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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Aug 18. 2019

[서평] 사진을 위한 단어의 축제

그래봤자, 직딩의 사진 #071

언어는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된다. 일반적으로 '단어'는 의미를 표현하는 최소 단위의 '메시지'다. 15년 넘게 길거리 현장에서 사진을 배운 나에게 사진에 대한 '사전'은 생소하다. 8월 13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달받고 가장 처음 떠올렸던 상념은 저자 조용훈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과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사유'였다. 저자의 말 두 페이지를 십 여번 탐독하고 이번 서평의 주제를 잡았다.


10년, 메모의 힘


'캔디드사진'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찾아본다. 본인이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작업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스냅, 몰카, 도촬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11개의 단문과 복합 문장으로 명료하게 정리되어있는 설명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다각적 관점에서 의미를 전달한다. 현재 이 용어가 사용되는 '범위와 현상'. 정답은 아니지만 촬영자가 접근하기 쉬운 촬영 방법, 팁(렌즈의 선택 등)에 대한 몇 가지 기술적 조언. 간단한 역사적 흐름과 사진작가들의 예시를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이 용어에 근접하지만 다른 의미의  '스냅'의 유래까지 설명으로 혼용하지 않도록 경계를 명확히 하는 마무리로 설명이 완결된다.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된 단어들은 보통 사전의 흐름과 동일하다.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1페이지 이상 자세히 서술한 단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 단어가 사진 관련 용어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폭넓은 내용을 포함한다. 영상, 디지털, 네트워크 관련 기술 트렌드, SW 관련 용어도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증강현실 (AR), 가상현실 (VR), 나스 (NAS), 레이어(Layer)와 같은 단어들은 확실히 현세대를 반영한다. 가장 몰랐었고 흥미를 끌었던 용어들은 예술, 미학, 철학 등에 대한 단어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 물론 사전의 한계로 인해 단편적인 개념 설명에 머물러 있으나 애매하게 정의를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잘 정리된 깔끔한 정의의 문장들을 툭! 던져준다.

책을 읽어갈수록 본인의 무지를 깨닫는다.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는 단어들도 많다. '관용도'의 뜻. 감도에 따른 계조의 표현력에 있어서 필름과 디지털이 동일한 줄 알았다. 디지털에서는 감도를 높이면 노이즈로 인한 관용도가 좁아지지만 필름에서는 반대로 관용도가 넓어져 계조가 늘어난다는 설명. 물론 입자 크기의 증가로 인해 디테일은 줄어들지만 중간톤들의 계조가 넓어진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사진의 역사와 관련된 용어들도 풍부하게 수록되어있다. 자연주의, 구성주의, 내용 주의 사진,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부 부서인 '농업안정국'의 설명도 포함한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는 본인의 무지를 인정하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생긴다. 아는 만큼 찍을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에 대한 자책은 당연한 수순인 듯하다. 꾸준히 공부해야겠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점 또한 마음에 든다. 작가의 서문에 의하면 중급자 이상을 위한 책이라고 기술되어있지만 사진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충분히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쓰여있다. '디지털카메라의 장점 / 단점'은 단순한 단어의 설명이 아닌 포괄적인 개념, 개론서를 읽는 느낌마저 든다. 자칫 '사전'의 경계를 살짝 넘은 듯 보이지만 신선하고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사전의 형식을 취하다 보니 내용이 우선인지라 사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판형과 편집 디자인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일반 도서 판형이 아닌 조금 더 콤팩트 하게 접근하면 어땠을까? 카메라 가방에 쏙 들어가서 매뉴얼처럼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요약본의 제공 아이디어는 어땠을까? 사진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많은 이들이 실내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늘 이 책을 소지한다는 것 자체가 짐이 될 수 있으므로 사진가의 실용성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부하는 학생, 수험생에게도 사전의 개념이라 늘 소지하고 필요할 때 찾아보는 '신속함'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사전은 '바이블'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바이블은 저자의 생각과 메시지가 철학적 체계하에 정리되고 서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의 역할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언어'를 데이터화 한 것으로 저자의 생각과 철학의 반영을 최소화하고 철저하게 객관적 지식을 전파한다. 그 목적에 완벽하게 충실한 책이다.


사진의 용어에 대한 사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가장 처음 넘어야 할 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에는 어려운 형식이 '사전'이다. 본인은 서평 작성을 위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읽었지만 일반 독자들은 처음 등장하는 '가변초점거리렌즈'에서부터 마지막 '히스토그램'까지 순차적으로 읽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순간순간 필요에 따라 사전을 펼쳐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통한 '검색'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폭풍우를 견뎌야 무지개를 만날 수 있듯, 어려운 벽을 넘어야 한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사진이라 해도 궁극적으로 '종이'라는 매체를 통해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전통이며 앞으로 변하지 않고 지속될 방향이다. 사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인터넷과 디지털 프로세스를 잠시 잊고 두툼한 종이로 만들어진 사전 한 권을 벗 삼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서술하신 조용훈 작가님께 경의를 표한다. 당신께서는 미진사의 '사진용어사전'의 오마주라는 겸손의 말씀을 남겼지만 10년간 습득하고 기록한 사진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집약하고 완성했다. 아무쪼록 사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기본'의 중요함과 다양한 '지식'을 쌓아가는데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끝으로 서평을 마친다.


201Q / 8 / 18 / 시간의 조각을 남기는 자, 권장윤



* 이 서평은 월간 사진에서 제공한 '사진전문용어사전'을 탐독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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