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2011년 뮤지컬 <맘마미아>의 소피로 데뷔한 박지연은 10년 가까이 이 문장을 성실히 수행해 온 배우다. 그는 SBS <해치>의 초홍처럼 스스로 변하기도 하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처럼 상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초홍은 이금(정일우)을 사랑한다. 그가 계급이 분명하던 시대에 들병장수였던 자신을 “사람대접”해줬기 때문이다. 초홍에게 있어 이금은, 더 나은 삶이 있음을 알게 해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마음먹게 해준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마음이 이성에 대한 연정임과 동시에 은인에 대한 의리인 것은 당연하다. 궁에는 가지 않아도 유배지에는 함께 가려는 초홍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금을 돕는다. 그리고 연신 한 사람만을 쫓아온 초홍은 그 누구보다도 이금의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그는 여지(고아라)를 향한 이금의 마음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세상에 해선 안 되는 연정 같은 건 없다”는 말로 상대의 사랑을 응원한다.
익숙한 전개다. 초홍은 박지연이 맡았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을 많이 닮았다. 둘은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을 살았고, 신분이 다른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랑을 이루기보다는 상대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의 아픔보다는 상대의 행복에 더 귀를 기울이는 이가 초홍과 에포닌이다. 여기에 박지연의 얇지만 단단한 목소리와 경쾌한 리듬이 더해져 이들은 밝아서 더 마음이 쓰이는 인물로 표현된다.
하지만 <맘마미아>나 <원스>, <어쩌면 해피엔딩> 같은 작품에서는 박지연의 경쾌함이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 이 작품에서의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바탕으로 빠르게 일을 추진해 상대를 변화시킨다. 결혼 전 아빠가 궁금했던 <맘마미아>의 소피는 섬으로 엄마의 옛 남자들을 불러들인다. <원스>의 걸은 아무도 듣지 않는 가이의 노래에 걸음을 멈추고 “직접 만든 것”이냐며 묻고,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 역시 집에만 틀어 박혀 있던 올리버의 방에 노크를 한다. 모두가 확신 없이 불안해 할 때 박지연의 인물들은 불쑥 나타나 지금을 흔든다. 소피와 걸, 클레어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상태를 소중히 여기며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의심 없는 믿음이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상대처럼 어떤 지점에 머물러있던 자신을 자극하기도 한다.
박지연은 다작을 하지 않는다. 데뷔작이었던 <맘마미아>는 지방에서부터 공연을 시작해 차근차근 서울 무대로 다가왔다. 한국 초연이었던 <레 미제라블>은 1년간 공연되었고, 이후의 작품들도 제법 긴 시간동안 관객을 만났다. 모두가 더 빠르게 나아갈 것을 종용할 때,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과 인물들 사이의 ‘추진력’이라는 공통점을 찾고 작품과 함께 성장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시기에 어울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이데일리>)는 데뷔 당시의 초심을 잊지 않는 그는 찬찬히 제 몫을 향해 걸어간다. 앞으로 그가 그려낼 인물들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것이 곧 박지연의 ‘지금’을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랑을 가득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