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 리뷰
일촌상사 나의 소녀 정주행을 마치고, 삼생삼세 십리도화 본방을 마치고, 고구마 산맥을 넘는 유리미인살 재방을 마친 시기가 겹치다보니, 나 정말 당분간은 쉬어야 하려나봐, 이런 마음이 절로 들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고전보다는 가벼운 현대물을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으나, 역시 취향불변의 법칙이라고, 그냥 일촌상사나 다시보자 싶어서 1회부터 다시 돌리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 드라마의 최대 단점은 초반에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데,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첫회부터 8회까지의 적염사, 척주 에피가 가장 약하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소운락의 그 예쁜 미모를 가리는 역용술도 한몫하죠. 이 앞부분을 지나가면 드라마 전체적으로 참 좋은데, 초반만 보고 흥미를 잃고 탈주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죠.
근데 앞에서 이야기의 밑바탕을 깔아주지 않으면 뒤의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첫회부터 다시 봤는데, 다시 보니 초반도 재밌더라구요. 신기할 노릇;; 이게 드라마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오히려 뒤의 이야기를 알고 보니 초반도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첫 정주행 때는 심만청-문사연의 서사나 감정선이 눈에 더 잘 들어왔는데, 다시 보니 소운락-좌경사의 서사나 감정선이 눈에 더 들어오네요. 정안후부를 구하기 위해 비구아, 심만청, 은장가를 고용할 때만 해도, 좌경사는 비구아가 소운락이라는 걸 몰랐죠. 적염사로 가는 도중 비구아가 소운락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좌경사의 고뇌는 시작됐을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10년만에 만난 소운락에 대한 반가움이 더 컸을 거예요.
그리고 척주에서 소운락이 우리를 속이고 너 대신 목숨을 걸게 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뇌와 선택의 상황들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무덤에 데려가서 해명도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최대한 운락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데, 매번 운락이 상황을 해결하게끔 되어버리죠. 검술대회 때도, 주염을 구하다가도 운락이 다칩니다. 결국 좌경사에게 사부의 목숨과 운락의 목숨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와요.
그래서 늘 운락에게 물어요. 나를 죽이고 사부를 살릴 거냐? 사부를 살리려고 나랑 혼인하는 거냐? 운락에게 선택지를 주면서 질문을 하는데, 운락은 매번 대답을 못합니다. 운락은 평생을 사부 살리는데만 몰두하며 험하게 살아오다보니, 사부 말고 다른데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부를 살리고 나도 살리고 싶냐? 사부도 살리고 나와 혼인하고 싶냐? 이렇게 물었다면 아마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은데, 둘 다 열린 형식으로 질문하거나 답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좌경사 손목 긋고, 정안후 살려내야 하고 이런 절체절명의 선택의 상황들은 아니라서, 운락이 혼인하다 뛰쳐나가도 의연하게 서책 보러가고, 운락이 감금됐다는 소식에 달려와서는 백맥한테 결국 니 사모가 될 사람이니깐, 사모 구하려면 니가 잘해야 한다고 당부도 해요. 제가 이 커플에 꽂힌 부분은 이런 거예요. 불과 얼마 전에 이제 우리는 영원히 끝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저러고 있는 거요. 응, 넌 끝내, 난 너를 살릴게, 이런 느낌이랄까요. 이건 좌경사도 그렇지만, 소운락도 그렇지요. 둘 다 똑같담서;;
이후에는 사정이 더 복잡해지니, 그 부분은 보면서 정리가 되면 다시 끄적거려 볼게요.
