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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Sep 25. 2017

사진, 복기를 기억하라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61

본인은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른다. 어릴 적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기본적인 규칙을 아는 정도... 두 집을 만들면 완생. 네 방향에서 돌을 둘러싸기 직전의 상태는 단수 등등... 서양의 체스나 보드 게임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둑의 위대함이 많이 있지만... 나는 그중 하나, '복기'를 꼽는다. 막 대결을 마친 승자와 패자가... 첫 수부터 끝 수까지 한수, 한수 돌이켜 보는 과정 말이다.

두 사람의 마음가짐은 매우 다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그렇게 냉정할 수가 없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리뷰하는 과정이 복기의 개념과 비슷하다. 사진에서 이기고 지는 개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컷 한 컷 세심한 복기의 과정을 거쳐본다면 자신이 승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되는 소소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자신과의 싸움이랄까..

자신의 사진은 복기의 마음가짐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순간 감정에 휘말려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좋은 사진을 못 보는 경우도 있고, 좋지 않은 사진을 좋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냉정하지 못해서


화장은 하는 것만큼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 옛날 모 화장품 마케팅 카피가 떠오른다. 사진은 찍는 것만큼 리뷰(복기)도 중요하다. 오늘은 자기 사진의 리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ADOBE 라이트룸 CC로 나의 모든 사진을 관리하고 보정한다.


기술적 완성도가 낮은 사진은 가차 없이 삭제한다


보정으로 만회할만한 정도를 넘어선 사진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대표적인 예로 몇 가지가 있다.


본인이 원하는 초점을 맞추지 못한 사진

셔터스피드가 확보되지 않아 의도하지 않게 흔들린 사진

핸드블러에 의해 미묘하게 흐릿한 사진

보정 불가능한 정도의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

조리개 선택을 잘못하여 원하는 심도가 표현되지 못한 사진


미련을 버리자. 가차 없이 삭제하자. 보정으로 보완될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사진들을 여러분 HDD에 저장해놓을 이유가 없다.

사진의 장르를 막론하고 기술적 완성도를 갖추는 것은 기본 아닐까?


사진들의 리듬과 흐름을 발견한다.


하루에 200컷을 촬영했다 하자. 그중에 사진들의 전후 관계의 연결성을 읽을 수 있는 그룹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한 장의 사진이 다음 사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진들의 그룹이다.

빛과 어둠을 가르다 / 고속 터미널에서
Composition of balance / 고속 터미널에서


다시 바둑의 예로 돌아가면 한수와 그다음수는 분명히 명확한 이유가 있다. 사진도 비슷한다. 한컷과 그다음 컷, 그리고 그다음 컷...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영역의 그룹을 발견해보자. 200 컷 중 얼만큼의 깊이와 양으로 그 그룹이 형성될지는 모르겠으나... 경험 상 최소한 100장에 한, 두 그룹 정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자신의 사진에 자신감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빛과 사람들의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를 관찰했다
빛과 사람들의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를 관찰했다

좋은 컷의 앞과 뒤에는 그 영향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룹을 형성한다 라는 표현을 썼다. 결정적 순간의 한 컷에는 그 전조와 이후의 여운이 있고 그 신호(Signal?)들이 전 컷과 다음 컷에 존재한다.

만약 200컷 중 전혀 발견할 수 없다면 이유는 하나다. 본인이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의도를 반영한 사진일수록 그룹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


사진 구석구석을 살핀다


몇 개의 그룹이 나타났고 그중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10장가량의 사진을 선택했다. 이제 그 사진을 한 장씩 살펴볼 차례이다.

해당 컷을 촬영했던 순간의 본인의 느낌. 사진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그 이야기가 본인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 사진 외곽에 불필요한 피사체를 포함하지 않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지. 그 감정이 촬영했던 자신의 감점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

Two lights form the darkness

사진을 축소해서도 보고. 1:1 사이즈로도 보고, 확대해서도 보고. 잠시 시간을 두고 다음날 다시 열어 그 사진들을 다시 한번 보기도 한다. 반복해서 자신이 선택한 사진들을 리뷰하다 보면 사진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간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히 올라간다. 더 좋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이 만들어지게 된다. 다만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전문적인 교육 과정 없이 7~8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사이에 사진 관련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좀 더 단축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사진에 대해 타고난 천재는 아니지 않은가! ^^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200장의 사진에서 10장을 선택하는 어려움 그 이상으로 10장에서 한 장의 사진을 선별하는 작업도 고통이 따른다.  어렵기 때문이 해보라고 당부드리는 것이다. 쉬우면 하라고 안 한다.


Vanishing red / 한장의 사진을 남겼다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듯, 자신의 사진에 대한 리뷰 없이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 가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사진도 동일하다. 자신의 사진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복기'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사진들을 계속 돌이켜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리뷰라면 더욱더 좋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하루 모임을 나간다면 마무리를 '음주가무'로 맺을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그날 촬영한 사진을 '복기' 해보면 훨씬 멋진 시간이 되지 않을까?

사진을 막 시작하는 분들, 사진에 조금 자신감이 생기신 분들, 누구를 막론하건 자신의 사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찍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 많이 갖기를 권장한다.


그것이 성장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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