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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Jan 24. 2022

[일촌상사 : 나의 소녀] (上)

중드 리뷰 

(1) 손가락 미끄러트려 1회를 재생했다가...


얼마 전 경여년 정주행을 끝냈습니다. 드라마 하나를 끝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중드카페의 리뷰를 보며 정주행할 만한 다른 작품을 찾게 되는데요. 어느 리뷰 중 일촌상사 나의 소녀에 대해 ‘제발 지나가다 손가락 미끌어져서 클릭이라도 한번 해보셔요’ 이 말에 정말 저 심정으로 클릭을 했습니다ㅋ


사실 TV 채널 돌리다가 스치듯이 몇 번 보기는 했었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없고, 화면 때깔이 현대극 느낌이라 그냥 지나쳤었어요. 그 이후에 중드카페에서 추천이 많길래 1회 재생했다가 잠깐 보다 말았어요. 



그리고 손가락을 미끄러트려 1회를 다시 재생해보았습니다. 근데 이거 무슨 조화인지, 앉은 자리에서 내리 9회를 보았습니다. (더 보고 싶었는데 눈도 아프고 잠도 자야해서 중단했어요.) 약간 진정령 처음 보았을 때처럼 홀린 듯이 다음 회를 클릭하게 되더라구요. (이후의 글에는 11회까지의 스포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스토리가 엄청 재밌다거나, 캐릭터가 엄청 매력있다거나, 적염사에서 금수산하도 빼돌리는 에피소드가 막 흥미진진하거나 그렇지 않은데도, 이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적염사에서의 에피가 지나고나자 좌경사, 소운락, 심만청, 은장가, 주염, 백맥 주요 등장인물들한테 정이 확 붙으면서, 이거 끝까지 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8회 중간쯤 보다가 나 앞에를 너무 설렁설렁 본 것 같아, 이럼서 1회를 다시 돌려 볼 정도였어요. 다시 보니 인명, 지명, 사물명 이런 게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정양궁으로 에피가 넘어오며, 문사연, 령서에게까지 정이 붙으며,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이 생겼으니 난 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 싶었어요. 


좌경사와 문사연이 서로 계략을 숨긴 채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서, 여기 남주들 뭐여, 하나는 병약한 의원, 하나는 장사치인데 그 와중에 서로 패를 쥐고 머리싸움까지 해? 이럼서 보게 됐어요.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된 건데, 저는 일단 여주가 능력치가 있거나 센 캐여야지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일례로 유리미인살의 쉔지, 삼생삼세 십리도화의 백천, 경여년의 해당타타) 여주가 연약하거나 보호받는 캐릭터면 금세 흥미를 잃고 탈주하거나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일례로 미자무강의 반미, 랑전하의 마적성, 경여년의 임완아, 저 리친 배우한테 딱히 안 좋은 감정 없는데 이상하게 만나는 캐릭터마다 호감이 아니었네요;;) 그런 면에서 소운락, 심만청은 너무 제 취향의 여주들이었어요. 



그리고 중드에서 너무도 자주 남주가 여주를 공주님 안기 하는 장면들을 보다보니, 오히려 여주가 남주를 업는 장면이 그리 좋더라구요. 유리미인살 결말부에 쉔지가 쓰봉을 업고 가는 걸 보면서, 그래 우리 쉔지는 전신이니깐 저 정도야 끄덕없지, 이럼서 봤는데, 비구아는 초반에 좌의원을 업어버리더라구요.(물론 역용술로 남장 중이긴 했다만) 


그리고 좌경사를 사이에 두고 비구아랑 여자무사가 빙그르 돌며 발길질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드라마 뭐야, 왜 이리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들만 쏙쏙 보여주는거야 싶었습니다. 



그리고 좌경사와 소운락이 서로의 신분을 빨리 밝히고, 서로 오해를 덜 하는 느낌이랄까요. 이제껏 만나 본 중드커플이 사실을 숨기고, 오해하고, 고구마를 한트럭 먹인 후에야 이어진다면, 얘네들은 좀 솔직하다고 해야하나요. 이런 면도 신선했어요. 


좌경사가 동굴에서 손가락 내밀면서 ‘니 이름이 뭐야?’라고 했을 때, 비구아가 ‘소.운.락’이라고 바로 밝히는거나 소운락이 ‘너한테 중요한 건 엄가낭자잖아’라고 했을 때, 그래, 이걸로 오해하고 잠시 헤어지것지 했는데, 좌경사가 바로 무덤으로 데려가서 ‘내가 엄식이야’라고 밝히는 이런 것들이요. 



