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회에서 위무선의 죽음 이후 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 현재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6년동안 나도 내가 어디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 ‘믿어’ ‘남잠, 그런데 그때도 정말 날 믿었어?’ 망기는 지금의 무선이 하는 말은 바로 믿는다고 답하지만, 과거의 믿음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못합니다. 두 사람에게 ‘믿음’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입니다.
재회 장면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6년 만에 죽었던 지기(라 쓰고 연인이라 읽는다)를 다시 만났는데, 어찌 그리 자약하게 고금을 켜면서 첫마디로 ‘깼구나’라고 할 수 있으며, 다음날은 그 지기를 두고 혼자 냉탕에 와서는 역시나 고고하게 ‘일어났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저라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불안해서라도 혼자 두고 어디 못 갈 것 같거든요. 일단 운심부지처에 데려다놔서 안심하는 걸까요. 아니면 망기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라 쓰고 사랑의 시간이라 읽는다)을 지나와서 이 정도쯤은 초탈, 초월하게 된 걸까요.
그래도 현재편은 과거편과 달리 소금밭 뒹굴고, 사약 들이킬 일은 적습니다. 일단 망기랑 무선이 함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가친척 누군가 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검령’에 얽힌 사건을 풀어가면서 그간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풀리니까요.
망기와 무선은 검령을 쫓아 청하로 옵니다. 금릉의 악저흔을 옮겨온 무선을 망기가 업어주겠다고 하면서 지난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무선은 기억하지 못하죠. “넌 전부 잊어버리는구나”(35회). 효성진과 송람의 사연을 이야기하다 술을 한잔 마신 망기는 취합니다. 그런 망기를 보며 무선은 처음 망기에게 술을 먹였을 때를 떠올리죠. 무선은 자신이 망기에게 업어주겠다고 한 건 잊어버리곤, 망기한테 장난친 건 기억하네요.
무선은 술에 취한 망기에게 물어봅니다. ‘왜 날 돕는 거야?’ ‘후회돼서’ ‘뭐가’ ‘불야천에서 너와 함께 서지 못한 거’(36회). “후회돼서”라는 저 한 마디에 그간 망기의 모든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망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을까요. 떨어지는 무선의 손을 놓친 것, 불야천에서 무선과 대립했던 것, 불야천과 난장강에 더 빨리 도착하지 못한 것, 무선을 금릉의 만월례에 초대하려 했던 것, 무선을 난장강에 홀로 보내고 또 다시 두고 온 것, 무선을 끝까지 믿어주지 못한 것, 무선이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 매번 무선과 기약 없이 헤어진 것, 자신의 마음을 일찍 깨닫지 못한 것, 거슬러 올라가 고소수학시절 무선이의 천자소를 깨버린 것마저 후회했을 것 같아요. 하ㅜㅜ
그때 만약 망기가 불야천에서 무선과 함께 서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요. 만에 하나라도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어긋난 수많은 시간들을 돌이켜야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후회한다 한들 시간을 돌이킬 수 없으니, 현재의 망기는 무선에 대한 ‘믿음’을 어느 무엇보다 앞에 두기로 한 것 같습니다. 과거 그가 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날 믿어?’ ‘넌 절대 거짓말을 안 하잖아.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과거 무선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망기가 무선에게 자신을 믿느냐 물어봅니다. 무선은 바로 믿는다고 대답하죠. 그런데 망기는 과거에 같은 대사를 이미 한 적이 있습니다. 무선이 죽던 날, 불야천에서 무선과 대립할 때요. 망기는 무선을 향해 ‘날 믿어’라고 했었죠. 과거의 무선이나 지금의 자신처럼 상대방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둘 사이의 날 믿느냐는 질문은 ‘니가 날 믿어줬으면 좋겠어’라는 의미를 품고 있죠. 과거의 망기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고 정도인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의 무선처럼 날 믿느냐는 질문에 바로 널 믿는다고 대답해주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무선을 잃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죠. 그래서 망기와 무선이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현재는, 망기가 무선을 잃지 않기 위해 무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의령마을에서는 효성진, 천아, 설양, 송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설양이 음호부를 복원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리고 사추에 대한 떡밥이 자꾸 나오죠. 우리는 이미 진즉 눈치를 챘어요. 다만 망기가 무선이한테 언제 사실을 밝힐까 궁금해집니다. 망기와 무선은 토끼등롱을 사서 객잔으로 돌아오고, 사추에게 토끼등롱을 건네는 망기(이런 깨알설정). 택무군에게 금광요가 흑막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니 망기의 마음도 착잡합니다. 남씨형제는 지기와의 관계가 왜 이리 가시밭일까요. 어느 샌가 자연스럽게 무선이 술 시중하는 망기, 술 따르는 손길마저 곱네요.
