 과거편 첫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25회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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