그렇지만 소운락의 사부로 인해서 얘네들도 앞으로 가시밭길이 예정되어 있고, 이미 정혼자가 있는 심만청과 장사치 기질 다분한 문사연 사이도 순탄치 않을 것 같고, 은장가와 주염은 지기애 정도 되려나요?(근데 비구아에 대한 주염의 짝사랑이 녹록치 않을 듯) 


일단 흥미롭게 지켜볼 드라마가 생겨 기쁘네요. 




(2) 일촌상사 나의 소녀에서 진정령의 향기를 느끼다


처음 시작은 일촌상사 나의 소녀를 보면서, 뭔가 진정령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홀린듯이 다음회를 클릭하게 된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보다보니 두 작품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서 끄적거려 봐요. 


일단 장르적으로는 두 작품 다 무협성향이 짙어요. 그리고 음모를 둘러싼 큰 사건이 저변에 깔려 있고,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애절한 사랑 혹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그러나 진정령이 엄청난 흡입력으로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면, 일촌상사 이야기 속 단서들은 흩어져 있어서,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얼개에 빈틈이 생기는데 이게 오히려 시청자를 은근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예요.(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상적인 면에서 진정령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철철 흘리게 만드는 느낌이라면, 일촌상사는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고일 듯 말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진정령이 훠궈의 홍탕이라면, 일촌상사는 백탕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주요 눈물버튼 캐릭터가 존재해요. 진정령에서 저의 눈물버튼은 염리사저와 무선이였습니다. 일촌상사 초중반 저의 눈물버튼은 심만청이었어요. 만청이가 파혼하러 가기 전 곱게 옷 차려입고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조적으로 피식 웃는 이 시점부터였던 거 같아요. 후반부의 눈물버튼은 좌경사였습니다. 백발이 된 채 병색이 짙은 좌경사만 봐도 눈물이 나오더라구요.(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어찌나 장요배우가 말라보이던지 안쓰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진정령이 무선-망기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면, 일촌상사는 소운락-좌경사, 심만청-문사연, 사강아-은장가 세 커플의 이야기가 거의 비슷하게 축을 이루고 있고, 거기에 소운락을 짝사랑하며 은장가와 의형제인 주염도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은장가, 사강아, 소운락, 아란타 등 많은 이들이 주염을 아끼고 지키려 하는데, 부모를 찾자마자 잃고, 단 하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둬버려 안타까웠던 인물입니다. 



이때껏 본 중드에서 서브커플의 이야기가 흥미 있다거나 매력적인 경우는 드물었는데, 일촌상사는 메인, 서브할 것 없이 모든 커플의 이야기가 극 속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오히려 중반까지는 심만청-문사연의 이야기에 더 몰입이 될 정도였어요. 소운락-좌경사의 이야기가 극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감정선이 툭툭 끊어지다가 거의 후반이 되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며 복잡하면서도 큰 감정을 전달하는 반면, 심만청-문사연의 이야기는 극 내내 감정선이 쭉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사강아-은장가의 경우 극 내내 조금씩 밑밥을 던지다가 어느새 스며들듯 그들의 사랑에 익숙해졌을 즈음 막을 내리지요. 그리고 그들의 최후에 주염이 얽혀있다는 것도 뭔가 일촌상사다웠어요. 



그리고 진정령에서는 무선과 망기가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마음이고 감정인지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반면, 일촌상사에서는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고백해요. 좋아한다, 사랑한다, 혼인하자, 미안하다고 이렇게 자주 말하는 고전은 또 처음 보는 느낌이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주인공들의 마음이나 감정을 쉽게 읽을 수가 없습니다. 


좌경사, 문사연 두 남주 캐릭터가 사연이 많고 계략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직접적으로 하는 말과 숨기고 있는 계략 사이에서 간극이 생기거든요. 소운락과 심만청이 극 중에서 좌경사와 문사연에게 나를 속이고 이용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실제로도 그러하죠. 사랑하고 염려하지만 필요에 따라 여주들을 이용하거나 속여야만 하는 남주들이다보니, 쉽사리 가늠이 어렵습니다. 특히 좌경사의 경우, 소운락을 자꾸 위험으로 몰고,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데, 이게 한 템포 지나고 나서야 왜 좌경사가 그리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밝혀지다보니, 체감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감정선을 읽기는 힘들었어요. 근데 위에 쓴 것처럼 이런 부분이 묘하게 자꾸 끌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주인공들의 감정선 뿐만 아니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부분에서도 오히려 이야기 얼개가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이 안 되고, 이런 부분이 오히려 앞으로의 이야기를 궁금케 하면서 끌어당기는 면이 있었어요. 말하자면 떡밥을 그냥 툭툭 던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진정령이 중간중간 무선의 입을 통해 사건 해결과정을 설명해주고, 최종 3회 가량을 할애해서 사건의 진상을 장황하게 펼쳐서 설명해준다면, 일촌상사에는 그런 친절한 설명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떡밥을 찾고 주워야 합니다. 그리고 좌경사의 사건 해결방식이 혼자 추리하고 수를 읽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식이라 굳이 그런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기도 하지요. 일촌상사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는 오로지 좌경사의 머릿속에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뿌려지는 떡밥들은 흩어져 있거나 갑자기 등장합니다. 황천인과 사라몽이 상생인 동시에 상극이라는 것, 애제의 존재나 은거한 곳 등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처럼요.



