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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Sep 22. 2018

직딩, 첫 번째 개인 사진전을 연다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68

카메라를 잡은 지 15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 비록 일반 갤러리가 아닌 나의 직장에서지만 말이다. 몇 개월 동안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지키고 싶은 한 가지는 '끝까지 나 혼자 간다.'이다. 전시 공간 마련을 위한 담당자 상담에서부터, 주제 선정과 전시 기획, 전시 사진의 선별과 인화, 액자 업체 수배, 전시 방법 구상과 설치, 포스터, 리플릿, 전시 초대장 디자인, 작업노트 및 전시 서문 작성까지 모두 내 손으로 해보자. 이것의 나의 원칙이었다. 결국 인화, 액자 업체의 수배는 한 분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 경험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 믿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잘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지는 않을까? 전시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나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은 듯하다. 부족했던 사진전의 기획력은 반복되는 사진 선정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고, 작업 노트의 끝없는 수정에서도 느껴질 수 있었다. 몇 년간의 사진 작업을 열흘 간의 전시로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과 고통(?)을 주는지도 이해했다. 이미 SNS를 통해 많은 사진을 공유했지만 그 즉흥적 사진들과 사진전의 사진과의 차별화 전략도 꽤나 어려운 숙제였다. 고뇌의 시간이 지나 이제 겨우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추석 이후 전시장 설치를 앞두고 한숨을 돌리며 글을 쓴다.

THINGS LEFT / 사진전 초대장


THINGS LEFT / 일상에서 간과된 낯섦


전시 타이틀은 '남겨진 시간'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저 멀리 내가 사는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주변, 일상에서 눌러진 셔터, 프레임 남아있는 정황(Context)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작가노트를 소개하면 이번 전시에서 여러분들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 통째로 옮겨본다. 그 이후의 작가 소개 (내 소개)는 덤이다.

감각적 분열 / 후광과 순광의 굴절된 빛이 승객을 사이에 두고 불규칙한 패턴으로 강렬하게 분열한다.


작가 노트


"흥미로운 장소에 나를 세웁니다."


그곳은 백야와 오로라가 펼쳐지는 알래스카도 유네스코 세계 유산,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네, 직장 주변, 가까운 도시의 길 위에서 카메라를 들죠. 경이로운 시간의 조각들은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낯설게 흐르는 시간을 탐닉합니다.”


낯선 시간의 탐닉,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담을 수 없는 시간의 조각들을 한 컷씩 남깁니다. 당신의 눈앞에 있었지만 미처 관심을 주지 못했던 풍경 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사진 속 저 멀리 혹은 프레임 밖에 여러분과 같은 시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우연히 제 사진의 피사체가 되어 흔적을 남길지도 모르죠. 나에게 사진은 숨 쉬는 것과 같습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죠. 멀지 않은 미래에 한 번쯤 렌즈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않겠습니까?


나의 시선은 낯선 시간의 조각들을 추적합니다. 시각적 긴장감(Tension)을 끌어내 낯선 아름다움에 도달한 사진을 함께 나눕니다. 기묘하고 흥미진진한 일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일상이라 치부했던 그곳은 사실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지요. 난해한 철학과 설명이 난무하는 예술 작품 보다, 지금 내 눈 앞의 모습이 더 흥미롭습니다. 빗방울이 맺힌 차창, 흐릿한 승객, 비 오는 거리에 흘러가는 행인, 물리적 크기, 형태, 색상과 관계없이 그림자 한 줌, 길 위에 버려진 붉은색 낡은 우산조차 나에게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합니다.


통상적인 ‘아름다움’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피사체만을 찾아 담은 것도 아니지요. 프레임 안에서, 도시의 사물들, 그림자와 빛, 주변 환경, 그리고 행인들과의 시각적 관계를 시간으로 잘게 분할한 사진입니다. 내가 찾아낸 여러 조각들이 여러분의 눈을 통해 '낯선 아름다움'으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THINGS LEFT, 전시를 통해 내가 렌즈를 통해 바라보았던 한 조각, 한 조각, 프레임 안에 숨겨놓은 눈부신 이야기를 발견해주세요.

B CUT / 비록 전시는 되지 않지만 전시장 Leaflet에 흔적을 남겨 두었다.
작가 소개


"거리 위의 모든 것은 미지의 캔버스이자 나의 스승입니다."


2003년 12월 미놀타 A1 디카를 구입하고 출근길, 길거리에서 셔터를 눌렀던 첫 번째 울림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는 가운데 셔터 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를 훨씬 크게 느꼈던 그날의 두근거림. 거리 사진의 매력은 '불가능한 예측'에 있습니다. 항상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거리에서 무한의 확률로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고 살핍니다.


존경하는 사진작가님, 선생님, 책과 전시로부터 받은 영향을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었던 것은 '현장'입니다. 그날 카메라를 손에 든 사유와 비전, 항상 새롭게 마주하는 사람들, 그림자와 빛의 충돌, 실수와 미련, 흐르는 땀, 그리고 손가락 끝의 감각. 일련의 경험이 내 길에 빛을 비춰줍니다. 행인의 담배 연기, 벽에 붙은 작은 전단지, 빛 한 조각까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채찍질합니다. 이 모든 것을 스승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나는 ‘시간의 조각을 남기는 자'입니다. “


beyondframe.net을 통하여 매년 꾸준하게 온라인 사진전을 기획하고 전시합니다. 즉흥적인 작업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태워 가벼운 마음으로 내 손을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손홍주의 인물사진 스튜디오 작업, 떴다방 사진전 커뮤니티를 통해 그룹전에 참가했습니다. 2016년~2017년 길지는 않았지만 인문 교양 잡지인 월간 EUREKA에 사진과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기도 했지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아내와 함께 '나는 우리 동네를 찍는다.' '은지 다방'등 마을담, 마을발전소 발행물에 글과 사진을 기획해서 기고하기도 합니다. 월간사진 공모전에 몇 건의 수상 경력을 얻기는 했지만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는 무엇을 남기는가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THINGS LEFT, 나의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한번 툭, 던져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낯설고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푸른 천사 / 즉흥적 스트리트 판파지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전시장을 사진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싶다. 전시 이후 그 동안의 과정과 솔찍한 경험을 정리해서 포스팅할 것을 약속드린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직딩이지만'이 아니라 '직딩이기 때문에'


더욱 꿈에 대한 열망과 집착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을 나 혼자 결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하나는 '사진'이었다. 고독하지만 그 고독마저 흥분되는...


67편의 브런치 포스팅, 그 내용의 '공통분모'를 모아서 스물다섯 장의 인화된 사진으로 증명한다. 여러분들께는 다소 생소한 장소일 것이다. 삼성전자, 서울 R&D센터 LIVE CUBE. 2018년 10월 1일 18:00 오프닝을 시작으로 열흘간의 여정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프닝, 혹은 전시 기간 중...


2,621명, 브런치 독자 여러분들을 믿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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