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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Oct 06. 2019

간과된 것 / Thingness Ignored

그래봤자 직딩의 사진 #072

Project Note


일상은 매일 반복된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다. 내 앞에 마주한 시간의 사각형은 동일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로 향하는 영원한 것. 일상도 그 정의를 거스르지 않은 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내 여정의 기념품처럼 나에게 선물한다.


거리 위, 스치듯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그리고 또 다른 행인의 움직임 사이를 파고든다. 그들의 시선과 생각에 방향을 맞춰 한걸음 더 들어가 미지의 관계를 엮고 순간적으로 동화된다. 그리고 그들 혹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간과된 시간의 조각을 프레임 위에 차곡차곡 쌓아간다.


자신이 흐르는 속도를 타인보다 늦추면 그제야 보이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듯 주기적인 동선과 방향, 같은 영역 위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라. 매일 다른 사람과 조우하고 매일 다른 사람과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한다. 근접한 거리, 동일한 공간 일지라도 길 위에서는 거의 '나 자신' 이외 모든 것이 간과될 뿐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까?


이 주제는 몇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작업하고 있다. 길 위에서 환경을 관찰하고 시간과 동행하며 낯선 정황을 담아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등대 역할을 한다.

 

간과된 결핍


내가 발견한 일부 행인들은 아픔과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는가? 보이지 않는 고민과 상념의 '아우라'가 행인의 주변을 감싼다. 나의 눈은 렌즈를 사이에 둔 채 그들이 스스로 감춘 자신의 결핍을 한 조각 두 조각 미세한 빛의 입자로 치환하고 내적인 공감을 거쳐 조심스럽게 살핀다.

검은 상처의 벽, 서울 2017
정적특급 #06, 도쿄 2019


간과된 우연


셔터는 매번 분할된 시간을 담지만 다른 시간을 엮기도 한다. 미지의 행인들과 시공간을 달리하여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우연'은 서로에게 놀라움과 재미를 선사한다. 오전에 길에서 만났던 사람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또 마주친다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상황을 한참이 지나서 사진을 리뷰하면서 그 '사유'를 발견한다면?

삶은 어찌 보면 우연의 집합체이다. 당신의 삶의 시작도 당신의 부모님의 탄생도 모두 천문 확적 무한대 숫자분의 1의 확률로 시작되었다. 무한이 그 사슬이 이어진다면 정말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거리 화가의 재발견, 런던 2018


간과된 웃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이 없다. 당신의 일상에서 미소나 웃음의 양을 계산해본 적 있는지? 끝없는 무표정의 인파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웃음을 발견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열쇠는 '소통'이다. 연인 혹은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전화를 하거나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자신은 인지 하지 못할 지라도 얼굴 표정의 미세한 변화가 렌즈를 관통하여 목격된다.

그녀는 웃는다, 서울 2019


간과된 침묵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비밀은.'침묵'을 필요로 한다. 본인 스스로 혼자 보내는 시간만큼은 실제 외부 세계와 어떠한 교류도 없고 오롯이 혼자인 듯 자신하지만 뷰파인더를 통한 나의 눈과 마음은 그 비밀에 접근한다. 비록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미세하게 표출되는 단서들을 조심스럽게 읽어낸다. 발걸음의 속도, 옷과 피부의 질감, 시선의 방향과 명료함의 정도. 눈으로 투과되는 모든 것이 그 단서이며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쥐기 위해 한걸음 더 다가간다.

붉은 커튼 너머, 서울 2019
새벽 골목길, 도쿄 2019


간과된 몰입


거대한 도시의 모습은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하다.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상업적 포스터는 아름다운 모델의 웃음으로 당신을 유혹한다. 잠시 눈을 감고 매력적 유혹을 뿌리친다. 한걸음 한걸음 인파를 뚫고 뒤로 물러나 보자. 보이는가? 현실의 우리가 뿜어내는 극한의 몰입이 있다. 스마트폰 단말기로 '가상'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결코 주변의 '현실'과는 연결될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 느껴진다. 비록 다른 세계 어떤 누구와도 연걸 되어있다고 믿지만 말이다. 5인치 작은 터치 단말기의 세계가 이 세상 잔 부인 낭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는 Digital Native의 거리의 삶을 살핀다.

손과 걸음, 도쿄 2019
포노 사피엔스 #2 (Phono Sapiens #2), 런던 2018


'간과된 것' 이 작업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담을 수 없는 행인들과 함께하는 축제다. 당신의 눈 앞에 있었지만 미처 관심을 주지 못했던 정황(Context) 일 것이다.  혹시 사진 속 저 멀리 혹은 프레임 밖에 여러분과 같은 시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렌즈를 사이에 두고 우연히 당신을 만나는 상상. 내 프레임에 여러분의 모습이 담기는 기적과 같은 일... 



사진은 우연의 탈을 쓴 필연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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