커플들의 감정선에서도 흩뿌려진 떡밥을 찾아야 해요. 8회 정자에서 문사연이 도성 근방이니 산수도 지부에서 죽염청주나 한잔하고 가라고 하는데, 심만청이 딱 잘라서 거절해요. 근데 22회 목부에 파혼을 알린 심만청이 산수도 대문을 두드리며 손에 들고 있는 게 죽염청주죠. 그때 거절했던 그 술을 사들고 문사연을 찾아온 거예요. 그리고 42회에서 문사연이 다시 죽염청주를 내밀면서 심만청에게 청혼을 합니다. 그 외에도 심만청-문사연 커플에게는 이렇듯 감정선을 연결해주는 떡밥이 많습니다.(아마도 그래서 스며들듯 이 커플에 빠지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9회에서 술주정하는 심만청에게 문사연은 따뜻한 탕을 권합니다. 그러나 심만청은 대협이 탕 따위 마시지 않는다며 그릇을 밀어버리죠. 둘 사이가 틀어진 후에도 문사연은 심만청을 만나면 따뜻한 차를 권해요. 그런데 심만청은 그 차를 마시지 않고 가버려요. 심만청이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모락모락 김만 올라오는 찻잔을 비춰줍니다. 이후 정양궁을 돕기 위해 무이채로 찾아온 만청에게도, 장가를 잃고 슬퍼하는 만청에게도 문사연은 따뜻한 차를 권합니다. 나중에는 만청아, 문사연이 따라 준 따뜻한 차 좀 마셔주라 이런 마음까지 들더라구요.



그리고 11회 유강 화등제에서 문사연이 심만청에게 나비화등을 선물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고, 우산을 준 문사연은 어디로 갔는지, 심만청 혼자 우산을 쓰고 나비화등을 든 채로 갑니다. 22회에서 파혼을 하고 찾아온 심만청이 내일 당신이 오든 안 오든 그때 그 화등가게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죠. 심만청이 나비화등을 사들고 돌아가는데, 그때처럼 비가 옵니다. 만청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 때까지 문사연이 나타나질 않아요. 이대로 문사연은 안 오는 건가 싶을 때, 우산을 든 문사연이 나타나죠.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감정선을 연결해주는 떡밥이 많고, 그게 극 내내 보여지다보니 서브커플임에도 각인이 쉽게 되는 것 같아요. 



반면 소운락-좌경사 커플에게도 대표적으로 사탕이나 일촌상사와 같은 떡밥들이 있지만, 이 커플은 사정이 더 복잡하죠. 극 중 소운락이 그 사람이 뭘 하려는지 모르겠고, 어쩌려는지도 모르겠다, 늘 짐작해야 했다고 말하는데, 운락 입장에서는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겠구나 싶었어요. 근데 이 커플의 매력은 사랑싸움을 거의 목숨 걸고 하는데, 엄청 츤츤거리면서도 서로 따라다니면서 구해주고, 하룻밤만 신세질게 이래놓고 아침에 보면 같이 누워있고, 내가 어딜가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이럼서 총총 뒤따라가고, 사부가 홀아비되는 꼴 보기 싫으면 사모한테 잘하라 하고, 말은 이제 끝이야, 영원히 남이야라고 하면서 둘 다 헤어짐을 생각지 않는 것 같죠. 후반부에는 너무 안타깝고 애절해서 눈물바람만 나지요. 



세 커플의 엔딩도 결이 다릅니다. 확실한 해피엔딩은 심만청-문사연 커플입니다. 반대로 새드엔딩은 사강아-은장가-주염이지요. 메인커플인 소운락-좌경사는 열린결말입니다. 누가봐도 소운락의 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그들 곁에 백맥이 있고, 마지막에 나오는 목소리는 좌경사가 거의 확실하지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으니 열린결말이라고 봐야겠죠. 죽음이 거의 확실시된 좌경사가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보여주지 않더라구요. 최후의 방법은 살려낸 소선의 피를 마시는 것 말고는 없지 않나 싶은데, 이 부분은 보여주지 않더군요. 설명이 부족하긴 하지만, 진정령의 열린결말도 받아들인 저로써는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홀린듯이 본 드라마라 길고도 길게 써보았습니다. 이만 리뷰를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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