‘넌 대체 어떻게 날 알아봤어?’ ‘나도 궁금해. 넌 왜 그렇게 기억력이 나빠?’ ‘나도 내 기억력이 나빴으면 좋겠다’(40회). ‘기억’은 두 사람 사이의 또 다른 테마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기억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도 16년 동안 지난 시간을 돌이키고 곱씹었을 망기는 무선과 함께 한 거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반면, 무선은 어떨까요? 이제 막 살아 돌아와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선의 기억은 주로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룹니다. 강씨부부, 염리사저, 금자헌, 온정, 온씨일가들. 마찬가지로, 그간 망기에게 무선이는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기억하고 찾아야 할 사람이었죠. 남은 사람이 더 많이 기억해야하고, 잊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야 찾을 수 있고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망기가 무선이의 피리소리만 듣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처럼요. 이것은 망기의 주된 감정을 이루고 있는 ‘후회’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선이는 자신이 한 희생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소하게는 자신이 망기를 업어주려 했던 것부터, 몸을 던져 면면을 구하다 인두자국을 세긴 것(망기 가슴팍에 있는 인두자국을 보고도 왜 몰라, 왜 모르니), 하물며 강징에게 내단을 준 것에 대해서도 ‘지금의 나한테는 다 지난 일이야,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니까 다 털어버리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위무선인 걸요.
그리고 적봉존과 금광요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금광요의 흑막을 밝히고자 금린대에 갔다가, 무선의 정체가 탄로 나죠. 이때 망기는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위영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위영, 운심부지처에서 내게 뭘 물었는지 기억해?’ (남잠, 그런데 그때도 정말 날 믿었어?) ‘외나무다리 건너 어둠을 향하는 기분 나쁘지 않더라’ (누구는 웃으며 밝은 길을 가는데 나는 외다무다리를 건너 어둠을 향하네)(42회). 그간 망기에게 후회로 남았을, 무선을 믿지 못하고 무선과 함께 서지 못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선택을요.
그래서 이 사건은 망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무선에게도 그간의 상처, 아픔, 후회를 치유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망기에게는 그간 후회로 남았던 일을 돌이켜 후회로 남지 않을 다른 선택을 하게 했고, 무선에게는 그토록 원했던 망기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후 망기의 지난 시간들이 밝혀지며, 둘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43회에서는 우리 모두 충분히 짐작해서 알고 있건만, 그럼에도 보고 싶고 궁금했던 망기의 지난 16년 중 일부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망기는 복마동을 지키다 숙부한테 끌려와 계편 300대를 맞고, 3년간 한담동에서 자숙하게 됩니다. ‘정과 사는 무엇이며, 흑과 백은 무엇입니까?’ 계편을 맞으면서 망기는 숙부에게 묻죠. 지난 회 ‘외나무다리 건너 어둠을 향하는 기분 나쁘지 않더라’는 망기의 대사가 이해되는 순간이었어요.
망기는 무선이 죽고, 홀로 생각했을 겁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애초에 원칙을 의심하는 것부터 망기에겐 이제까지 알고 받아들였던 가치관, 세계관을 뒤엎어야 하는 문제였죠. 그래서 망기는 외나무다리를 홀로 건너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거기다 한담동에서 자숙하며 보고 있는 글자는 ‘사악한 것을 굴복시켜 바른길로 인도하라’입니다. 망기는 그러다 무선을 잃었습니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선이 향했던 어둠을 잘못이라 할 수 있는 건지 계속 생각했겠죠. 희신이 무선에게 망기의 말을 대신 전해주죠. ‘위공자를 지기로 여기기에 위공자의 됨됨이를 믿어야 한다고.’ 무선이 죽고 나서야 망기는 온전히 무선을 믿게 된 것 같아요.
