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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전 Aug 03. 2020

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

최악의 욕

나라마다 언어는 다르지만 공통된 특징 하나가 있다.

바로 욕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잘 쓰인다. 내가 중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처음 길에서 들은 욕도 바로

'네 엄마'가 들어가는 욕이다. 도로 위에서 택시 기사 둘이 싸우는데 손가락질하면서 큰소리로 '네 엄마가 어쩌고저쩌고'그러길래 다 큰 어른들이 싸우면서 왜 엄마를 끄집어내고 저러나... 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 욕이었다.

엄마가 동네 북도 아니고 우린 남을 욕할 때도 상대 엄마를 거론하곤 한다.

살면서 별의별 욕을 다 보고, 듣고, 심지어 쓰면서 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욕 중에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꼈던 말은 이 말이다.


'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


이 말은 온라인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쌍욕보다 더 치욕적이고 기분이 나쁘다. 난 이 말을 결혼하고 시부모에게서 처음 들었고, 지금까지도 이 말을 나에게 한 사람은 시부모뿐이다. 이혼을 하고 시댁에 관한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해도 이 말을 한 장면, 상황, 말투, 표정 등 이 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되어 가슴속 응어리가 되어있다. 어쩌면 이 응어리를 털어버릴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금전적으로 물려준 재산은 없지만 그보다 더 귀한 재산을 주셨다. 내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자존감이 충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기를 잡아서 주는 부모가 아니라 잡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보다 뛰어나고 잘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디 가서 저평가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박사까지 했으면 공부도 할 만큼 한 것이고, 어느 장소에서나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할 정도의 자신감도 있고, 낯가림은 있지만 편견 없이 남들하고 잘 어울리고, 중국어는 중국 사람만큼 할 줄 알고, 미인은 아니어도 이목구비 뚜렷한 얼굴도 부모님이 물려주셨으니 이 정도면 세상 살아가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전까지는 욕을 할 줄도, 들은 적도 없었던 거 같다. 경상도에서 친구들끼리 '가시나'라면서 서로 친근감을 나타내는, 자칫 욕으로 남들이 오해할 수 있는 단어 정도 쓰고 들었다. 단어는 아니지만 욕처럼 모욕감을 느낄 만한 표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 후 며느리를 굴복시키려는 의도에서인지 모욕적인 말들이 나의 가슴에 비수 꽂히듯 꽂히기 시작했고 한번 꽂힌 비수는 온몸에 퍼져 염증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시어머니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난 이런 마음이 들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공주는 아닌지... 시어머니는 천민으로 자란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아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자랐다면 너는 잡초처럼 자란 거 같아"


너그러운 관점에서 보면 내가 생활력이 강하다는 얘기일 수 있지만 만약 그런 의도로 얘기한 거라면 며느리에게 굳이 이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상대가 오해할 묘사적 표현은 사족(蛇足) 같은 것이다. 아무리 그런 말이라도 이렇게 표현하니 우리 부모가 나를 막 키웠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욱'하는 화 덩어리를 다시 삼켜내야 했다.


한 번은 시아버지가 가족 간의 불화로 나를 불러 훈계하신 적이 있다. 며느리들 간의 불화였는데 중간 입장에서 어른으로서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중간자 역할을 자청한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나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의무와 책무에 대해 강압적으로 설명하였다. 이에 내가 동의하지 않자, 시아버지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또 '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라며 나에게 소리 질렀다. 여기서 왜 또 '내 부모'가 소환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도 없을뿐더러, 이와 상관도 없는 '나의 친정부모'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불쾌할지 생각하니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며느리가 못 참는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당신 아들은 그렇게 잘 가르쳤나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뚫고 나와 내 입 안에서 맴돈다. 어른들이 예부터 '네가 잘못하면 네 부모 욕 먹인다'라는 말을 했는데 내가 딱 그런 부모 욕 먹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한순간 되어버렸다.


난 결혼 생활 동안 이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고, 이제 이혼했으니 더 이상 이런 최악의 욕을 들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나로 인해 이 말을 또 듣게 될 아이들이 떠오른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현재 시댁에서 지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난 아이들이 그 집에서 조금의 실수만 해도

'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디?'라고 할까 봐 걱정된다.

나 때문에 우리 부모가 욕에 등장했고, 이제는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최악의 욕'에서 난 벗어날 수 있을까?


부모 없는 자식 없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각자에게 소중한 부모는 서로 건들지 않는 게 어떨까?

남의 자식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듯, 남의 부모도 함부로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에게 최선의 것들을 주려고 노력하셨고, 나에게 잘 못 가르쳐 주신 것도 없다. 뭘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이런 말을 내던져서 상대 마음의 스크래치를 내려고 할까?

난 이제 이 상처들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서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악의 욕이 과거 나에게는 화 덩어리였지만, 이제는 내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진짜 예쁜 잡초가 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려고 이혼을 선택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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