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 속담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겪어본다'는 말을 재해석해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들을 겪다 보면'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동감하는 명언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다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간다. 그중 가장 소중한 관계 중 하나가 바로 '친구 관계'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자라는 환경에서 자연스레 주변 친구가 맺어지고, 청소년 시절에는 나랑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성인이 되면 조건에 맞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는 진정한 친구만 남게 된다.
최근 난 힘든 일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어사전의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내 주위엔 그동안 가깝게 오래 사귀었지만 가식적인 관계도 많았다. 물론 나도 그 사람들을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누가 우리 관계를 물어본다면 그냥 친구 관계라고 대답했다. 다른 단어로 굳이 대체할 게 없어서 그랬던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범주는 나이, 국적,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관계의 깊이와 질에 따라 친구의 경계를 구분할 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혼란스러운 관계는 '아이 친구 엄마'였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나의 친구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서로 '누구 엄마'라고 부르며 학부형 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중 마음 맞는 사람들과는 '언니'라고 호칭하거나 '자기야'라는 말로 친근감을 나타내며 좀 더 가깝게 지냈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서 나의 인간관계는 이런 학부형 관계가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내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육아라는 공통점과 정보 공유라는 실리적 필요성이 겹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관계들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사실 상당히 위험한 관계이다. 이유는 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로 인해 맺어진 인연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상황들이 수만 가지 존재한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 관계 속에서는 각종 시기와 질투가 도사리고 있고, 평등한 관계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일명 학부모 사이에서 '돼지 맘'은 엄마들 사이에서 리더이고 그 리더와의 원만한 관계는 내 아이를 위해 필수적이다. 난 항상 이런 아줌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자존감도 없고 의리도 없고 그냥 철새처럼 여기저기 붙어서 가십거리나 만들어되는 엄마들이 너무 싫었다. 난 워킹맘이라서 엄마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았고, 내가 어떤 소문을 들을 때는 이미 사건이 한참 지났거나 심지어 모르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르쇠'가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이가 커가면서 워킹맘인 나에게도 학부형 관계는 새로 맺는 유일한 친구 관계의 통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별의별 엄마들을 다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엄마들도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아줌마가 어느 날 이혼을 하게 되고 아이들이 더 이상 나와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 이 엄마들과의 관계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매일매일 아이들 얘기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가던 아줌마에게 이런 일이 닥치게 될 거라고는 나 역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어떻게 내가 처신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엄마들 단톡 방을 나가는 사소한 일부터가 당장 내가 난처했던 일이 되었다.
내가 겪은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식적 관계였던 아줌마들하고는 한순간 연락 단절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슈에 목마른 아줌마들은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스파이처럼 행동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명예훼손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함부로 떠들어 대었다. 그리고 남은 한 부류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며 나의 아픔을 함께 공감해 주었다. 지금 내 곁에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진정한 친구만 남았다. 학부형 관계에서 시작한 아줌마 들였는데 이제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있다. 나는 '찐' 친구를 아줌마가 되어서도 만났고 나를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었고, 내가 그동안 가짜가 진짜라고 착각하고 나의 아까운 시간들을 함께 한 점이 너무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 관계야 말로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범했던 어리석음을 다른 아줌마들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 때문에 내키지 않는 관계를 맺는데 애쓰지 말고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 같은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