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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Nov 17. 2019

송상은, 온실 밖의 자유를 찾아서

비음 섞인 하이톤의 목소리는 좋든 싫든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jtbc <눈이 부시게>의 윤상은이 그렇다. 여기에 프릴 장식의 블라우스와 체크 원피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작은 키와 동그란 눈까지. 이 정도의 외형이면 인물의 성격은 얼추 정해진다. 눈치는 없지만 사람을 향한 애정만큼은 넘치는 캐릭터. 4회까지의 상은은 이런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남녀가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연신 둘의 만남을 “로맨틱하다”며 감탄하거나 하룻밤 사이에 70대가 되어버린 친구 앞에서 “늙으면 머리도 안자라?” 같은 질문을 서슴없이 하면서. 만화처럼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는 상은의 아이 같은 면을 더욱 부각하는 요소다.     


배우의 타고난 외형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윤상은을 맡은 송상은은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열일곱 살 벤들라로 데뷔했다. 벤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단어가 ‘naive’일 정도로 또래에 비해 많은 것에 무지한 인물이었다. 이후로도 송상은에게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혜주, <영웅>의 링링, <그날들>의 하나까지 주로 10대 캐릭터가 주어졌다. 10대가 아니어도 <넌센세이션>과 <웨딩싱어>, <레베카>의 인물들 역시 모두 낭만과 사랑을 꿈꿨다. 마치 온실에서 갓 나온 듯 해맑고 사랑스러워서 더 지켜주고 싶은 인물들이 늘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송상은의 인물들이 특별한 까닭은 소심해 보이던 이들이 실은 용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이의 탄생 과정을 듣지 못했던 벤들라(<스프링 어웨이크닝>)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 안중근을 좋아하던 링링(<영웅>)은 수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결국엔 그를 대신해 총에 맞는다. 대통령의 딸로 원치 않았던 오해까지 받아온 하나(<그날들>)는 가출로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줄리아(<웨딩싱어>)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대해주는 이와의 사랑을 위해 약혼을 깨고, “귀부인은 절대 못 돼”라는 말을 듣던 ‘나’(<레베카>)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송상은은 중학교 1학년 때 노래를 좋아해 밴드부를 시작했고, 대회 상금들을 끌어 모아 동아리방을 채웠다고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얻어내는 한 인간의 어떤 집요함이 각기 다른 뮤지컬에서 다양한 인물로 구현된 셈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주저 없이 행하는 인물들은 얼핏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갈팡질팡하거나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송상은이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은 그가 그려내는 순수는 무지가 아닌 ‘뭐든 괜찮다’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이 부시게>의 상은 역시 마찬가지다. 방치에 가까운 7년간의 연습생 생활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가수가 될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모습에 누군가는 그를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승리는 버티는 자의 몫이다. 여섯 살에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며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어린이가 무대에 선지도 벌써 9년째가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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