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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Aug 18. 2016

우포, 경이로운 생명의 늪 (2/2)

 프로젝트의 기록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22

우포 가는 길


이른 아침 우포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마을을 둘러본다. 습지가 인접해서일까? 새벽안개가 마을의 분위기를 한껏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햇빛 쨍쨍한 낮에 보았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전신주(전봇대) 조차 이때만큼은 초현실적인 오브제로 느껴진다.

가끔 산책을 하시거나 이른 아침 일을 나가시는 분들이 보인다. 얼굴 표정까지 자세히 읽지는 못했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시는 평범한 분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 나에게는 특별하지만 그분에게는 그저 일상일뿐
멀리서 들리는 바이크 소리가 조용한 새벽을 깨운다


형태와 패턴


마을의 보잘것없는 '전봇대'가 특별한 느낌을 전달하는 이유는 그 형태와 배열의 패턴에서 비롯된다. 마을의 대부분의 모습이 수평, 불규칙한 모습을 유지하는데 반해 이들은 수직을 이루고 있다. 배열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규칙적인 패턴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대상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안개라는 자연현상으로 인해 원거리로 갈수록 점차 희미해져 가는 특수 효과(?)가 가미되어 더욱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는 아침이다.

Connected / 세상은 연결된다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묘지의 착시


청각을 깨우다


이틀째 되던 날도 역시 태양 빛은 사정없이 내 피부를 침투했고 선크림은 땀과 함께 녹아내린 듯 크게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 같다. 깊게 눌러쓴 챙이 넓은 모자 덕분에 약하게나마 그늘을 맛볼 수 있다. 그 작은 그늘조차 없었다면 정말 그곳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여름 우포의 낮시간은 시각적인 고요함이 이어진다. 그리고 매미 소리와 각종 풀벌레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터벅터벅 산책로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가 적막한 우포 주변을 살포시 흔들어 놓는다. 몇 년 동안 계속 앓고 있는 '이명'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수 있다. 아주 작은 소리도 주위의 숲에 반사되어 낭랑하고 증폭된 소리로 바뀌는 듯했다.

우포의 북쪽에 있는 나룻배는 현재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모양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푸른 우포 사람들 건물 앞 나룻배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면 그림자의 키가 자란다. 역광으로 빛이 산란하는 장면을 나무 그늘 뒤에서 담아본다. 내 발걸음의 위치는 위치는 나무 그림자와 빛이 드는 경계선에 선다. 카메라는 해의 방향을 바로 향하지 말고 중간 정도 위치시키면 좋다.


일몰의 순간


태양이 먼 산을 넘어갈 때쯤 하늘빛은 서서히 난색으로 탈바꿈한다. 습기 때문인지 맑은 지역의 석양보다는 다소 탁하고 힘없는 느낌이다. 몇 마리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새들이 포착될 때면 놓칠세라 카메라의 방향과 뷰파인더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 때문에 습도 물씬 풍기는 늪지대에 조금이나마 청량감이 감돈다.

금빛 하늘과 초록빛 수면이 대조를 이룬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 조금이나마 빛내림을 관찰 할 수 있었다

우포의 외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하여 인공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일몰 이후에는 순식간에 늪지대가 어둠으로 탈색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맞이하기 전 옹기종기 모여 밤을 맞이하는 무리의 새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새들의 군집


드론의 습격


촬영을 마무리할 즈음 제방 한편에서 굉음을 울리며 늪지대 가운데로 드론을 날리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새들이 모여있는 위치로 비행을 시도하니 새들이 놀란 듯 뿔뿔이 날아오른다. 

나는 그분들에게 다가가 드론에 대해 자제해줄 것을 부탁드렸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다고 하신다. 멋진 장면을 촬영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드론을 사용하면서까지 생물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쉬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내 말에 충분히 공감하신 듯 바로 철수하신다고 하셨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된 후 우리 모두 편한 마음으로 광활한 우포를 뒤로한 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드론의 굉음으로 인해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며칠간 짧은 우포의 사진 여행이 끝났다. 흔히 말하는 환상적인 풍경을 담은 '대작'도 없고, 최고의 포인트를 발굴한 것도 아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만큼 평범한 컷들로 기억을 채울 수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가을의 우포는 나의 기억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때쯤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가을, 생명의 늪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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