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시완이 전역 후 선택한 드라마 OCN <타인은 지옥이다>은 상경한 종우가 저렴하되 오래되고 지저분한 고시원에 거주하며 경험하는 일들을 다룬다. 함께 있던 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누군가가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곳. 어딘지 기괴하거나 의뭉스러운 인물로 가득한 고시원은 종우의 삶을 좀먹는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감정이 투명하고 노선이 명확한 인물이 지구대 순경 소정화(안은진)다. 그는 까닭 없이 죽어가는 고양이 사체들에서 의문을 갖고 고시원의 실체에 다가간다. 위험을 겁내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상대의 긴장을 풀어내는 인물. “사람을 돕고 싶어서 경찰 된 겁니다”라는 말처럼 정화에게는 ‘열혈’보다는 ‘성실’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특히 정화는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전 캐릭터이지만, 명랑만화에 등장할 법한 배우 안은진의 귀여운 이미지가 더해져 자연스레 극에 스며든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크고 동그란 눈을 굴리며 고민하는 모습에서 악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살가운 딸이자 손녀로 평범한 20대를 그림과 동시에, 경찰 선배인 아빠의 조언을 바탕으로 일에 접근하며 경찰의 정의와 선의를 부담스럽지 않게 녹여낸다.
배우의 외형은 캐릭터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동그란 얼굴형에 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과 작게 오물거리는 입술은 안은진에게 ‘순수한 막내’라는 포지션을 부여한다. 밝은 에너지가 집단에 활력을 가져오고, 무기력한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고, 결국 자신도 성장하는 캐릭터.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한 그가 유독 성장물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뮤지컬 <무한동력>의 솔은 온갖 알바를 섭렵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블랙 메리 포핀스>의 안나 역시 내면에 감춰두었던 상처를 건강한 방식으로 직면한다. 연극 <유도소년>의 화영도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이라는 감정을 발견하며 성장한다.
변화의 폭과 성장 가능성이 넓어 안은진의 인물들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옆집 동생처럼 환하게 웃는 그의 인물들에게서 주저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일상을 살아내며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캐릭터에 담아내 많은 사람과 공감하기를 바란다. 그가 경찰, 사채업자 같은 직업군의 인물을 연기해도 어딘지 주변에서 가깝게 만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제일 못 믿을 게 사람”이라 말한다. 그러나 안은진의 건강하고 소탈한 정화는 그래도 아직은 타인을 믿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니 지옥이 있다면, 안은진이야말로 그 지옥에서 만난 청정지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