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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Dec 20. 2021

태드 도장깨기는 계속된다(9) -
빌킨피피(1)

태드 리뷰 / I told sunset about you

I told sunset about you


태드 ‘I told sunset about you’의 제목을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노을에게 너에 대해 말했어’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세상 감성 터지는 제목을 보고 이것은 내 취향이겠거니 하고 봤는데, 사실 취향저격을 당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본 태드 bl 중 가장 취향저격을 당하고 좋아하는 작품은 ‘lovesick’이건만, 이상하게 ‘I told sunset about you’(일명 잇세이)는 할 말이 많아서 따로 끄적거려 봅니다. 


중알못인 제가 태국어는 더더욱 알 길이 없기에, 주워들은 정보에 따르면 태국어 원제에는 ‘노을’이라는 단어도 없고, 영제와 같은 뉘앙스가 아니라고 해요. 근데 ‘sunset’이라는 단어를 넣어 저렇게 영제를 지은 관계자는 정말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의 절반 이상이 저 영제에서 빌어온 느낌이거든요. 



일단 간단히 줄거리를 짚고 넘어가자면, 떼와 오는 어릴 적 친구였어요. 그치만 어리고 치기어린 마음으로 사이가 틀어졌다가, 대학교 입시를 앞둔 시점에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떼가 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면서 관계에 또 다른 변화가 오게 된다는 게 주요 줄거리예요. 


두 사람 사이에 중국어가 중요한 매개가 되고, 두 사람이 어릴 때 보던 중드 ‘구름 너머 달’도 계속적으로 등장하고, 떼의 경우 첫 등장에서 경극 분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전반적으로 중국 분위기가 많이 납니다. 첫 등장의 여파인지 이상하게 떼 역할의 배우는 중국배우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떼에게는 오래된 썸녀인 딴이 있고, 오는 동성친구인 밧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런 요소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요소는 두 사람 관계 안에 있어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떼는 오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줘요. 물론 떼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어릴 때는 미숙해서, 커서는 자신의 감정을 미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할 수 없어서죠. 


두 사람이 서로의 썸녀 혹은 썸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떼가 딴을 좋아하는 이유는 본인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서라고 하죠. 반면 오가 밧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라고 해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이었죠. 



그렇지만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자로 잰 듯 명확하게 알 수 없듯이, 떼는 명확한 꿈이 없던 오를, 오는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던 떼를 사랑하게 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감정선을 굉장히 섬세하게 보여줘요.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설레거나 아련하다기보다 뭔가 숨 막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요. 


그리고 떼의 형과 딴, 오의 부모님과 밧, 두 사람의 친구들까지 주변인물들도 굉장히 섬세하게 활용합니다. 제가 막상 눈물을 흘리면서 봤던 장면들은 두 사람이 각자 주변인물들과 함께 있을 때였어요. 오가 부모님께 제가 자랑스럽냐고 물을 때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오의 엄마를 보면서 울고, 동생의 혼란을 눈치채고 품어주는 떼의 형을 보면서 울고, 떼가 딴에게 그래도 우리 친구지? 할 때 딴의 표정을 보면서 울고 이랬습니다. 그리고 오의 마음을 눈치채고 불을 켜놓은 채 가만히 누워 있는 밧의 표정을 보고도 마음이 애잔해졌어요. 



이렇듯 주변인물들의 스쳐지나가는 표정에도 마음이 움직였건만, 왜 주인공인 떼에게는 감정이입이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떼 캐릭터가 그닥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일단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에게 자꾸 상처를 준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그리고 떼는 기본적으로 본인 위주의 인물이에요. 엄마와 형, 딴, 하물며 오에게도 그러해요. 


엄마가 힘들게 국수 팔아서 공부시키는데 중국 견학 프로그램 특기생으로 대학을 진학하고, 형이 힘들게 돈 벌어서 학비나 경비를 대주는데 결국 그걸 오를 위해 포기하기도 하죠. 그리고 오에 대한 혼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딴을 이용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자꾸 오의 마음을 건들이죠. 오와 밧이 사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시장에서 엉엉 울고 있는 걸 보면서는, 다른 입시생들 시험보는데 방해하지 마렴 떼야, 이런 마음도 들더라구요. 그래도 막바지에 가면 눈물, 콧물 다 빼면서 결국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떼를 보며 그간의 혼돈과 무례를 이해했어요. 



반면 오는 첫 등장할 때 긴장감 넘치는 음악 깔리면서, 떼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거의 세기의 라이벌처럼 등장하는데, 밧의 차 안에서 비스듬히 밧을 쳐다보는 눈빛을 보고는 이게 오의 본래 모습이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눈망울, 속눈썹까지 슬퍼 보여요. 다 떼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까만머리 두명, 노란머리 한명 이런 식으로 인식되던 친구들도 굉장히 섬세하게 관계 설정을 했더라구요. 우선 덜 진하게 생긴 까만머리 카이는 두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건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오의 인스타 사진을 보고 떼에게 알려주기도 해요. 이리 오지랖이 넓은 만큼 여친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진하게 생긴 까만머리 필립은 오의 합격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축하해줘요. 그리고 떼가 잠적했을 때 오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필립이죠. 그리고 노란머리 못은 눈치가 좀 없습니다. 오의 합격소식에 누가 포기한 거냐고 물어서 오가 떼를 의심하게 하죠. 그리고 오와 밧을 보며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떼를 보며 카이와 필립은 서로 눈치를 보는데, 못은 끝까지 눈치를 못 채요. 



이렇듯 여기 작가나 제작진들도 배운 변태의 느낌이 폴폴 납니다. 그래서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질 거라고 예상돼요. 근데 너무도 매끈하게 잘 빠진 작품이라 오히려 마음에 잔상을 남기는 느낌을 덜해요. 그리고 태드 bl 초기작들의 어설픈 연기들을 보다가 숙련된 연기자처럼 느껴지는 떼와 오의 연기를 보니, 극에 빠져들기보다 뭔가 너무 연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특히 떼요. 


그렇지만 보통 bl드라마를 보면 너무도 쉽게 사랑에 빠져버리거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데 비해, 본 드라마는 그 혼란과 혼돈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퀴어에 가깝게 느껴져요. 그래서 희소성이 있고, 여지껏 태드에서 만나볼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장면구성이나 색감도 치밀한 계산을 통해 나온 것처럼 너무나 아름답죠. 


그리고 각자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여 연기자의 꿈을 키워나갈 두 사람이니 배우와 캐릭터가 공명을 일으킬 여지는 커졌고, 제작진들의 연출은 시즌1에서 보장되었으니 시즌2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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