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연출가는 절 보고 얄미운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얄미울 정도로 나와지는 게 있다는 의미라고 했어요. 쏙쏙 잘 찾아나간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쓴 것 같아요.”(<엔터미디어>) 동료들의 평도 그렇지만, 배우 우현주 자신도 큰 키에 도시적인 외모, 하이 톤의 목소리를 가진 자신을 “깍쟁이 같은 인상”으로 설명한다. 그가 20년 이상 얄밉게 연기하며 보여준 모습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최근 방송된 OCN <미스터 기간제>의 전영혜는 ‘얄미움’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인물이었다.
상위 0.1% 명문고의 교무부장인 전영혜에게는 ‘꼰대’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있다. 언어적·물리적 성희롱이 몸에 배어있고, 회식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술을 강요하며, 회유와 강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자주 쓰는 문장으로는 “폐 끼치지 말라”가 있으며, 강자라면 학생에게도 약하고 약자라면 교장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가진 힘을 휘두른다. 언제나 웃고 있지만 사실은 웃지 않는 눈으로 협박과 경멸을 담아 상대를 재단한다. 똑 부러지는 발음과 비음이 오히려 모두의 화를 돋우는 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가면마저 벗어버린다. 전영혜의 진가는 여기에 있다. 조곤조곤하던 말투는 어느새 호통과 반말이 되고, 염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뻔뻔한 욕망이 얼굴을 내민다. ‘위계에 의한 맞장구’의 음성 증거로 기무혁(윤균상)이 공격을 해도, 그에게서 반성의 태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누구에게나 전영혜와 닮은 인물을 만난 경험이 있다. 우현주는 전영혜를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완벽한 악인으로 그림으로써 시청자의 몰입을 도왔다.
배우에게는 ‘활자로 이루어진 캐릭터를 어떻게 구체화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사이코패스처럼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꿈꾸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 영화와 연극이 인간의 삶에 기인해 만들어졌다면, 일상에서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인물이 더 살아 있음은 당연하다. 2006년, 우현주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든 30대 여성 배우 정재은, 정수영, 박호영과 함께 극단 맨씨어터를 만들었다. 창단 공연이었던 연극 <썸걸즈>는 결혼을 앞둔 남성이 ‘구여친들’을 만난다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익숙한 서사는 관객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연극 속 여성은 ‘엄마’와 ‘창녀’가 대부분이던 때, 각기 다른 여성의 등장은 여성 배우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이어졌다. 맨씨어터는 이후 2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배우들의 생활 밀착형 연기와 찰진 호흡을 극단만의 고유한 색으로 만들어냈다.
우현주에게는 배우, 극단 대표, 연출가, 작가라는 타이틀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알고 성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고질적인 연극계의 문제나 성차별에 관해 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는 방향성을 잃지 않는 프로듀싱 능력과 굽히지 않는 줏대, 큰 병을 이겨낸 담대함이 있다. 극단을 성장시킨 관객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 서로 다른 영역이 우현주에게로 와서 하나가 된다. 그러니 그에게 ‘얄미운’이라는 수식어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