만념고도에서 주염과 운락이 만념도법을 익힐 때, 주염은 운락을 죽이는 환상을 봐요. 운락이 어떤 환상을 봤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근데 운락의 감정 변화를 짐작해보면 아마도 저때 좌경사를 잃는 환상을 봤을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운락은 정안후를 구하기 위해 중도로 온 좌경사를 따라와요. 좌경사가 모질게 밀어내도 지난 일들과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좌경사 곁에 남기로 하죠. 그리고 좌경사에게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자신이 돕겠다고 해요. 좌경사와 혼례를 올리기 직전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도 내게 가르쳐준 적이 없다며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던 운락이었죠. 운락 입장에서는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좌경사에게 그 마음을 전한 거예요. 떠나기 전에 이제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사탕을 담은 편지까지 남깁니다.
근데 좌경사 입장에서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고, 애제를 반드시 찾아야 하니, 운락과 함께 하는 삶과 대의를 이루는 일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옵니다. 령서가 좌경사에게 무이채로 가기로 마음을 정한 거냐고 물었을 때, 이미 소선을 살리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운락에게는 사부 말고 아무도 없다, 나는 소운락이 없으면...이라며 말을 줄이는데, 아마도 좌경사에게 소운락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겠죠.
초반으로 돌아가 9회에서 소운락을 돕기 위해 좌경사가 정양궁으로 옵니다. 문사연이 좌경사를 막아서며 당신이 개입하면 소운락이나 당신에게 좋을 게 없다고 충고하죠. 그때 좌경사가 ‘단지 운락이 무사하고, 운락에게 소중한 분이 무사하면 됩니다. 운락이 못 하는 일은 내가 대신 할 겁니다’라고 말해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간간이 운락한테 서운하고 화가 나도, 상황이 급변해도, 좌경사에게 저 마음은 항상 변함이 없었던 것 같아요. 24회 석란성엽을 쓴 이유가 자신이라는 걸 알고 절망하는 운락에게도, 다른 사람 다 죽어도 너만은 안돼, 네가 살아있어야 다른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죠.
위녕후에게 복수하고, 정북군을 지키고, 나라를 구하려면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게 소선을 살리고, 운락이 무사할 수 있는 길이라면 의미가 있겠죠. 무이채로 오는 길에 만난 운락이 사부를 부탁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무이채로 돌아갔으니, 운락이 무사하기 위해서라도 소선을 살리는 결심을 앞당겼을 거예요.
깨어난 사부가 좌경사에 대해 묻자, 운락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요. 그 사람도 너한테 마음이 있냐는 질문에는 그 사람은 비밀이 많아서 늘 추측해야 했다, 그런데도 잘 모르겠다고 하죠. 이전에는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나니 이제는 좌경사의 마음을 잘 모르겠는 거예요.
좌경사는 운락의 소원을 이뤘으니 지금 헤어지는 게 낫다며 떠나려고 해요. 운락의 또 다른 소원이 좌경사와 함께 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송도운해에서 운락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운락과 함께 할 수도 사실을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좌경사를 찾아 유강으로 온 운락은 주염에게 고백을 듣습니다. 주염이 하는 구구절절한 고백의 말들이 지금 자신이 좌경사에게 느끼는 마음이었겠죠. 좌경사가 머문 객잔에 들이닥친 운락으로 인해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냅니다. 다음날 아침 좌경사는 공허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앉아 있어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운락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그리 모질게 떼어놓고 왔건만, 자신을 사랑하는 운락의 마음까지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허탈했겠죠. 자신이 운락에게 무슨 짓을 했고,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를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결국 운락을 속이고 이용하고 상처주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니까요.
이후의 좌경사는 자신이 뱉은 말에 자신이 상처받는 형국입니다. 운락에게 독을 썼다고 밝히자 영원히 끝이라는 말을 또 다시 들어요. 유강에서 나를 죽이지 못한 걸 후회하냐고 물었다가 처음부터 널 죽였어야 했다는 말을 듣죠. 사부를 데려가지 말라며 울며 비는 운락의 모습까지 보게 되죠.
