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영국 런던. 개인실 3박
영화 <소공녀>에는 물가가 오르자 하루치 소비내역을 주욱 나열해놓고 무엇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미소는 과감히 방을 포기한다. 방을 포기함으로써 그가 하루에 남길 수 있게 된 돈은 4,000원.
나는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게 방이다. 여행지에서라면 더더욱. 걸을 수 있는 거리라면 언제나 이동수단보다는 두 발을 선택하는 편이라 휴식을 위한 공간은 중요했다. 다른 이들의 소음에 방해받지 않을 개인실은 필수다. 따뜻하고, 방 너머를 볼 수 있는 넓은 창문이 있는 곳. 욕조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매트리스도 좋으면 좋을수록 좋았다. 대부분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라 집까지 오는 길의 치안도 중요했다.
당연히 하룻밤을 머무는 데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된다. 게다가 런던처럼 물가가 비싼 도시라면 더더욱. 이날의 방은 하루에 12만 원이었다. 아파트는 넓은 배터시 공원 근처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고 방도 여러 장식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지만, 방문을 열면 더블베드 하나가 다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만난 다른 런던의 방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지의 물가는 숙소에서 가장 확실하게 느낀다. 간단하게는 내 몸 하나 뉘일 곳이지만, 안전과 취향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수없이 많고, 그만큼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진다. 낯가림과 영어울렁증 때문에 공동 공간을 사용하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 방 하나를 위해 이 정도의 돈을 낸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준비하며 가장 놀란 부분도 가격에서였다. 그동안 내가 타국의 도시에 뿌려온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 작은 방 하나를 포기하지 못했을까.
서울의 집에서 출발해 낯선 도시의 작은 방에 도착하기까지 때로는 30시간도 걸렸다. 아파트 앞을 서성이며 지칠 대로 지친 여행자를 맞이하는 호스트, 공간의 이곳저곳을 지키는 삶의 흔적을 담은 물건들. 익명의 공간인 호텔이 주지 못하는 어떤 안락함이 에어비앤비 개인실에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이 집에서는 아침엔 공원을 거닐고, 저녁에는 슬렁슬렁 나가 'the magic garden'이라는 동네 펍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었다. 셋으로 구성된 밴드의 드러머는 잭 블랙을 닮았다. 리더로 추정되는 기타리스트와 드러머의 나이는 꽤 차이가 나 보였지만, 사운드는 조화롭기만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흥겹게 몸을 흔들던 관객도 있었다. 꽤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12만 원이라는 가격에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포함된 것이라 생각하니 그 돈이 아깝지 않더라.