희신은 정실에 대해서도 알려주죠. 어머니가 영영 오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을 걸 알았지만 계속해서 찾아왔을 어린 망기는, 무선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16년을 찾고 기다린 현재의 망기와 겹쳐집니다. 그리고 결국 그 정실을 처소로 쓰고 있는 망기의 그 고집이 지금 무선을 다시 만나게 한 거겠죠. ‘망기는 어려서부터 고집스러웠다오. 그러니까 위공자가 마도를 수련하는 걸 지켜봤을 때, 망기는 아무 말 없었지만 난 알고 있었소. 어머니를 볼 때의 심정처럼 고통스럽고 막막했다는 걸.’ 희신이 당시 망기의 심정을 무선에게 대신 전해주죠. 그리곤 곱게 천자소 들고 오는 망기, 정갈한 손길로 술도 따라주네요.(다도를 하는 건지, 음주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
그리곤 무선과 망기는 마음으로 대화도 나눕니다. 버릴 것이 없어 통으로 가져와 봅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 고독했어. 날 믿어주던 사람들은 다 죽었지, 온녕, 사저. 다행히...’
‘이 세상엔 아직 널 믿는 사람이 있어.’
‘남잠, 널 위해 한잔할게. 인생에서 지기 한명을 얻었으니 충분해.’
‘다른 건 없어, 양심에 떳떳하게 행동했을 뿐.’
‘암만 나를 비난하고 헐뜯어도 양심에 떳떳하면 그만이야.’
“남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마지막 말은 무선이가 작게 속삭이는데, 망기가 들었을까요? 마음으로도 대화하는 이들이니 못 들을 리 있겠냐만, 그래도 망기는 못 들었다 믿고 싶습니다. 이유는 결말에서...
‘남잠, 참 이상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게 뻔한 데 전혀 두렵지 않아.’ (그래, 너희 둘 마음이 통했으니 나도 그래. 혼자 대답해주고;;) 그 이후로는 쭉쭉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난장강에서 무선이 미끼가 되어 괴뢰들을 해결하고, 선문 사람들을 데리고 연화오로 가죠. 거기서 온녕과 원의 재회도 있어요. 46회에서는 무선이 강징에게 내단을 준 비밀이 밝혀지는 클라이막스도 있죠. 그리고 거기서 망기가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립니다.
과거 무선이 온씨일가와 떠난 뒤 홀로 흘리던 망기의 눈물은 삼키고 삼키다가 고요하게 흘리는 느낌이라면, 현재 망기의 눈물은 여러 감정의 파고를 보여준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무선이 안쓰럽고, 모른 채 지나버린 세월이 한스럽고, 그 시간들 속 자신이 후회되고, 결국 자책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에 분노하는 것까지 보여주죠. 그럼에도 뒤의 연화호 장면에서 “아프냐?”라는 대사는 머리를 띵하게 했는데요. 여러 감정의 파고가 지나간 뒤 망기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 내단을 꺼낼 당시 무선이 아팠을지 염려하는 거였다니. 하ㅜㅜ
금광요가 운몽으로 온 뒤 이제 사건해결은 결말을 향해 갑니다. 47회부터 50회 중반까지 거의 3.5회에 걸쳐 관음묘 한 공간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주로 금광요의 대사를 통해서 전달되다보니, (과거편에서 소금밭 구르고 사약길을 걷는 것도 버텨냈건만) 이게 더 괴롭;; ‘저기, 금종주. 우리 말하지 말고, 싸우면 안될까? 그냥 치고받고 하자고.’ 무선이 맘이 바로 제 맘이었습니다.
금광요가 나름 사연 있는 빌런이란 건 알겠다만, 희신의 복잡한 마음도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너무 길고 장황했어요. 끝까지 억울해, 살려줘하는 것도 지치고. 1회에서는 주인공부터 죽고 시작하더만, 막판에 빌런은 왜 이리 안 죽는거지 싶었달까요. 여튼 금광요는 죽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습니다. 강징이 내단을 잃은 사연도 나옵니다. 무선이만 비밀 있었던 거 아니네, 강징도 있었네, 근데 끝까지 말 안 한거네. 그래놓고 ‘잘 지내라.’ 하ㅜㅜ
이쯤에서 현재편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다음은 결말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결말편은 결말의 분량에 비해,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정리본이라기보다 주관적인 해석본에 가까울 것 같아요. 사실 과거편에서 현재편으로 넘어오면서 해석의 비중이 많아지긴 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