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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전 Jul 30. 2020

언제 주윤발을 만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1)

90년 대에 중국어를 공부한 사람 중에는 홍콩 누아르 영화에 빠져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람이 제법 많다. 난 그런 케이스는 아니지만 우연히 본 <도신> 영화에서의 주윤발은 정말 지금까지도 나에게 레전드이다.

짙은 쌍꺼풀이 느끼할 수 있지만 주윤발의 쌍꺼풀은 느끼함보다는 중후함이 드러나고,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물고 있는 모습은 건방짐보다는 도도함이 묻어난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쌍권총을 쏘는 명장면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주윤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20세기, 21세기를 통틀어서 이런 비주얼의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주윤발은 완벽한 이상형이다.

그런데 얼굴도 잘 생기면서 인성까지 갖춘 주윤발, 너무 반칙 아닌가?

주윤발이 찍힌 홍콩 파파라치 사진들 대부분이 홍콩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의 서민적 모습, 혹은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거리 감 없이 소통하고 셀카 찍는 모습들이다. 작년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다들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도 주윤발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여하는 소신 있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주윤발의 미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외모, 인성, 성격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난 주윤발의 '찐팬'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난 꼭 주윤발을 만날 거야'라고 다짐했고,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힘들어도 '주윤발을 만나려면 중국어를 잘해야 하니까 참아야 해'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혼자 상상도 해 보았다. 주윤발을 만났을 때, 내가 중국어를 잘하면 주윤발이 엄청 놀랄 장면을 상상하면 입가가 절로 실룩거려졌다.

"어떻게 이렇게 중국어를 잘하죠?" (주윤발)

"당신이랑 대화하려고 열심히 배웠죠" (나)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겠는가? 외국인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 언어까지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면 엄청 감동받을 것이다. 난 대학에 입학하고 첫 연휴를 맞았을 때 베이징에서 기차를 26시간 꼬박 타고 주윤발이 사는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주윤발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심사츄이, 란콰이펑, 피크 등 파파라치 컷에서 주윤발이 나타났던 곳들을 계속 돌아다녔다. 하지만 실패...

심지어 주윤발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도 못 봤다.


그 이후로도 홍콩은 틈만 나면 가는 곳이 되어 옆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졸업 후 홍콩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북경에서 아나운서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표준어 자격증'을 따기까지 했다.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윤발을 홍콩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파파라치 사진들이 조작된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주윤발이 홍콩에 살기는 한 거지...


그러다가 내가 계획했던 '주윤발 만나기 프로젝트'를 접고, 내 갈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도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우연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주윤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주윤발이 아이가 없는 이유는 결혼 초에 아내가 유산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은 평범한 삶을 추구하고 아내와 둘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현재가 너무 좋다고 했다. 정말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주윤발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며칠 전 홍콩 배우 유가령의 인스타그램에서 주윤발을 보았다. 이제는 눈가의 주름도 많고 흰머리도 제법 많아졌지만 주윤발은 여전히 그의 특유의 아우라가 더 깊게 풍겨져 나왔다.


난 어릴 적 꿈꾸던 '주윤발 만나보기'도 이루지 못했고, '주윤발 같은 남편 만나기'도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형은 주윤발이었는데 어떻게 닮은 구석이 한 개도 없는 남편을 만나서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됐을까? 나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주윤발이 아직 살아있으니까 그동안 상상만 했던, 내가 그를 만나는 장면이 언제 현실이 되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주윤발을 만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에 나는 '언젠가 주윤발을 꼭 만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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