반대로 운락 입장에서는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거절당하고, 재회했다 생각했는데 독을 썼다하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독을 당했다고 말할 수 없어 사부한테 그 사실을 숨기죠. 거기다 그 독을 사부가 대신 가져갔는데, 사부마저 죽은 상황인 거예요. 가뜩이나 좌경사의 마음을 모르겠는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는데다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인거죠. 그런데도 사부의 복수를 위해 좌경사를 찾아가서 죽이지도 못해요. 좌경사의 마지막 부탁까지 들어줍니다.
이시기쯤 좌경사는 운락에게 워낙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애제를 만나기 전 운락에게 한 말들은 거의 진실인 것 같아요. 다만 애제가 자결할거란 사실만 숨긴 거죠. 일촌상사에 죽는다면 바랄게 없단 말도, 처음부터 내 목숨은 네 것이었다는 말도, 죽기 전에 널 볼 수 있어 여한이 없다는 말도 진심이겠죠. 그렇지만 저때 한 모든 말들 중 가장 가슴 아픈 말은 ‘소운락, 넌 한 번도 진심으로 날 믿은 적 없어’였어요. 운락을 탓하는 말인데, 오히려 좌경사의 진심이 느껴지며, 그간 좌경사가 왜 그리 했는지 한꺼번에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이후 운락이 진실을 알게 된 후 ‘너를 원망한 적 없어. 너를 사랑해’라는 말까지 겹쳐지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이 들더라구요.
결국 애제가 자결하고, 끝까지 자신을 속였다며 운락이 좌경사를 찌릅니다. 그래도 정말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는지 급소는 피해가요. 무이채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좌경사를 죽였다며 만신창이가 되도록 울고, 정양궁이 공격받는다는 말에 그 사람이 거기 있다며,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며 구하러 가요. 그리고 거기서 모든 진실을 듣게 되죠. 이후에는 좌경사가 아무리 밀어내도 밀려날 마음이 없어요. 자신은 좌경사의 약점이 아니라는 말이 아프게 와 닿죠.
결국 좌경사는 전장에까지 운락을 보내게 되고, 운락은 이전에 사탕을 담은 편지를 남겼던 것처럼,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좌경사의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 떠나요. 위녕후 딸과의 혼례날, 차마 신랑신부 맞절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좌경사의 혼례복 위로 사탕이 톡하고 떨어지고, 하객들 사이로 운락의 모습이 보이자 그제야 좌경사는 안심합니다.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운락의 소식이 없는 것에 몇 번이나 혼절했던 그였지요. 그리고 모든 계획의 마지막을 앞두고 재회한 운락에게 ‘운락, 너는 내 일촌상사야’라고 말합니다. 일촌상사는 운락의 주무기이자 분신과 같은 존재지요. 자신은 약점이 아니라던 운락의 말과 맥을 같이하며 또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어요.
결국 일촌상사의 칼끝으로 위녕후에게 복수하고, 운락은 끝까지 좌경사를 데려갑니다. 황제가 위서왕과 함께 경기 군영 부장군을 만났을 때, 속닥속닥하는 게 아마도 좌경사를 빼돌리라는 명이었을 것 같은데, 좌경사를 살리려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알 수 없죠. 운락은 자신만이 좌경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말을 보면 운락의 그 선택은 맞았죠.
첫 정주행 때는 서브커플보다 더 어려운 메인커플이었는데, 다시보니 서사나 감정선이 눈에 더 들어와서 쭉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시봐도 제작진들이 심만청-문사연 커플 연출에 진심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소운락-좌경사 커플은 서사가 몰아치는 반면, 심만청-문사연 커플은 서사에 여백을 줄 공간이 있다보니, 그 여백을 여러 소품이나 떡밥들로 공들여서 채우고, 그에 따라 화면 구성도 세심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여운이 남고 각인이 되게끔 찍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사강아-은장가 커플의 서사나 특히 엔딩은 여느 드라마의 메인이라고 해도 못지않은 느낌이죠. 아픈 손가락 주염, 사부바라기 백맥, 그들의 사랑의 증인같은 령서까지 아니 소중한 캐릭터가 없지요. 그럼 이만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