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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Apr 16. 2017

정말 오랜만에 엄마, 아빠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51

사진 좀 찍어줘라!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진을 찍어 달래 신다. 그것도 콘셉트가 명확하시다. 당신께서 다니셨던 고등학교에서 어머니와 같이 찍자고...

지금은 학교가 아니라 서울에서 꽤나 규모가 큰 공공 도서관이 되어있었다. 서울 시립 정독도서관. 처음에는 무심하게도 아버지 말씀을 흘려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벚꽃이 활짝 핀 토요일 오전 부모님을 모시고 정독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머님께서 다리가 불편하신 이유로 30분 미만으로 촬영 시간을 줄여야 했다.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당신들보다 학교 건물이 잘 나와야 한다는 이상한 요청을 하신다.


아버지! 사람이 잘 나와야죠... 이것 보세요...ㅠㅠ


막무가내시다.

몇 컷을 아버지 원하는 대로 잡고, 본격적(?) 나의 뜻대로 두 분의 모델과 호흡을 맞춘다.


그냥 정면을 보시면 너무 딱딱해요.


두 분이 같은 방향으로 틀어도 재미가 없다. 원래 등을 맞대는 연출을 요청드렸으나, 목을 꺾어서 움직이시기가 불편하신 듯하여. 첫 번째 연출 컷은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


웃음이 필요했다.


몇 컷을 촬영하고 힘이 드셨나 보다. 이 표정에서 절대 변화가 없다. 웃음이 필요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선생님의 말씀 "웃으라고 하면 웃나요... 웃겨야죠." 이제부터는 그냥 아들이 아닌 포토그래퍼로 역할로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아빠! 아까 박정희같이 무서운 얼굴~ 한번 더!!!


엄마도~~~ 아빠 얼굴 한번 사랑스럽게 봐줘요!!!


어느샌가 나의 입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대신 엄마, 아빠로 불렀다. 성인이 된 후 30여 년 동안 잊고 지냈던 단어들... 몇 년만에 이렇게 신나게 불러보는 걸까?


우왕!! 두 분 다 너무 멋지네!!!


내가 아빠 엄마를 웃겨드렸던 언제였을까? 뷰파인더를 통해 박장대소를 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본 나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젯밤에 연습하셨어요???


끊임없는 찬사가 계속되어 끝까지 웃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컷은 렌즈를 광각으로 바꾸고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학교도 잘 나오고 두분도 예쁘게 잘 나온 사진으로 마무리했다.

80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두 분의 사진 촬영이 끝났다. 십수 년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촬영이었다. 많은 아빠들이 아기들 촬영을 목적으로 카메라를 구입한다. 수십 년 시간이 흘러 한때 피사체였던 그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님을 모델로 사진을 찍는다. 정말 멋지지 않나? 이제까지 부모님께 소홀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함께 밀려온다. 아빠, 엄마를 부르며 놀았던 어린기억도 머리속에 스쳐지나간다. 짧았지만 즐거운 꿈같았던 시간... 따듯한 봄날 부모님을 위해 카메라를 들어보자.


당신의 셔터 소리와 부모님의 웃음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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